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의 미덕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골몰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해 두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이를테면 잘 먹고 잘 벌기, 잘 자고 건강하기와 같은 것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목표라도 목표 설정의 방식에 따라 크게 다르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만은 피하겠다, 건강하겠다는 생각대신 아프지 않겠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자 보다는 욕이나 비난을 받지 않겠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와 행복과 친한 단어들을 지우는 연습을 해보자.
모든 향락에는 고통이 따른다. 약간의 고통이 따르는 향락보다는 향락 없는 대신 고통도 없는 삶이 낫다고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주장해 왔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태에 놓이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크게 슬퍼하지 말고 크게 기뻐하지 마라.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다.
연극이 끝나면 화려한 무대는 철거되고 텅 빈 창고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극을 필요 이상으로 즐긴 사람은, 그 후의 적막까지도 감당하게 되리라.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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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대학 졸업생들이 슬롯에서 자리를 잡고 명성을 얻은 후, 오랜만에 대학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뵀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제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슬롯생활이 얼마나 스트레스 가득하고 힘든지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들 "더 성공해야 한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은사님은 묵묵히 듣더니,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겠다며 주방으로 가셨다.
잠시 후 은사님은 커다란 주전자에 커피를 가득 담아 나오셨는데, 커피 잔을 담은 쟁반이 특이했다.
쟁반 위에는 도자기 잔, 유리잔, 크리스털 잔처럼 값비싸고 아름다운 잔부터, 플라스틱 잔이나 종이컵처럼 흔하고 볼품없는 잔까지 온갖 종류의 컵들이 섞여 있었다.
은사님이 말씀하셨다.
"각자 원하는 잔을 골라 커피를 따르렴."
제자들이 앞다투어 예쁘고 고급스러운 잔을 골라 컵을 채웠다. 당연히 볼품없는 플라스틱 잔과 종이컵은 맨 마지막에 남았다. 제자들이 모두 손에 잔을 들자, 은사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 혹시 방금 행동을 눈치챘니? 좋고 비싼 잔은 다 먼저 없어지고, 싸고 평범한 잔들만 남았구나.
너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커피'였지 '잔'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너희는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잔을 가지려고 경쟁했고, 심지어 서로 어떤 잔을 가졌는지 곁눈질하며 비교하더구나.
인생을 '커피'라고 한다면, 온라인 게임, 돈, 슬롯적 지위, 명예는 '잔(Cup)'일뿐이란다. 그것들은 인생이라는 알맹이를 담는 그릇일 뿐, 인생의 본질을 바꾸지 못해. 고급 잔을 들었다고 해서 커피 맛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니지 않니? 도리어 잔에만 신경을 쓰느라 정작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렴."
쇼펜하우어가 말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지우는 연습'은 어쩌면 "화려한 잔을 가지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우리는 늘 남들보다 더 멋진 잔을 채우기 위해(더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 욕심 때문에 잔이 깨질까 불안해하고, 남의 잔이 더 커 보여 괴로워한다.
인생이라는 커피 그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화려한 무대(잔)에 현혹되지 않고,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삶을 담담하게 음미하는 것.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실망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오늘 하루는 "더 행복해져야지!"라는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그저 고요하고 평온한 나만의 커피 타임을 즐겨보는게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