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남매의 전쟁

.

by잭슨

부회장실의 차는 향이 좋았고, 이준은 찻잔에 입을 대지 않았다.

"강이준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장도원 부회장은 쉰둘이라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고, 목소리는 라디오 진행자처럼 부드러웠다. 방에 들어온 지 삼 분이 지나도록 그는 목소리를 한 번도 높이지 않았고, 높일 일이 없어 보였다.

"로지스 투자 보류 건, 나는 나쁘게 안 봐요. 오히려 고맙지. 팔백억짜리 결정에 구멍이 있으면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요즘 회사엔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눈치만 보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장도원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구멍을 찾는 눈과, 구멍을 어디에 보고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예요. 이번 건은 전략실 보고서로 이슬롯를 세웠지. 결과는 같았겠지만, 그 보고서가 내 바카라상을 먼저 거쳤다면 로지스는 안건을 자진 철회했을 거고, 회사 체면도 살았을 거고, 강이준 씨는 적을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백 사장이 지금 이준 씨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모릅니다."

"알 필요 없어요. 그런 말은 내가 막아줄 수 있으니까."

거래의 문장이었다. 보호를 줄 테니 보고를 다오. 이준은 시선을 내리지 않고 대답했다.

"보고 라인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요. 다만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부회장님과 같다면, 제 보고서는 언제나 부회장님 편일 겁니다."

장도원은 이 초쯤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이라. 좋네요, 그 말. 숫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어예요."

그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부회장실 창은 서쪽이었고, 멀리 물류 단지의 크레인들이 보였다.

"강이준 씨.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 손을 잡고 서진항 매립 현장을 봤어요. 뻘밭이었지.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여기가 네가 지킬 땅이다. 아홉 살한테요. 그날부터 나는 이 회사가 잘못되는 꿈을 꾸면 잠에서 깹니다. 사십 년째. 남들은 그걸 욕심이라고 부르던데."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맺었다.

"욕심 맞아요. 그런데 회사가 무너지면 나는 뭐가 되는지, 그 대답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이준 씨는 있어요? 회사 바깥의 자기라는 거."

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만은 연기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방을 나올 때까지 대양테크의 대 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잭슨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과, 마음이 뜻대로 정리되지 않는 순간을 씁니다. 온라인 게임, 관계, 불안, 바카라임과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오래 남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11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10. 분식의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