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오랜만에 모임 회원 한 명을 만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연히 만들어진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반가움보다 어색함이 먼저 앞서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모임의 중심에 있던 그녀.
둘째를 키우던 그녀는 학교생활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많은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사를 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어쩌다 한 번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새 기억 너머로 밀려났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주친 얼굴 하나가, 그녀를 다시 불러냈다.
몇 년 전 그녀와의 통화가 문득 떠올랐다.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반가움보다 부담이 먼저 전해지는 건 아닐까,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그녀의 음성은 나오지 않는다.
아쉬움에 전화를 끊자, 바로 벨이 울린다.
그녀였다.
"누구세요?"
순간 웃음이 났다. 전화번호를 삭제한 건 아닐까 하는 서운함과, 왜 갑자기 전화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는 당혹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핸드폰을 바꾸면서, 먼저 연락 오는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병마와 싸운 지 5년째라고.
순간 목이 메었다.
지난 통화 때도 그녀는 아팠다. 그런데 나는 내 이야기만 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이제야 그 침묵이 떠올랐다.
"전화해 줘서 고마워."
그녀의 한마디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암이 전이되어 폐까지 절제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달력을 펼쳤다.
"언제 시간 돼요? 우리 얼굴 한번 봐요."
가능하면 빨리. 가장 빠른 날로.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리는 늘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 보자고, 언제 한번 만나자고, 시간 되면 연락하자고.
그런데 그 '다음'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루기만 하다 결국 영정사진 앞에서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죽은 후 추억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만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안부를 묻기 좋은 날은 따로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