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운동
달리고 싶어서 달렸다.
어젯밤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펑펑 울다가
케이크 먹고 싶어서 망고 케이크 사다가 베지밀하고 먹었다.
맛있었다.
꾸미기 싫다. 그냥 막살아보고 싶다.
내가 막산다는 것은…
자연을 만끽하고 막 달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짜증 나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물론 사람에게 그러진 않을 거다.
그러고 싶어졌다.
치유의 한 과정이다.
뭐 어때, 내 인생 내가 산다는데 뭔 상관임.
아기처럼 짜증도 내보고 그래서 맛난 거로 달래 보고.
요런 거 받아먹는 재미도 있다.
난 그래본 적이 없어서
이래놓고 나에게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한다.
달릴 때 간혹 꼬랑내 비슷한 게 올라오면 양 눈썹을 한대 모으고
욱~ 욱~ 소리도 내보고, 웃기면 웃어도 보고 막 그런다.
길에서 노래 부르는 거 못했었는데,
이제는 작게 흥얼거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덜 미워진다.
내 멋대로 며칠 살고 나니까 안 미워.
왜냐하면
이제 내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기분 나쁜 일에 반응을 안 하게 된다.
요즘은 요리도 관심이 있다. 대부분 그냥 만들어진 거
사 먹는 거지만, 내가 만들지 못하는 음식들 먹으니까.
새롭고 흥미롭다.
이것도 치유의 한 과정인 듯 보인다.
나는 어제 일기 같은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온라인카지노에 올리고 싶었는데,
내가 글을 읽어도 불쌍해서 동정받기 싫어서 안 올렸다.
응, 이게 그냥 나다.
둥글고 커다란 공이 여러 모양으로 변해버려서 이제 맞춰지지도 않는다.
지금은 이 상태가 좋다.
흐르는 계속물의 일부가 돼서 흘러가는 느낌이다.
바위마다 피할 필요도 없이 스무스한 젤리처럼
흘러내린다.
조금씩 응원하여도 하고 싶다.
마음 한편에 응원을 한다.
나를 사랑하면 조금씩 감겼던 눈이 떠지는 것 같다.
아직은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하지만, 나는 내가 존경하던 작가의 글을 읽고
이렇게 부끄럼 없이 감정을 남기는 행위도 용기라는 것을 배웠다.
맞다.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솔직히 말하면 타인의 약점이 된다지?
약점 잡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하면 그만이다.
삶의 내공은 보이지 않는 사이 훌쩍 자라 버린다.
그때는 상처였고, 한때는 냉소였고, 지금은 가소롭다.
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질 거다.
감정은 이렇게 무뎌지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점점 나로 돌아가는 거니까.
난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러기를 택한 거다.
좋다.
치유의 시간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혼란 안에서도
내 것이 보여서 그걸 따라간다.
희망? 빛? 사랑?
뭐 그런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안녕, 인연들.
우린 50년 안에 다 사라질 사람들.
그냥 웃고 떠들기에도 모자라는데
뭐가 다들 이리도 복잡한지.
인연도 배우고 세상도 배우고
어차피 갈 곳은 나의 집.
복잡하게 번뇌를 만들어도 난 상관없어.
내 거 아니니까.
내 번뇌도 네 것 아니야.
그냥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고 사는 거겠지.
헤헤
그냥 웃어버리자.
허무한 거는 이 세상에 없어.
냉소라는 단어는 냉소를 이해한 사람이 만든 단어.
없었어. 애초부터.
가치? 그런 것도 없어도 돼.
그런 단어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헤매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니까.
지금 잘 살아 있으면 돼.
그거면 되었지 뭐가 더 중요함?
치킨도 먹고 싶다.
그럼 먹는 거지 뭐.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