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뽑으신 거 혹시 ‘바르바토스’인가요?”
용산 아이파크몰 6층의 건담 가챠(Gacha) 머신 앞.
캡슐을 손에 쥔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왠 낯선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뉴건담’과 바꾸지 않으시겠어요? 제가 뉴건담이 너무 많아서요.”
저는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가 선심 쓰듯 그와 가챠를 맞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방금 뽑은 바르바토스가 아니라 상대방이 내민 뉴건담이었거든요.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두 사람이 자그마한 건담 피규어를 두고 협상을 하고, 맞교환 후 만족감을 느끼며 자리를 떠나는 모습… 재미있지 않습니까?
요즘 가챠 문화에서는 이런 일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서브컬처 시장을 넘어 이제는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가챠의 열풍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습니다.
무려 ‘도파민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을 내건 용산 아이파크몰은 물론, 홍대 AK플라자, 영등포 타임스퀘어, 지하철 역사, 그리고 대형서점에 이르기까지 투명한 캡슐로 가득 찬 가챠 머신은 이제 어디서든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이 손에 쥔 신용카드나 전용 코인으로 결제하는 금액은 대략 4천 원에서 1만 원 사이. 평균적으로는 7천 원 안팎이니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거나 프랜차이즈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 한 잔 가격 정도입니다.
“이 작은 플라스틱 피규어에 그 금액 정도 가치가 있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물건 자체만 놓고 보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가챠를 돌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플라스틱 조형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7천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한번 쯤은 써도 괜찮은 돈’*을 기꺼이 투자하여 가챠 레버를 돌릴 때의 손맛,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 캡슐이 떨어지는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개봉 직후 터져 나오는 환호와 아쉬움을 두루 두루 즐깁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물건 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경험까지 함께 구매한다는 것이죠.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잔돈효과(Denomination Effect)'와 유사한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큰 돈에는 신중하지만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금액에는 소비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챠의 본질은 확률형 무작위성이기에 내가 원하는 가챠가 나오지 않을 경우 약간의 상실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덕질’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현장 또는 SNS 등을 통해 적극적인 맞교환 활동에 나섬으로써 이러한 과정을 또 다른 유형의 즐거움으로 능히 전환시키곤 합니다. 제가 최근 경험했던 뉴건담의 교환 사례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저는 이를 ‘확률로 시작된 소비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진다’라고 넉넉하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마저도 안될 땐,
“‘그래, 그깟 7천원… (속은 좀 쓰리지만) 햄버거 하나 사 먹은 셈 치지 뭐.”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강력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발휘하면 그만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요즘 세대들은 왜 이렇게 가챠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나 희소성 때문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대는 취업, 주거, 미래 설계 등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과 끊임없이 마주합니다. 그것도 앞선 세대에 비해 훨씬 더 자주, 더 혹독하게 말이죠.
하지만 가챠는 다릅니다.
돌릴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언제 돌릴지 결정하는 것도, 얼마를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나'입니다. 결과는 랜덤이지만 그 과정만큼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가챠 머신 앞에 모인 수 많은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서로의 캡슐을 흘끗 흘끗 바라보며 때론 환호하기도 때론 아쉬워하기도 하며 묘한 동질감을 공유합니다.
소속감을 가질 기회가 적은 요즘 세대들에게 있어 가챠 매장은 취향이라는 끈을 기반으로 느슨한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진입 장벽이 무척 낮은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지갑 열기가 더 할 나위 없이 팍팍해진 세상,
없는 셈 치고 내지른 7천원은 어쩌면 이들 세대의 숨통을 틔워주는 가장 가성비 높은 심리 처방전이자 통제 가능한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가챠 머신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저 사람은 7천원 짜리 굿즈를 사는 것이 아니라, 7천원으로 그 이상의 행복을 뽑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라는 마음으로 그의 소확행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십시오.
- 단국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겸임교수 김경민 (kimkyungmin@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