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상처

온기를 나눌수록 위험해

by하얀 나비
뒷마당에 핀 꽃

널 처음 마주한 순간
우리는 파멸의 같은 궤도에

서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어

나와 똑같은 검은 멍 자국들
아무리 가리고 숨겨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하얀 분을 발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멍자국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린 이미 서로의 종말을
느끼고 있어

이건 명백하고 위험한 신호.
함께 있으면 서로를 더 빠르게
무너뜨릴 뿐인데
왜 자꾸만 네가 아프게
눈에 밟히는 걸까

결국 이것도 잔인한
운명이라 부르며
서로에게 치닫는 마음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

우린 왜 이토록 닮아 있을까.
너의 짓눌린 자국
나의 깊이 찍힌 상처

아무리 바닥으로 엎어 놓고
필사적으로 뒤집어 봐도
스며 나오는 상처들을
감출 길이 없어

괜찮아
들키지 않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서로를
안고 버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은 속도를 내고,
하얀 분 위로 검은 점들이
온몸으로 잔인하게 퍼져간다

우린 왜 이렇게 닮아서,
함께 상해갈 수밖에 없을까

너는 무참히 허물어지는
곰팡이 핀 <딸기>

나는 속수무바카라으로
문드러지는 곰팡이 핀 <귤>

이미 늦었어
우리가 나누는 온기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독이라는 걸 깨닫기엔



●□● 마트에 팔리지 못한 딸기와 귤에 곰팡이가 생기며 서로를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의인화하여 만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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