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의 해결사
시아버님은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든든한 '해결사' 셨다. 평생 잊지 못할 그 시절의 억울한 사건 속에서도 아버님은 우리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이민을 가기 전, 남편은 명동 근처의 한 빌딩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 건물 꼭대기 층에는 몇 채의 건물을 소유한 완고한 건물주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셨다. 변호사인 아들을 비롯한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 있거나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어, 할머니의 곁은 늘 적막했다.
할머니는 성실하고 착실한 남편을 유독 예뻐하셨다. 가끔 몸이 편치 않으실 때면 남편에게 고액의 수표를 은행에 입금해 달라는 부탁을 하곤 하셨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고, 어른을 공경하는 순수한 선의로 남편은 흔쾌히 심부름을 도왔다. 매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수증을 챙겨드리고 조목조목 설명해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건은 우리가 이민을 준비하며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던 시점에 터지고 말았다. 그사이 8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신의 큰돈을 가로챘다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남편은 차분히 은행을 찾아가 모든 내역을 확인해 드렸다. 하지만 치매의 의심벽은 서류 따위로 허물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시아버님까지 나서서 은행의 증거 서류를 낱낱이 수집하고 경찰까지 대동해 결백을 증명하려 애쓰셨다. 그러나 할머니는 되레 "은행과 경찰이 너희와 짜고 조작한 것"이라며 날을 세우셨다.
그러고는 요구하는 돈을 물어내지 않으면 사업체 매매에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셨다.
변호사 아들조차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나도 어머니의 고집을 이길 수가 없다"라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법대로 해결하자니 당장 이민 일정과 사업체 매매가 걸려 있어 손해가 더 막심했다.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정교한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결국 해결사였던 시아버님이 그 거금을 대신 물어주시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아버님은 "괜찮다, 다 지나갈 일이다"라며 남편의 어깨를 다독여주셨지만, 선의로 베푼 호의가 '치매'라는 가면을 쓴 사기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남편은 한동안 자다가도 억울함에 벌떡 일어날 만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은행도, 경찰도 믿지 못하는 이 고집스러운 망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 할머니는 원하는 돈을 손에 쥐고 과연 행복하셨을까?
끝까지 당신이 옳았다고 믿으며, 남편을 나쁜 사람으로 기억한 채 눈을 감으셨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씁쓸해진다.
그러나 시아버님의 크신 사랑을 온마음으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