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일이 쏟아진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일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단체방에 어쩔 수 없이 '늦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더니 이모티콘 하나가 날아온다. 4등 이후 지각비 만 원.
퇴근하자마자 시동을 켰다.
평소 같으면 멈췄을 노란 신호도 그냥 지나쳤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에게 한마디만 남겼다.
"나 간다. 알아서 밥 먹어."
숨이 찰 정도로, 쉬지 않고 달렸다.
장소에 들어서니 늦는다던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어떻게 일찍 왔냐고 물었더니,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지갑을 열어 만 원짜리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누군가 말했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냐고."
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 중학교 독서 모임이다.
처음엔 바카라이었다. 지금은 바카라보다 사람이 먼저다.
누군가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 토론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바카라보다 사람을 만나러 온다.
그래도 이상하게, 누구 하나 어색하지 않다.
학부모 모임은 대개 초등학교 시절에 끝난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아이들이 점점 숫자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그렇다.
우리 모임 안에서도 암묵적으로 안다.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는지.
하지만 학년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서인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 이야기, 회사 이야기, 주식 이야기.
대단할 것 없는 하루의 조각들이 테이블 위를 천천히 오갔다.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따뜻한 봄바람 같은 것이 불었다.
밤늦도록 이어진 자리는,
어느 학원이 좋은지도, 아이의 평가가 들어가지 않았다.
단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정보보다는 웃음을 공유했다.
아이가 받아온 구겨진 성적표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조금씩 얻어갔다.
만 원의 지각비를 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