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십몇 년 전 어느 날 밤, 잠결에 밖에서 뭔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너무 졸리기도 했고 밤중에 나가보기가 무서워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밖을 살펴보고 오더니 뒷마당으로 들어기는 문이 뻥 뚫려 부서져 있다고 놀라서 말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가? 대체 왜?'
가장 먼저 도둑을 의심해 없어지거나 도난당한 물건이 있는지 샅샅이 살펴봤다. 하지만 기껏해야 전기톱이나 공구들만 보관해 둔 창고에서는 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원한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웃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누군가에게 원망을 살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사건의 단서는 부서진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야 비로소 드러났다. 문 위쪽으로 깊게 나무가 파여 있었는데, 다름 아닌 곰의 발톱 자국이었다. 무언가를 열려고 발톱으로 거칠게 긁어놓은 상처였다.
정체를 알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간의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이 훨씬 더 크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어둠이 짙게 내린 어느 저녁이었다. 이번에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둔탁한 파열음이 두세 번 연달아 들렸다.
나는 남편에게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물었다. 가끔 클로젯 안에 세워둔 청소기가 쓰러질 때 나던 소음과 비슷해 확인해 보았지만, 청소기는 제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또다시 의문스러운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누군가 던진 계란 세 개가 벽에 부딪혀 깨진 채 누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대체 왜 이런 짓을?'
또다시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이번에는 명백한 '사람'의 소행이었기에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자연스레 양옆 집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평소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우리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었던 걸까? 마음속에 불편한 의구심이 피어오르자 상상의 날개는 걷잡을 수 없이 펼쳐졌다.
결국 나는 마당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옆집으로 향했다. 이웃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밤사이에 찍힌 영상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웃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영상을 확인해 봤는데, 자신의 두 아들은 어제 오후부터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의심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아주 친절하게 아이들의 알리바이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에는 별다른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황당하고 씁쓸한 소동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하자, 아이들은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들도 십 대 시절에 장난 삼아 그러고 놀았다며, 아무 의미 없는 철없는 장난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위로였다. 그렇지만 한동안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일을 겪은 후, 우리는 집 앞뒤로 CCTV를 새로 설치했다. 그리고 매년 핼러윈 데이가 오면 동네 아이들을 위해 초콜릿과 캔디를 더 꼬박꼬박, 풍성하게 챙겨주고 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힘센 곰보다 더 신경쓰이는 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