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글쓰기] 라면 단상

공범과 환호성 사이

by하얀 나비


​온라인카지노 스토리에서 유쾌 통쾌 발랄 인기 있는 “사랑방 댓글 여왕” 기록을 보유하신 혜준 작가님으로부터 '라면 단상'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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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라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백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사실, 라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
​그래서 처음 바통을 받았을 때 '라면 안 좋아하는 내가 무슨 라면 이야기를 쓰지?' 싶어 막막했습니다.


독자분들도 당연히 "내 최애 라면은 말이죠~"로 시작할거라 예상 하셨겠지만, 세상엔 이런 예외도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라면을 안 좋아하는 저조차도 냄비 앞에 서게 만드는 우리 집만의 특별한 라면 풍경이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라면 먹을래?”
“싫어, 졸려.”
“딱 두 젓가락만 먹어.”
“아우, 졸린데…….”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댄다. 평소에는 없던 애교까지 동원한 남편의 ‘물귀신 작전’이 또 시작된 것이다.


​“먹을 거지? 끓인다!”
“아~함, 알았어. 그럼 빨리 끓여.”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신이 나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 봉지를 뜯는다. 나는 하품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슬며시 젓가락을 들고 기다린다. 아차,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는 요령 정도는 발휘해야지.


​딱 두 젓가락 면발을 건져 먹고, 얼큰한 국물까지 쭉 들이킨 뒤 빈 대접을 머리 위로 뒤집어 보여준다. 완벽한 완당(完堂) 인증이다.


​“봤지? 나 이제 잘게. 굿나잇, 러뷰!”


​여기서 슬픈 사실 하나. 이 달달한 “러뷰(Love you)”는 늘 나만 외친다. 돌아오는 남편의 대답은 영혼 없는 “응~” 아니면 “땡큐”가 전부다. ‘아니, 여기서 이런 하소연을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변명할 말이 있다. 지난번 역대급 폭염 때 내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물론 휴대용 에어컨을 잽싸게 설치해 준 덕분이지만)이라, 평생 이어지는 이 무뚝뚝한 대답도 그냥 눈감아주고 사는 중이다.


​아무튼, 이 ‘두 젓가락 심리전’은 밤마다 종종 펼쳐지는 우리 집의 익숙한 풍경이다.
야밤에 혼자 라면 한 개를 다 먹기엔 양도 많고 그 맛있는 라면을 버리기도 아까우며, 무엇보다 혼자 밤늦게 먹는다는 죄바카라감(Guilty)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편은 기어코 나를 흔들어 ‘야식의 범죄(?)’를 함께 저지를 다정한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다 내가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으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기어이 냄비에 물을 받는 남편이다. 슬쩍 눈총을 주면 대뜸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한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


​내게 끓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끓여 먹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삼시 세끼를 잘 먹고도 그 사이사이에, 혹은 잠들기 직전에 찾아오는 라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문득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라면 냄새를 맡으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어릴 적에 라면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참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한 지금,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 손주들에게도 라면은 여전히 아주 ‘귀한 음식’ 대접을 받는다.


​얼마 전, 딸 아이가 아이들을 맡기며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엄마, 오늘 애들 라면 좀 끓여줘. 오늘 먹이려고 일주일 동안 일부러 안 먹였어.”


​엄마의 엄격한 통제 속에 일주일을 버틴 아이들이다. 딸의 말대로 손자들에게 “라면 먹을래?” 하고 슬쩍 던졌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며 외쳤다.


“YES! YES!” “Black bean noodle“


​그 옛날 배고프던 시절의 라면이 눈물겹게 귀한 별식이었다면, 오늘날 풍요 속의 라면은 건강을 위해 큰맘 먹고 허락받아야 하는 ‘달콤한 금기’가 된 셈이다.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남편에게는 밤의 죄바카라감을 덜어주는 다정한 공범으로, 손주들에게는 일주일을 기다려온 짜릿한 행복으로 기꺼이 동참하게 만드는 신기한 음식.


​시대와 세대에 따라 그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라면 냄새가 우리 집 거실을 이토록 정겹고 들뜨게 만드는 걸 보면, 라면은 여전히 우리 삶에서 가장 맛있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 제 다음으로 이 얼큰하고 달콤한 라면 바통을 이어받으실 작가님은 누구실까요?

저의 바통을 받아주실 작가님은 두둥~ 아름다우시면서 유머감각까지 풍부하신 Anima 작가님 이십니다. 바통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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