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집념
축구를 보다 보면 인생이 보이곤 한다.
처절한 경쟁.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손을 대지 않고 발로만 고무로 만든 공을 차서 골대에 넣는,
어찌 보면 유치한 게임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막대한 상금
세계 최고라는 title
국가 간 경쟁
그런 것들이 아마도 과거 콜로세움에서 피 튀기는 검투사들 간의 대결 못지 않게
축구, 그것도 월드컵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오늘 나는 집념이라는 단어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집념이란 무엇일까?
무언가 해내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고 이루고자 하는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는 달콤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이다.
훈련 과정도 때로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것이고, 몸으로 부딪히며 치르는 게임이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도 있으며 다쳤을 때 재활의 과정도 힘들 것이다.
사실 메시를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저렇게 엄청난 연봉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서 돈도 많을 것이고, 세계 최고의 축구 팀 FC Barcelona의 Ace로 뛰며 발롱도르를 수차례 차지했다. 지난 월드컵에선 Last Dance로 불리며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는데도, 87년생 40세가 다 되어서 월드컵에 또 나오고 저렇게 열심히 뛰며 겨우 경기를 뒤집어서 이기자 눈물까지 흘렸다.
솔직히 할 만큼 했고 이 정도면 되었지 뭐
그런 생각이 안 들까.
사실 그런 선수들도 많다.
가진 것도 없고 유명해지기 전에는 열심히 뛰다가, 국가 대표를 달고 월드컵에 나가고 해외 진출해서 벌만큼 벌고 나서는 딴 짓도 많이 하고, 부상 위험 때문에 슬슬 뛰고.
메시와 비교해 보면 당연히 별로지만 사실 인지상정 이해는 된다.
돈이 없어서 아침부터 회사에 나가서 밤 늦게까지 야근하며 일하던 회사원이,
갑자기 1000억 원이 생기면 일이 하고 싶을까?
놀면 뭐 하니라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슬렁슬렁 할 수 있는 일들도 꽤나 많을 텐데 저렇게 메시처럼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축구를 정말 좋아해서 저러는 것 같기도 하고, 잘하는 것이니 평생 저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월드컵을 보는 것이겠지.
삶에 대해, 다양한 인생, 나라의 서사들의 만남과 부딪힘을 보게 되니까.
아르헨티나는 그들이 속한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으로 이변 없이 토너먼트 행을 확정지었다.
알제리, 오스트리아, 요르단과 한 조라서,
이전 32강 체제에 비해서, 이번 48강 체제에서는 죽음의 조는 별로 없었고,
아르헨티나가 속한 J조에서 그들의 1위 조별 리그 통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더욱이, 전 대회 예선에서 사우디에 일격을 당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약팀을 만나도 방심하지 않고, 정말이지 열심히 뛰었다.
상대가 약하면 대충할 법 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월드컵은 월드컵.
승리에 대한 집념의 결전은 32강전에서 바로 드라마를 썼다.
상대는 카보베르데. Cabo Verde.
남미, 아프리카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고 주재원까지 했던 나인데도, 이 나라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그나마 베르데가 스페인어로 녹색이라, 녹색의 무엇인가 정도의 짐작할 수 있는 수출강국 해외사업 회사원의 감 정도였다.
카보 베르데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라 나라 이름도 포르투갈어였는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옆 나라답게 언어가 다르지만 비슷한 단어도 많고 그런 것 같다. 나라 이름의 어원은 세네갈 연안의 베르데 곶 Capvert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명명되었다고. “녹색의 곶”이라고 보면 되겠다.
인구 50만이 조금 넘는, 우리 나라 지방의 조금 큰 도시 정도 되는 나라의 축구팀이. 48강 체제가 아니고 32강 체제였다면 본선에 진출하기 어려웠을 팀이라 생각했는데,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도 카메룬을 이기고 D조 1위로 당당히 월드컵 본선에 입성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파란은 예고되었을지 모르겠다.
본선 조별 리그에 진출해서는 첫 경기부터 강력한 우승후보로 불리는 스페인을 당황시켰다. 특히, 40세의 골키퍼 보지냐 (Vozinha)의 선방쇼가 빛났다. 우리도 2002 월드컵 당시 이운재의 스페인 전 승부차기 선방이나 다른 골키퍼들의 선방쇼를 보아왔던 터라,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감동을 주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수차례 결정적인 슛을 막아내며 4강에 안착하고 우승을 바라볼 정도의 스페인과 비기다니.
2차전에서도 그들은 통상 8강 팀이라 불리우는 우루과이를 만나 분전하며 다시 무승부를 기록하고, 2무 1패에 그친 우루과이를 누르고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해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여기서 월드컵 2 연속 우승을 노리는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스페인과 무승부를 기록한 신흥 다크호스 카보 베르드의 역사가 쓰여지는데, 처음 메시가 전반 29분 자신에게 넘어 온 공을 골문 앞에서 간결한 터치 후 선제골을 넣으며 웃음 지을 때만 해도 역시 카보베르데는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예선전 3전 전승의 아르헨티나에 후반전 일격을 가했다. 데로이 두아르테가 후반 59분, 각이 될까 싶었지만 지난 월드컵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 마르티네스 골키퍼조차 그들의 집념을 막지 못할 정도의 슛을 날려서 동점을 만들었다.
보지냐 골키퍼의 선방쇼가 이어졌지만, 아르헨티나 리산드로 마르티네스가 데로이 두아르테와 비슷한 위치에서 각이 없어 보이는데도 기어이 골을 넣으며 이렇게 정리되는가 싶었다. 멋진 터치와 골이 2002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을 상대로 골을 넣은 박지성이 연상 되었다. 세계 최강 팀이 저렇게 계속 공격하는데 아무리 엄청난 골키퍼라도 뚫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카보 베르데는 포기를 모르는 팀답게 시드니 카브랄의 골로 기어이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저 각도에서, 저 거리에서 골이 들어갈까 싶었는데 집념이란 이렇게 무섭다. 포기할 법도 했는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너무 흥분해서 관중석에 여자 친구를 찾으러 뛰어 들어간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전사가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모두의 앞에서 당당히 그 여자와 포옹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승리의 여신은 아르헨티나에게 미소 지었다.
승부차기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을 것인데, 연장 111분 코너킥 상황에서 카보 베르데 디네이 보르제스의 자바카라골로 승부는 갈렸다. 마지막 메시와 보지냐. 창과 방패의 서사가 만나 마지막 서로를 인정하며 악수하는 장면도 참 멋있었다. 진심과 실력은 이렇듯 감동을 준다.
그렇게 연장 혈투 끝에 16강에 올라온 아르헨티나의 상대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파라오로 상징되던 이집트는 축구팬들에겐 모하메드 살라의 조국으로 상징되는 팀이다. 리버풀 소속으로 EPL 우승을 하며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호령하던 그. 우리의 손흥민과 EPL 공동 득점왕일 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조별리그 G조에서 벨기에와 한 조가 되었지만, 이란, 뉴질랜드와 한 조라 토너먼트 진출 확률이 높았던 그들은 벨기에와 비기고, 뉴질랜드를 잡으며 1승 2무, 조 2위로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32강에서 호주를 승부차기 천신만고 끝에 누르고 올라온 그들의 기세도 예사의 것이 아니었다.
16강전에서 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먼저 넣었다.
야세르 이브라힘 (전반 15분 헤딩골)
그리고 전반 20분 페널티 킥 기회를 얻은 메시.
동점 기회에서 그의 페널티 킥이 이집트 집념의 골키퍼에게 막히고 말았다.
로베르토 바조처럼 스타는 월드컵과 같은 큰 경기에서 그 잘 넣던 골을, 그것도 PK를 부담감에 이렇게 실축하거나 막히곤 한다. 음바페도 이번 월드컵 모로코와 8강전에서 PK 실축을 했다. 둥근 공. 알 수 없는 인생.
이후에도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실수를 만회하고 따라 붙으려고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번번이 막혔다.
그리고 맞이한 후반전.
그렇게 열리지 않던 이집트의 골문.
원래 계속 공격하다 보면 힘이 떨어지고 역습을 당하게 마련이다.
후반 67분. 역습기회에 쇄도하며 달려오는 이집트 모스타파 지코에게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만다.
그렇게 두 번째 골이 쐐기골이고, 남은 시간이 역전시키기엔 짧다고 생각했던 찰나,
후반 종료 11분을 남기고 아르헨티나의 매서운 몰아침이 시작되었다.
때로 90분 내내 골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승리의 집념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 강팀에게 10분은 3골을 넣기에 충분했다.
이집트도 처음엔 긴장하고 열심히 했지만 두 골을 넣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으면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 같은 강팀을 상대로 방심은 그대로 끝이다.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후반 79분 헤더로 추격골을 넣는다.
골을 넣고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동점골, 승리골을 넣고 말겠다는 그들답게 경기 재개를 서둘렀다.
그리고 메시가 83분 기어이 혼전 중에 동점골을 꽂아 넣었다.
폴짝 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축구와 승부에 정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미지막, 엔소 페르난데스가 후반 연장전 극적인 헤딩 결승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승리의 눈물을 흘리는 메시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맛에 축구 한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스위스를 맞이하는데, 아마도 무난히 그들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하리라 예상된다.
4강 팀답게, 이미 대진이 확정된 또 다른 4강 팀 프랑스와 스페인의 승자와 결승에서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8강전 노르웨이와 잉글랜드 중 승자가 4강에 올라와서 아르헨티나와 대결하게 될 텐데, 홀란의 노르웨이가 올라오면 전 대회 모로코와 같은 다크호스, 잉글랜드가 올라오면 역시 4강 팀 하지만 결승전엔 어울리지 않는 팀이 되어 아르헨티나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잉글랜드 헤리 케인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위해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으로 갔지만 결국 4강에서 파리 생제르망에 막혀서 4강에 만족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결승에서 아스날을 꺾고 파리 생제르망이 우승했다.
덥고 바쁜 일상에, 감동과 함께 일상의 휴식이 되어 준 월드컵.
북중미 월드컵이 끝나면 미국 호텔비도 내려갈 것이고 다시 출장을 가게 될 것 같다.
성실히 한번 가보련다.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