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아내는 집에 있었다.
나는 회사에 있었다.
둘 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집에 있는
아내가 부러웠다.
출근길 만원 전철의 피로,
상사의 잔소리와 끝없는 회의,
월급날보다 늘 한 발 먼저 오는 카드값 명세서.
'그래도 오늘은 웃으면서 들어가야지.'
퇴근길 전철역에서 늘 다짐하며
현관문을 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건
우는 아이와 지친 아내, 그리고 전쟁터 같은 집구석. 조심스레 던진
"오늘 어땠어?"
라는 말에
"당신은 회사라도 갔잖아"
라는 날카로운 답이 돌아올 때면,
오늘 회사에서 깨진 보고서와
주머니 속 사직서는
다시 깊숙이 구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만나는 친구 놈들은
저만치 앞서가는 것 같았다.
누구는 승진을 했고, 누구는 외제차를 샀고,
누구는 주말마다 골프를 친단다.
꼭 한 명쯤은 어깨를 툭 치며 묻는다.
"야, 너는 요즘 돈 좀 모았냐?"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속으론 눈물이 고이는데.
돈 잘 버는 남편과 돈 잘 쓰는 부인.
늘 우리 옆집에만 살던 그 '부유한 이웃'들이
내 초라한 주머니를 더 얄궂게 만들던 어느 가을날.
추석이 지나고 며칠 뒤,
퇴근길에 마주한 아내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다.
“큰일 났어... 옆집 아저씨,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
“뭐라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조금이라도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서둘렀던 걸까. 과로와 장거리 운전이 부른 비극이었다.
가장(家長)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그 예쁘던 옆집 엄마는 중상을 입어 수술실을 전전했다.
다행히 의자 아래 틈새에 끼어 아무런 상처도 없는 건 그 집 어린 아들 녀석뿐이었다.
기나긴 명절 연휴를 누리느라 늦는 줄 알았던 옆집 불은
그렇게 영영 켜지지 않았다.
동네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커피 마시러 오라"는 반가운 호출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아내도 조용히, 그저 감사함으로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화려해 보였던 옆집이 하얗게 비워지고, 얼마 뒤 또 다른 낯선 이가 이사를 왔다
우리는 늘 벽 너머의 풍경만 보며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길 위에서
누가 더 빨리 가는지, 누가 더 좋은 차를 탔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원 전철에 시달려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지쳐서 소리를 지를지언정 내 곁에 아내가 있다는 것,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울어대는 내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
그 지독했던 '독박육아'와 '회사 노예'의 삶이
실은 옆집이 그토록 바랐을,
지키지 못한 기적 같은 일상이었음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하필이면 늘 잘 사는 집만 내 옆집에 왔던 게 아니라,
어쩌면 신이 내게
‘너는 이미 가장 잘살고 있으니 곁눈질하지 말라’고
보내준 나침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눈부시게 부자였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글입니다. 비극적인 일이라서 (하필이면 1화)를 끝으로 하려고 망설이다 올리게 되었습니다. 늦게나마 오직 부인과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사셨던 너무나 순박하고 착하셨던 옆집 아저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