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의사와 비밀의 병실

고문 같았던 그날 밤

by하얀 나비
아이리시 모스(Irish Moss) 뒷뜰의 잔디 대용 모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남편이 편도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원체 편도가 컸던 데다 면역력까지 떨어지자 음식을 삼키기는커녕 잠잘 때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수술 자체는 무사히 끝났다고 했다. 진짜 문제는 그날 밤늦게 시작된 출혈이었다. 하필 연말이라 의사들은 죄다 송년회 파티 중이었고, 병원에는 당장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었다.


​몇 시간의 피 말리는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의사가 도착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그에게선 코를 찌르는 술냄새가 진동했고,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취기가 가득한 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입을 벌리게 한 채 지혈을 시도했다.


​남편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병실을 채우는 동안에도 의사의 위태로운 손짓은 계속되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에게는 그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문’ 그 자체였다. 움직이지 말고 입을 크게 벌리라며 호통치는 술 취한 의사의 목소리와 남편의 비명 소리……. 차라리 이게 꿈이라면 좋겠다고 몇 번을 기도했는지 모른다.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오신 시부모님은 눈앞의 황당한 광경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하지만 자식의 치료가 그 술 취한 의사의 손에 달려 있으니,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숨을 죽이셔야 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아득하게 지쳐갈 때쯤에야 비로소 그 지독했던 고문이 끝이 났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등을 살살 긁어주실 때면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평온해지곤 했다. 그때의 따스한 기억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남편에게 가끔 등을 긁어달라고 청한다. 가려워서가 아니다. 나에겐 일종의 만병통치약 같은 치료법이다. 굳어 있던 몸이 사르르 풀리며 몸도 마음도 순식간에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그 아수라장 같던 병실에서도,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의 등을 살살 긁어주어 통증을 분산시켜 주는 것뿐이었다.


​후에 상황이 진정되자 시어머님이 날이 선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등은 왜 긁고 있냐? 창피해 죽겠더라.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어이가 없어서.”


​그 시절 시어머니 눈에는 아들이 아픈 이유가 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탓’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얄밉고 철없어 보이셨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넨 것이었는데 말이다.


​웃픈 사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등 긁어주는 것을 도통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등을 긁어달라 부탁한 적이 없었다. 나의 최고의 위로는 철저히 나만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시부모님은 대학병원을 뒤집어놓으셨고, 남편은 밤새 목구멍으로 넘어간 피 때문에 한동안 피설사를 쏟아내야 했다.


​며칠 더 입원이 필요해 병원에 머물며 남편의 곁을 지켰다. 보호자용 간이 의자에 구부정하게 누워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남편이 슬그머니 이불을 들추며 침대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병원인데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우리 둘만 있는 독방이니 괜찮다며 문을 잠그고 얼른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남편의 고집에 못 이기는 척 문을 걸어 잠그고 좁은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조금 끼이긴 해도 참 포근하고 달콤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간호사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병실 문은 절대 잠그면 안 된다고 서슬 퍼런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문을 열어주며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던 그날. 병실을 나서던 간호사는 속으로 피식 웃고 있었을까? 아니면 ‘웬 진상 환자들이 다 있냐’며 혀를 찼을까? 모든 것이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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