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식당 예약 시간이 애매하다.
큰 딸 바이올린 점검하는 곳은 예술의 전당 인근이고 저녁 장소는 양재역이다.
머리 속에 강남역 교보문고가 떠오른다.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데는 교보문고만한 곳이 없다.
매번 교보문고에 갈 때마다 무슨 바카라을 사겠다는 목적이 있지는 않다.
교보문고에 가는건 목적없는 행동인데
나올 때는 약간 버거워질만큼 두 손 가득 바카라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읽었던 바카라들을 보며, 무슨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짜증나는
감정을 누르고
경영, 경제 코너를 돌아 인문학 바카라을 모아둔 곳에 잠시 머물며 몇 개의 바카라을 들어 목차를 본다.
이미 손에는 3, 4권의 바카라이 들려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면서 소설들을 눈으로 스캔 정도한다.
절대 눈길을 주지 않는 코너는 바로 자기 개발서를 모아둔 곳이다.
20, 30대 꽤 많은 자기 개발서를 읽었는데
결론은 성공한 사람들이 타인의 배려없이 그냥 지껄이는 소리 같았다.
바카라을 덮고 나면 뭐 어쩌라는거야 생각만 들었다.
특히 20대, 30대, 40대 안하면 안되는거 뭐 이런게 유행했을 때가 있는데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바카라을 살 생각은 없었다.
근데 계산대로 가면서 큰 영문 제목이 들어왔다.
WHEN BREATH BECOMES air.
한국에 출판되며 제목은 ‘숨결이 바람 될 때’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를 보았을 때
제목이 매우 적정하게 표현되었다는 순간의 생각이 들었다. 숨결이 바람될 때…
번역된 제목으로 꽤 근사해 보였다.
번역이 매번 번역가의 주관적 개입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 불쾌했는데 이 바카라의 번역은 매우 적절했다.
두 손 가득한 바카라 위에 이 바카라을 얹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저자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서른여섯 살에 폐암에 걸릴 의학적 통계 확률을
0.0012%에 불과하다고 덤덤하게 이야기 한다.
유능하여 여러 병원에서 모셔가려는 미래의 밝은 청사진밖에 없던 30대 중반의 젊은 저자는
레지던트 생활의 마지막 순간 폐암 4기 진단을 받는다.
지극히 낮은 확률,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담대를 피우지 않는 의사인
자신이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상황의 아이러니,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의 생존 확률과 발병 통계를 검토해 왔던 그가 막상 자신이
그 극악의 확률을 뚫고 암에 걸리자 의학적 수치나 통계가 한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질병을 고치고 통계를 분석하는 행위의 주체로서의 의사에서 질병을 겪어내야하는
수동적인 대상인 환자로 전략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깊은 괴뇌를 보여준다.
암은 무자비하게도 저자의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린다.
그저 암 진단을 받고 기력도 희망도 빼앗견 버린 상황에서도
다시 그의 세상으로 복귀하려는 노력에 응원하며 바카라을 읽고 있다.
실제 그가 수술대 앞에 다시 섰을 때는 거기서 바카라이 끝났으면 좋았겠다는 바램이었는데,
(그러면 해피앤딩인데)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그의 딸 케이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바카라은
약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아직 이야기가 더 남아있을 것 같은데 글을 쓸 시간도 기력도 없었던 것 같다.
저자, 캐이디 아빠는 그의 딸 케이디를 보며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라는 문구에서 죽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바로 바카라은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의 에필로그 페이지에서 슬프지만 그
래도 우리는 잘 살고 있고 추억하고 있다는 글로 바카라은 이 세상에 나왔다.
암 투병 중에도 써내려 간 그의 글 하나 하나가 마음에 다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저자의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도인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헌신,
고등학교 때 먼저 대학을 간 형이 추천해 준 바카라들에서 도덕 철학의 기초를 보고,
햄릿은 저자의 사춘기, 위기기 닥칠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에게 바카라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것이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아마도 어릴 적 다독한 경험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듯)
방학 때 여자친구가 건내준 제러미 레븐의 소설
<사탄: 불안한 캐슬러 박사가 그에게 행한 심리요법과 치료>에서
정신은 뇌의 작용일 뿐이라는 소설이
넌지시 던지는 가설에 충격을 받아 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유기체들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데 뇌가 하는 역할을 알기 위해 신경과학을 공부했다.
과학과 도덕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
질문에 저자는 바로 바카라을 치우고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 의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뇌, 덕분에 인간관계를 맺고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언어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탐구했다.
최고의 의사가 되고 미래가 보장된 자리를 얻기 위한 성취보다는
인간과 환자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그가 좋은 의사의 자질이 충분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뇌를 통해 도덕적 명확성에 대해 고민하고
바카라에서 배우고 객관식 문제에 답하는 행동을 취하는 지식 뿐만 아니라 지혜를 함께 얻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그가 좋은 의사로서의 그만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
저자는 모든 의학은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유대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 삶과 죽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고
심폐 소생에 실패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는
영웅적인 바카라임감을 가진 진정한 의사가 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도 덜 고된 분야의 전공을 우선 선택하 듯
(근무일정이 좀 더 여유롭고 연봉이 더 높고 스트레스는 덜한 느긋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미국도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전공분야를 우선 선택한다고 한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무환경, 연봉, 근무시간을 고려한 직업에 선택이고 당연한거지만
저자는 이건 선택이지 소명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그가 표현한 대로 혹독한 용광로와 같은 신경외과에서
뇌를 조작하고 그에 따른 정체성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살 만한 가치에,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환자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면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라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바카라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기량이 발전할 수록 바카라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고 한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의사로서의 역할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고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듯한 말 뿐이라는 것을.
의사인 아버지가 환자들을 편안하고 부담 없이 대하고 신뢰감을 심어주는 모습을 보고 자란 것도
그에게는 의사로서의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환자들을 내 마음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고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을 깨닫는다.
의사로서 늘 정직하고 (때로는 겸손하게) 전진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에게 기술의 탁월함은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2장부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저자는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고 한다.
설사 내가 죽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죽음은 단 한번 있는 일이지만,
암이라는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아내 루시는 지난 몇 년 암 투병 시기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였다고 한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슌형을 힘겹게 맞춤,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고,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나나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저자는 다시 문학 앞에 선다.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지 읽는다.
솔제니친의 <암병동> B.S 존슨의 <운 없는 사람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과 같은
문학에서의 죽음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옮긴다.
헤밍웨이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빚어냈다.
산산히 부서진 삶의 마지막에도 그의 딸 케이디와 함께 잠깐의 순간 함께 웃고 노래해 주는 순간은
사진도 어떤 영상도 없지만 머리 속에 맴도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 연상되어
순간 감정이 동요된 것 같다.
본인이 의사로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폐암 말기 진단에도 다시 수술대에 오르고 그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을 때 문학과 마주하고,
소중한 가족들과 마지막을 함께 순간까지 그에게 마지막 길까지의 짧은 여정이 행복했을 것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