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렸다.
시험지를 걷는 손들이 분주하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무표정하게 가방을 챙긴다.
고3에게 1학기 기말고사는 사실상 마지막 시험이다.
이제 성적표 위에 새로 적힐 숫자의 기회는 많지 않다.
같은 교실인데도 공기는 조금 다르다.
교실 한쪽, 선생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
손은 필기하기 바쁘고,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
다른 한쪽에는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배경음이 된 지 오래.
바카라상 위엔 이 수업과 상관없는 문제집이 펼쳐져 있다.
각자의 전략으로 사력을 다한다.
같은 교실 안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몇 주 후면 여름방학이다.
고3에게는 마지막으로 길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런데 엄마 눈엔 '노는 시간'으로 확대되어 보인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5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10분.
이상하게 길게만 느껴진다.
무언가에 쫓기듯한 마음으로.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는 이런 말이 오간다.
"쟤가 진짜 고3 맞아?"
그 한마디에 담긴 마음을 안다.
불안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나 역시 그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까울수록 잘 보일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다.
'내 아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는 쉬고 있는 모습은 크게 보고, 애쓰고 있는 시간은 쉽게 지나쳐 버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잠깐만 쉴게." 하고 방문을 닫으면 처음에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길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혹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잠든 건 아닐까.
가끔 그런 영상을 본다. '전교 1등 하루 브이로그'.
새벽부터 밤까지, 쉬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안 믿는다.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을까.
나한테 "쉬지 말고 계속 일해"라고 하면, 나부터 못 버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모들은 가끔 자식에게 그런 걸 요구한다.
"누구는 하루 종일 바카라상 앞에 앉아있다더라" 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남의 자식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 대화는 이미 비교로 흘러간다.
그리고 남는 건 다툼과 상처뿐.
가끔은 아이의 모습에서
'고3이 이래도 되냐.'
라고 되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떨까.
하루 종일 일한 뒤 잠깐 소파에 기대 있는 나에게 누군가 "왜 쉬어?"라고 묻는다면.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까지 아깝다고 한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마 자신이 없다.
고3은 수험생이기 전에 사람이다.
지치고, 늘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보고 싶은 날도 있다.
잠깐 엎드려 눈을 붙이는 시간 후 다시 바카라상 앞으로 돌아갈 힘도 생긴다.
아이가 쉬는 시간, 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