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와 위대함의 차이-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의 원칙

by김경민


『인기와 위대함의 차이 -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하여』


2026년 MLB 명예의 전당 헌액식이 열렸습니다.

제프 켄트, 앤드루 존스, 그리고 카를로스 벨트란. 한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전설들이 주름진 얼굴로 각자의 액자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새삼 실감 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제가 유독 관심을 두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액자들이 ‘어느 구단의 모자를 선택하는가’입니다. 액자 속에 새겨지는 모자는 선수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팀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저를 비롯한 팬들의 관심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제프 켄트와 앤드루 존스는 예상대로 각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선택했습니다. 카를로스 벨트란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존재로 인해 아주 살짝 애매했었는데, 결국 순리대로(?) 전성기를 보냈던 뉴욕 메츠의 모자를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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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명예의 전당이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최고의 권위를 유지해 온 비결은 바로 '인기'와 '위대함'을 철저히 구분한 것에 있습니다.

아무리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선수라 할지라도, 시대를 지배했다고 평가받을 만한 압도적인 기록이 없다면 명예의 전당 문턱을 넘기 어렵습니다. 3,000안타, 500홈런, 300승, 3,000탈삼진 같은 불멸의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정직성과 스포츠맨십, 그리고 야구 발전에 대한 기여도 또한 엄격한 평가 요소입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은 단순한 인기투표의 결과물이 아니라,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 위에 위대한 업적을 성공적으로 더한 이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KBO리그 역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부산시 기장군 소재)' 개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리그 출범 이후 수십 년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한국야구를 빛낸 전설들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KBO리그의 흥행 돌풍을 주도하는 2030세대와 여성 팬덤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 속에서, 과연 '인기 있는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팬덤의 성장은 KBO리그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활화산 같은 직관 문화는 리그 구석구석에 활기와 열정을 더했고, 그 속에서 굿즈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미디어의 관심도 또한 나날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 결과 KBO리그는 스포츠의 범주를 넘어 성공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진화 중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팬덤 중심의 소비 문화가 기록 중심 업적으로 평가 받는 운동선수의 가치평가 잣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분위기를 살펴보면 야구 실력이나 통산 성적보다 스타성, 외모, 팬서비스, SNS 화제성이 더 큰 주목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팬덤 내에서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을(를) 위시한 각종 스탯보다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서사와 호감도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선수가 올스타전 퍼포먼스를 언급하며 "야구 성적(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일부 팬들이 비난을 쏟아냈던 장면은, 선수를 바라보는 팬덤의 기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 양상 자체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가 흐르면 팬 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소비 문화와 팬덤의 평가 기준이 명예의 전당 헌액자 선정이라는 역사적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거대한 팬덤 여론과 KBO 특유의 온정주의가 투표인단에게 적지 않은 부담과 외압으로 작용한 끝에, 그것이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은 그 권위를 잃고 그저 '팬들이 사랑했던 선수들의 전시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팬들의 성원은 분명 리그를 성장시키는 힘이지만, 명예의 전당을 채워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인기의 크기가 아니라 선수가 남긴 스포츠 본연 기록의 깊이와 역사적 가치입니다.


따라서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선정만큼은 외부 여론으로부터 철저히 독립된 투표 시스템과 흔들림 없는 엄격한 평가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1,300만 관중 시대 개막을 목전에 둔 KBO리그가 진정한 기록 스포츠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길은, 화려한 흥행 뒤에서도 야구 본연의 가치를 흔들림없이 지켜내는 데 있습니다.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은 그 가치와 원칙이 가장 엄정하게 구현되는, 대한민국 야구의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출처: baseballhall 공식 인스타그램


- 단국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겸임교수 김경민(kimkyungmi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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