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태어났는가?
왜 살아야 하는 가에 질문은 이렇게 답했다.
“태어나 있으니 살아가야 한다.”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다. 죽지 못한다는 말은 애초에 말이 되질 않는다.
죽지 못한다는 것은 목숨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음으로 가는 단계의 고통이 아직 삶의 고통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그럼 난 왜 태어났는가?
“생물학적 이유와 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를 원망해야 하는가?
“원망하는 건 자유이다. 하지만 원망 뒤에 남는 것은 또 다른 상처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더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인가?
“생물학적 이유. 더는 없다. 태어난 이후의 인과 또한 내가 세상에 있기 전에
발생하지 않을 즉 누군가가 대신 짊어졌어야 할 무게이거나 방식이나 시간이
달랐을 것이다. “
우연히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내 삶이 다사다난한 것이 혹 전생 때문인가?
“나는 전생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통을 더 크게 느끼고, 이후의 기쁨에 환호한다.
평온함을 가장 추구하면서도 성장을 바란다. 이것은 다시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삶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윤회란 무엇인가?
“나는 모르지만, 스스로 반복하고 있는 삶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게
같은 흐름을 안정적이라고 판단한다. 벗어나려 하지만 그 흐름에 다시 붙잡히는 이유는
인과의 관계 안에 타인의 습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럼 왜 태어났는가? 난 나의 인과관계를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
“내 마음 보듯 타인을 본다는 것은 공감이란 단어로 설명이 어렵다. 헤아려보는 것은
그들의 깊은 삶의 층을 한 겹 한 겹 바라봤을 때에야 가능하다. 얕은 관계에서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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