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라는 말을 오해하며 살았다

by슈펭 Super Peng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즐거웠던 것 같은데, 집에 오면 기운이 없었다. 처음엔 내가 이상한 줄 알았다.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왜 더 외로운 것 같지.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로움은 사람의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다.

슬롯심리학자 존 카치오포는 20년 넘게 고독을 연구하며 이것을 밝혔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연결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으면서도 충만할 수 있다. 외로움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질의 문제다. 그러니 사람을 더 많이 만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연결 없이 숫자만 늘리는 것은, 오히려 그 공허함을 더 선명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라는 상태를 두려워하도록 훈련받았다.

슬롯가 가르쳐온 행복의 공식은 단조롭다. 적당한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증명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이 하나의 당위처럼 어깨를 누른다. 혼자 밥을 먹으면 측은하고, 혼자 영화를 보면 쓸쓸하고, 혼자 여행을 가면 용감하다는 말을 듣는다. 혼자라는 상태 자체에 끊임없이 의미가 덧씌워진다. 그 시선에 익숙해지면, 나 스스로도 내 고독을 결핍으로 읽기 시작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을 본래성(authenticity)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그가 '세인(das Man)'이라고 부른, 익명의 다수가 정해놓은 방식으로. 결혼해야 할 나이, 있어야 할 관계, 채워야 할 자리. 그 규범은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모두의 목소리가 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그 소음 속에서 멈추고,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실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혼자라는 시간은 그 귀 기울임이 가능한 유일한 자리다.

자율성(autonomy)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다. 자기 결정이론을 정립한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인간이 내적으로 동기부여되기 위한 세 가지 기본 욕구 중 하나로 자율성을 꼽았다.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는 감각. 그것이 충족될 때 사람은 단순히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고 느낀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주말 계획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오늘 무엇을 먹고, 어떤 바카라을 읽고, 어디로 걸을지를 오직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결정하는 일. 이 사소해 보이는 선택권이 쌓여,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완성한다.

타인에게 맞추느라 마모되었던 자아는, 역설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가장 단단하게 회복된다.

한나 아렌트는 고독(solitude)과 고립(isolation)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고립은 타인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지만, 고독은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인간은 자신과 대화한다. 그 대화가 사유의 출발점이고, 사유가 행위의 기반이 된다. 고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한 사람이 타인과 진짜로 만날 수 있을까.



뇌과학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회로는 자기 참조, 즉 나는 누구인가를 처리하는 영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때, 이 회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약속 없는 저녁을 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것이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뇌는 그 시간 동안 가장 깊은 자기 통합 작업을 한다.


혼자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방식도 다르다. 한 사람에게 삶의 전부를 의탁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의 지도가 더 넓어진다. 생태학에서는 단일 작물만 심은 밭이 병충해에 가장 취약하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회복력이다. 관계도 그렇다. 한 종류의 연결에만 기대는 삶은, 그 연결이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진다.

물론 혼자 걷는 길에도 현실적인 불안은 있다. 그 무게가 가볍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어떤 삶을 선택하든 각자의 과제가 있다. 결혼한 사람에게도,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삶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렵다.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살고 있느냐다.



폴 틸리히는 고독을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용기"라고 불렀다. 그 용기가 없으면, 우리는 평생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번역하며 산다. 혼자라는 상태가 두렵지 않게 되는 날은, 자신과의 관계가 충분히 안전해진 날이다.

나는 오래 혼자라는 말을 오해했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라고. 그러나 소음이 걷힌 자리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오랫동안 타인의 언어로 덮여 있던, 나 자신의 목소리.

그것을 듣는 일이,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관계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과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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