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의 빈도

by슈펭 Super Peng

깊이 있는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대개 단단한 얼굴을 그린다. 무엇을 물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안에 이미 답을 가진 사람. 어떤 바람에도 잎 하나 떨리지 않는 나무 같은 사람. 그런데 요즘 나는 그 단단함이 자주 의심스럽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태도라는 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그대로 꺼내 쓴다고 믿지만, 사실은 매번 그 자리에서 다시 짓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문제 앞에서 똑같이 대답한다면, 그건 신념이 굳건해서가 아니라 그사이 한 번도 다시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답이 반복될 때 우리는 그것을 확신이라 부르지만, 멈춰 선 생각도 멀리서 보면 확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깊이를 가늠할 때, 그가 무엇을 얼마나 확신하는지보다 같은 고민을 얼마나 자주 다시 꺼내는지를 본다. 고민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거창한 화두를 한 번 붙들었다 놓는 사람보다, 사소해 보이는 질문을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오늘도 다시 만지작거리는 사람. 그사이 상황은 바뀌고 시점은 옮겨졌는데 같은 자리로 돌아와 다시 묻는 사람. 그렇게 매번 새로 통과한 결론은 작고 소박해 보여도,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가 통째로 들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게 어려워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신념이라는 말을 방패처럼 쓰기 시작한다. 더 묻기 싫을 때, 과거의 나를 부정하기 두려울 때, 행동이 어긋날까 겁날 때. 신념은 그럴 때 가장 편리한 단어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념을 꺼내는 일은 어딘가 비겁하고, 오히려 "지금 이렇게 생각하지만 내일의 나는 또 달라질 수 있다"라고 인정하는 쪽이 훨씬 정직하고 용감하다. 평생 변하지 않겠다고 감정을 약속하는 사람보다, 상황이 달라지면 행동을 고쳐 잡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더 믿는다. 감정은 약속할 수 없지만 행동은 약속할 수 있고, 관계를 실제로 살리는 건 늘 후자 쪽이었다.

이 모든 게 가능하려면 마음이 메말라 있지 않아야 한다. 다시 묻는 일에도 체력이 든다. 슬플 때 슬프다고 느끼고, 힘들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설 여력을 남겨둔다. 번아웃은 너무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자꾸 눌러두는 데서 더 빨리 온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슬픈 영화를 틀어놓고 조용히 운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통로를 막지 않으려는 일이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강해진 게 아니라 다시 물을 여유조차 잃어버렸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자꾸 지루해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모든 스텝이 정해진 삶에는 우연이 끼어들 틈이 없고, 우연이 사라진 자리에선 질문도 잘 자라지 않는다. 예측 가능한 하루는 안전하지만, 안전한 만큼 마른다. 가끔은 계획을 멈추고 어제도 했던 그 고민을 한 번 더 꺼내보는 일이, 내 삶에 일부러 우연을 들이는 가장 조용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자바카라할 필요는 없다. 자주 흔들리고, 그 흔들림 끝에 다시 나를 정돈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깊은 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오늘 밤에는 무언가 결론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다만 헤아려보고 싶다. 요즘 나는 어떤 질문 앞으로 자꾸만 되돌아가고 있는지.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자바카라할 필요는 없다. 자주 흔들리고, 그 흔들림 끝에 다시 나를 정돈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깊은 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래 한 가지를 믿어온 사람을 존경하도록 길들여졌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사랑의 증거이고, 흔들리지 않는 입장이 인격의 척도라고.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이 정말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건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세상이 그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흔들림은 약함의 자국이 아니라, 외부의 무언가가 아직 내 안에 가닿고 있다는 증거다. 닫힌 문은 두드려도 떨리지 않는다. 떨리는 것은 아직 열려 있는 문뿐이다.

오래된 생각일수록 위험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 번 내린 결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처럼 굳어진다. 처음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였던 것이, 어느새 "원래 그런 것이다"로 바뀐다. 의견이 사실의 자리에 슬그머니 올라앉는 것이다. 그렇게 굳은 생각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예외를 못 본 척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는 게 아니라, 고집을 흔들어줄 질문을 스스로 점점 덜 허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 일은 사실 자기를 한 번 무너뜨리는 일에 가깝다. 어제 세워둔 결론을 오늘 다시 들여다보려면, 그 결론에 기대어 있던 나를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과 자기 자신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의심받으면 존재를 의심받는 것처럼 아파한다. 깊은 사람은 이 아픔을 견디는 사람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동시에 쥐고 있는 사람. 그 둘을 함께 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방어하지 않고 묻는다.

어쩌면 진짜 단단함은 변하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변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강물은 단 한순간도 같은 물로 흐르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같은 강이라 부른다. 매번 다른 물이 지나가는데도 강은 강으로 남는다. 사람도 그렇게 흐를 수 있다면. 어제의 생각을 오늘 고쳐 쥐고, 내일이면 또 다르게 바라보면서도, 그 모든 변화를 가로지르며 끝내 나로 남는 사람.

그러니 오늘 밤에는 무언가 결론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다만 헤아려보고 싶다. 요즘 나는 어떤 질문 앞으로 자꾸만 되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나를 얼마나 부드럽게, 그러나 끝끝내,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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