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사, 운전해~"
오늘은 41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내가 정말 이 두 아이의 엄마인가
싶어 믿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4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왜 이 낯선 땅에 서 있는 걸까.
내가 운명을 이끌고 온 걸까,
아니면 운명이 나를 이끌고 온 걸까.
철없던 시절, 도망치듯 결혼을 했고
남편과 나는 혹독한 시련들을
함께 겪었다.
코코를 데리고 산바카라을 나가면
코코는 우리를 믿고 앞서 걷다가도,
덩치 큰 핏불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면
어김없이 우리 뒤로 숨는다.
이민 오기 전의 나도 그랬다.
코코처럼 늘 남편 뒤에 숨었다.
남편은 온 힘을 다해 나를 보호했고,
결국은 그가 먼저 무너졌다.
이민을 온 뒤에는
내가 앞장서게 되었고
남편은 내 뒤에 서게 되었다.
그가 뒤에 있기에
나는 더 용감할 수 있었다.
늘 묵묵히 지켜보며
내 뒤를 봐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핏불이 다가와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나는 감당할 수 있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도, 후에도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결혼 생활 내내 나의
“운전해, 정 기사”였고,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원하는 건 결국 다 해주었다.
며칠 전, 한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물었다.
“왜 남자를 경계하시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이 흐려졌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도 이유가 궁금해졌다.
쓸데없는 오해를 만들어
남편을 괴롭히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게 내 답이었다.
살다 보면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눈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도 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인연도 있다.
나 역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남편처럼,
나를 말없이 돌봐주고
그림자처럼 41년을 지켜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불씨가 커지기 전에
아예 부싯돌과의 접촉을 피한다.
사실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늦잠을 자면 걱정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싶어
2층에 올라가 그를 깨워본다.
그리고 안심한다.
내가 조금 멀리 가더라도
남편은 나를 기다린다.
내가 돌아올 것을 알기에.
아재 개그와 시답잖은 농담으로
나를 웃게 하고,
같은 집 안에서도
위층과 아래층에 있으면
카톡을 보내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눈다.
나의 헝클어진 모습도,
널뛰는 감정도
매일 묵묵히 지켜본다.
그래도 화장하고 차려입고
함께 나가면
조금 더 매너가 좋아진다.
(이건 좀 웃기지만 사실이다.)
주름이 시작된 얼굴 위에
마음만은 아직 소년 같은 그와
소녀 같은 나를
슬며시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