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비교를 하고 있었다

by키스톤

우리는 왜 자꾸 비교를 하는 걸까.


나의 지금을 점검하기 위한 걸음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먼 이상향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까.

비교 끝에 남는 건 대부분 상처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못한다. 알면서도 또 한다.



"엄마는 울타리가 있어요."


아들이 툭 던진 말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가 아이를 지켜준다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설명은 달랐다.


"엄마는 내가 뭘 하려고 하면 항상 안 된다고 하잖아."

그제야 알았다. 아이가 말한 울타리는 보호가 아니라 제한이었다.

나는 분명 내 생각을 전한다고 여겼는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벽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비교한다.

늦게까지 놀아도 되는 친구, 하고 싶은 학원을 마음껏 다니는 친구,

부모가 더 많은 경험을 시켜주는 친구들. 그 부러움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 집은 왜 안 될까.'

자신에게 없는 것, 친구에게는 있는 것. 그 마음이 어느새 원인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부모가 되면 안다.

모든 집이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역시 내가 자라온 환경 속에서 좋았던 것들을 골라 아이에게 건네려 애썼다.

그때의 나는 늘 최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친구는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못 하는지.

아이에게 중요한 건 내가 쌓아온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무엇 하나 한 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억겁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지금의

우리 가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켜켜이 쌓인 시간을 아이가 다 알 리 없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반론을 던졌다.


"너는 하고 싶은 거, 나한테 말해본 적 있어?"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대화는 어느새 누가 먼저였는지 따지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답 없는 대화.

한참을 이야기한 뒤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돌이켜 보니 나는 아이를 이해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다른 부모들이 부러웠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경험을 시켜주고, 학원이며 취미 활동이며 마음껏 지원해주는 부모들.

하지만 맞벌이였던 우리에게 가장 큰 현실은 라이딩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여덟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자신의 여덟 시간을 묵묵히 버텨왔다.

혼자 보내기에는 나의 불안이 앞섰고, 조금 더 크고 나니 이번엔 취미보다 공부가 먼저라는 현실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선택은 하나씩, 그럴 수밖에 없어서 만들어졌다.


아이는 친구의 부모를 보며 나를 비교했고, 나는 다른 부모를 보며 나를 비교했다.

서로 다른 대상을 바라봤지만, 결국 같은 감정이었다.

비교는 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먼저 보여준다. 그래서 비교는 끝이 없다.


이제는 아이에게 그때의 사정을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함께 버텨온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그 시간을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아이도 '울타리'를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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