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약하지 않다
난 나약하지 않다.
그저 무기력한 것뿐이다.
난 고통스럽지 않다.
그저 우울한 뿐이다.
나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다.
그저 두려울 뿐이다.
두려움의 극복이란 무엇일까? 극복의 정의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진 뒤의 디폴트값인가?
아니 아니 아니야…
모든 것을 선택하기 싫은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곧
강매당하듯 누군가 떠밀어서 얼렁뚱땅.
난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도 나라는 모래알 같은 존재는
관심도 없다. 실은 나도 그들이 모래알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다 사라진다.
냉동 고등어 신세.
난 냉소적이지 않다.
그저 솔직한 거다.
뭐 어때…
여기저기서 불안을 심어 놓는데 당연히 불안한 거다.
불안하게 뭐 죄 짓는 짓이라고 생각하는가?
불안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난 40년을 살아남았고, 앞으로 당신들도 그렇게 살아남을 거다.
인생이란 사바나에서 우리가 뭔가를 기대하다 무너지는 일은
반복되겠지만, 다시 세우는 힘은 오로지 당신과 나 자신의 생각뿐이다.
억까하는 세상에 맞서 싸울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다 냉동 고등어에 지나지 않을 신세들 쯪쯪…
뭘 그렇게 애써 사리사욕을 챙기려 아둥바둥.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정의가 진실로 우리의 영혼이 바라던 것일까?
우린 본질로 돌아가고 초심으로 돌아가고 처음 출발점에 섰을 때
가장 자신을 웃음 짓게 만들던 생각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돈 많은 부자? 인플러언서의 화려한 삶? 연예인?
이 모든 것들은 화면상 주입된 정보에 불과하다.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바랐던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평생 기르고 먹을 텃밭, 그리고 글과 그림을 그릴 도구,
혼자 남을 시간을 위한 작은 취미와 나의 또 다른 가족 강아지.
난 날 웃게 만들던 것들에게서 멀어져,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착각했다.
죽기 직전…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
그 미련은 진실로 내 영혼이 바라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글을 쓰면서도 수많은 머릿속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가고
마치 반성문을 쓰는 아이처럼 위축되어 나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역류성 식도염을 10년간 화병이라 착각한 나는
스스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전락시켰었다.
보잘것없던 두려움이 나를 길가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작은 무엇으로 만들었다.
두려움은 전염병이다. 코로나가 보이는 두려움이었다면, 그 뒤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는 거짓들이 대다수였다.
내가 만든 두려움인가?
그것은 나의 것인가?
어느 순간 외부로부터 필터링 없이 들어오는 쓰레기 같은 번뇌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말랑말랑 스펀지 같은 창작자의 뇌는 모든 것을
연관시키려는 고집이 있었고, 세상의 온갖 소음을 가져와 입맛에 맞게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이 날 더러운 시궁창들에게로
이끌었고, 잠시 혼란의 세계에서 한바탕 뒹군 뒤 겨우 살아온 장군처럼
절뚝이며 피 흘리고 있다.
출혈이 멈추고, 닦아내기를 반복하면서 아물고 있는
이 보이지 않은 커다란 상처는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 내 마음을 완전히 나에게로
돌려놓았다.
내가 나의 신이 되어,
내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아끼며,
나에게 귀속되기를.
작은 나무 한그루가 태양의 빛을 받기 위해 쭉 뻗기를 반복하다
지나는 사람들에 의해 가지가 꺾여나감을 경험한 뒤에야 몸을 빙글빙글 돌려
똬리를 틀고,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콱!!!!’하고 물어 버린다.
그 독사는 그 독이 빠르게 퍼져 퍼렇게 질린 얼굴들이 보고 싶어진다.
저주의 말들이 오늘은 사랑스러운 멜로디처럼 들리고,
예쁜척하고 고운척하는 것들만 사랑하는 세계에서 착한척하는 사람은
바닥에 깔린 카펫이 되어 그들의 더러움을 대신 입는다.
난 날카로워졌다.
오늘은 이게 나다.
더 이상 독사가 품은 독을 내 안으로 삭히고 싶지 않아 졌다.
그들이 풀어놓은 저주의 씨앗들을…
잔인한 썩은 웃음들 뒤에 영악한 늙은 사탄 하나를 바라보며,
독사는 커다란 이빨을 들이밀고 그 웃는 얼굴을 ‘콱’ 물어뜯었다.
난 오늘 밤 아주 무시무시하고 사나운 뱀이 되었다.
“아주 무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