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장 즐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가는 곳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족 모임 자리에서 불쑥 그 말이 나왔다.
"이번엔 형제들끼리만 가자."
친정 여행이라면 으레 부모님이 함께였다. 당연한 듯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우리끼리만의 여행을 꺼냈다. 부모님은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은근히 함께 가고 싶다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래도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이번 한 번만 양보해 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섰다.
함께한 세월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아진 지금, 어색하면 어떡하나. 말이 끊기면 어떡하나.
기우였다.
함께 길을 나선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배려가 숨을 쉬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들어주고, 걸음을 맞췄다. 간간이 명절 모임에서 봤던 형제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다음에 하자며 아껴두었던 말들, 바빠서 꺼내지 못했던 사연들, 서로의 안에 조용히 묵혀두었던 것들. 맛있는 걸 먹으면서, 걸으면서, 잠깐 앉아 쉬면서, 그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된장 국물이 진하게 밴 어묵 한 꼬치. 뜨겁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다들 두 개씩 집어들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먹는 것도 잊고 이야기를 했다.
웃다가, 잠시 조용해지다가, 또 웃다가.
비가 갠 날이었다.
눈이 부실 만큼 화창한 하늘 아래, 오래된 나무의 잎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 흔들림이 맑은 하늘을 더 눈부시게 만들었다. 다리는 이미 아팠지만, 그 공기에 취해 우리는 계속 걸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누군가 옷을 벗어 건넸다. 말 대신 건네는 괜찮냐는 안부. 그런 것들이 쌓여 하루가 됐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야단법석이 났다. 찍기 싫다는 사람, 인스타에 올려야 한다는 사람.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몰래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 같이 셀카봉 앞에 모였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어깨를 붙이고.
그 사진 속에서 우리는 꽤 잘 웃고 있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예전엔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걷고 싶은 만큼 걷고,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어느새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났다.
"우리도 이제 이렇게 됐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생긴 것도 있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조금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배운 건 없었다.
그 대신, 느낀 것은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나 달라졌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맞는다는 것. 어릴 때 함께 자랐던 시간이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다 큰 어른이 된 형제들의 첫 여행.
특별한 장소도, 특별한 일도 없었다.
그저 함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