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콜라보 유니폼 열풍이 구단 브랜드 자산에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
TV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는데 어느 구단의 응원석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기묘한 광경.
분명 여러분들께서도 경험한 적 있으시리라 여겨집니다.
KBO리그 내 10개 구단은 전통적인 홈&원정 유니폼 대신 포켓몬, 도라에몽, 망거리진곰, 헬로키티, 크레용신짱, 틴틴팅글, 춘배와 친구들, 치이카와(먼작귀), 카지노프렌즈, 가나디, 티니핑, 브롤스타즈, 에스더버니, 파워퍼프걸 등의 인기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IP와 협업한 각양각색의 콜라보 유니폼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습니다.
굿즈의 주 소비층으로 급부상한 2030세대와 여성 팬들의 기호에 맞춘 이러한 전략은 마케팅 부서 입장에서는 일종의 ‘치트키’와도 같습니다.
출시만 했다 하면 오픈런과 품절 사태가 이어지니, 매출 극대화 측면에서 볼 때 이보다 확실한 성공 방정식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본질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면 마냥 미소만 지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의 매출 창출 이면에서 구단의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인 ‘브랜드’의 정체성이 서서히 해체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콜라보 유니폼은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야구장이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 응원을 중심으로 하는 흥겨운 문화와 놀이의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유니폼 또한 일상에서도 기꺼이 입을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 중입니다.
트렌디한 IP와의 협업은 프로야구에 관심이 없던 잠재 고객을 야구장으로 유인하고, 기존 팬과 구단 간의 연대감(내집단 동조 현상)을 강화합니다.
이를 통해 구단은 ‘경기력 중심의 비즈니스’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이는 콜라보 유니폼이 가져오는 분명한 긍정적 효과입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 또한 존재합니다.
프로야구단의 브랜드 정체성은 오랜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온 고유의 색상과 로고, 심볼(엠블럼) 등의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콜라보 유니폼의 양산은 이러한 구단의 상징을 가리고 경기장 전체의 시각적 통일감을 해칩니다.
앞서 언급 드렸던 것처럼 (콜라보 유니폼으로 인해) 먼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어느 구단의 응원석인지, 우리 구단의 색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워진다면, 이는 구단이 가진 브랜드 자산을 스스로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단기적인 현금 흐름(Cash Flow)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 가치를 잠식하는 리스크를 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의 명문 구단들은 브랜드 자산을 극도로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다룹니다.
MLB의 뉴욕 양키스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홈경기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과 원정경기의 회색 유니폼이라는 전통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습니다.
선수들의 유니폼 뒷면에 이름조차 새기지 않는 고집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으며, 양키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곧 팀의 정체성’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최근 들어 MLB가 나이키와 손잡고 각 연고지 도시의 서사를 담은 ‘시티 커넥트(City Connect)’ 유니폼 시리즈를 도입*하며 상업적인 타협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구단의 역사나 연고지의 정체성을 재해석하는 범주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뿐입니다.
KBO리그의 사례와 같이 외부 캐릭터 IP에 유니폼을 통째로 내어주는 방식은 사실 상상조차하기 힘듭니다.
(*뉴욕양키스는 시티 커넥트 유니폼조차 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시 전통적인 오렌지와 블랙의 컬러 가이드라인을 극도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IP(포켓몬, 귀멸의 칼날 등)와 콜라보를 진행할 때도 선수들이 입는 경기용 유니폼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타올, 모자, 키링 등의 스페셜 굿즈나 ‘이벤트 데이’ 한정 프로모션 유니폼* 및 의류 등으로 영역을 철저히 격리하여 운영합니다.
이는 현장의 팬덤을 자극해 목표로 하는 매출은 올리되, 구단 브랜드의 핵심 상징인 홈&원정 경기 유니폼의 신성함과 일관성을 지켜내는 영리한 이원화 전략입니다.
(*프로모션 유니폼도 디자인 구성의 일관성은 유지합니다 -Jordan Brand 콜라보 유니폼- 아래 사진 참조. 7/31~8/2 경기 중 착용 예정)
(**제가 최근에 확보한 '히로시마 카프의 귀멸의 칼날 콜라보 유니폼' 또한 디자인 원안은 유지하되 콜라보 패치만 추가로 삽입하는 형태로 제작 및 출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KBO리그 각 구단의 행보는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잘못된 방향일까요?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는 미국,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소위 ‘K-스포츠’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7년 스포츠산업진흥법이 도입된 이후, 각 구단들은 모기업의 홍보 수단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멍에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비즈니스 모델(전자공시시스템 내 각 구단 별 감사보고서-주석 참조*)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활발한 마케팅을 통해 매출 증대를 추구하는 것은 구단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한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또한 소비자의 필요(Needs)와 요구(Wants)에 적극 부응하는 것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자의 절대적 사명임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엔터테인먼트이자 팬덤 문화로 진화 중인 KBO리그의 핵심 소비층인 2030세대 및 여성 팬들의 기호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고도 상식적인 비즈니스 전개 방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단 브랜드 자산의 뿌리까지 뒤흔들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에 각 구단마다의 특성을 반영하여 저마다의 ‘브랜드의 일관성’과 ‘상업적 유연성’ 사이의 균형 감각을 키우시길 권해드립니다.
일례로 선수들이 직접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는 공식 유니폼만큼은 구단의 고유 컬러와 상징 등의 헤리티지를 엄격히 유지하고, 팬들을 위한 콜라보 유니폼은 스페셜 에디션 굿즈 혹은 이벤트 의류의 영역으로 명확히 포지셔닝하는 등의 절제된 가이드라인을 운용하는 것은 분명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브랜드 자산은 한 번 무너지면 이를 재구축하는 데 수십 년의 세월이 소요됩니다.
모쪼록 KBO리그의 각 구단이 단기적인 굿즈 매출의 흥행에 안주하지 않고, 축적의 시간을 통해 다듬어 온 각자의 브랜드 자산을 굳건히 지켜내는 현명한 타협점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 단국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겸임교수 김경민 (kimkyungmin@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