"뭐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평소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스스로도 그 말을 믿었다.
나는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꽤 관대한 엄마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큰아이의 대학 원서를 준비하며 사전 조사표를 받아 든 순간, 그 믿음은 조용히 금이 갔다.
성적표를 보면 아이의 실력을 생선 가시처럼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 생선에 가시가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이 오히려 서늘했다.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엄마는 어느 대학을 원하세요?"
아이가 원하는 카드 한 장, 엄마가 원하는 카드 한 장. 수시 여섯 장의 원서 중, 그 두 장이 기본값처럼 깔리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대답했다.
"따로 없어요. 아이가 원하면 다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조금 더 관대한 엄마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척, 여유로운 척하는 엄마의 얼굴을 하고 싶었는지도.
막상 대학 이름들을 하나씩 늘어놓으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성에 차지 않았다.
더 좋은 곳은 갈 수 없을까.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우주 상향'이라고 써넣을 수밖에 없는 그 이름 앞에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렇게 관대한 엄마가 아니었다.
아이를 향한 너그러움이라 믿었던 그 마음은, 사실 끝을 모르는 나의 욕심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와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해 등급컷을 펼쳐놓고 하나씩 짚어본다. 실질적으로 갈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 학교.
적정선에서 노려볼 수 있는 대학. 그리고 아이와 내가 은근히 품고 있는 희망이라 부르고 싶은 대학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면접 날짜가 겹치면 그중 하나는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
완벽한 조합이라 믿었던 여섯 장은, 알고 보니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면접일이 겹친다. 아직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데, 벌써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새로운 변수가 나왔다.
그 변수를 줄이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짚어본다.
원서 접수까지 이제 일주일 남짓.
대학 이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린다.
떠나보내지 못한 미련이 마음 한켠에 남아, 오늘도 나는 대학 이름들을 종이 위에 긁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