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까르르

by개울건너

우리 밭에서 맞은편 대각선쯤에 있는 그녀의 뜨락은 까치발로도,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도 보이지 않는다.

출간 후 바카라을 가지고 그녀의 집을 여러 번 가봤으나 꽃 천지인 그녀의 뜨락 입구에 경계를 지어놓은 한 줄 끈이 사람이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녀가 부재중임을 확인할 때마다 불을 밝히고 밤 12시가 넘도록 뜨락을 가꾸고 나서 지리산으로, 히말라야로, 산티아고로 여행을 떠나는 그녀가 지금은 어디를 여행 중일까 궁금해하며 우리 밭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아침 식사 후 그녀가 오늘은 이곳에 있을까, 바카라을 들고 슬슬 그녀의 꽃밭으로 또 가보았다.


우리 밭과 그녀의 뜨락을 관통하는 길이 없어 옆밭을 지나 개집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 명희씨네 농막 뒤를 지나올라 그녀의 뜨락 앞에 서니 입구에 가로막혀있던 끈이 지금은 없다. 그녀가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들어서서 “꽃샘, 꽃샘!” 불렀다.

‘꽃샘’은 중학교 교사를 정년퇴직한 그녀에게 만들어 부르는 나만의 호칭이다.

어딘가에서 “네에”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농막 뒤란에서 나왔다.

헐렁한 하늘색 면 원피스 차림에 한쪽으로 땋아내린 그녀의 머리끝에 묶여있는 꼬불한 머리 끈, 그녀의 웃음이 그녀의 뜨락과 닮아있다.

바카라 출간을 얘기했다. 그녀가 놀라 기뻐하며 나를 농막 안으로 안내했다.

꽃샘도 바쁠 텐데 십 분만 시간 뺏자고 제의하자 그녀는 무슨 말씀이냐고 제가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드려야지요 말했다.


칠 년 전 처음 이곳에 안내받아 들어왔을 땐 그녀가 따서 말린 꽃차를 끓여주었는데 오늘은 냉커피를 내주었다. 쿠키도 내놓았다. 얼른 나가더니 뒤란에서 땄다는 산딸기도 내놓았다.

탁자의 찻상 차림도, 그녀의 뜨락에서 꺾어 줄기 쪽을 담가 놓은 수반의 꽃도 그녀를 닮아있다.

빠알간 색의 콩알만 한 산딸기가 아주 달았다. 옆집에서 뿌리가 그녀의 울타리를 넘어와 컸다고, 몇 알 안 되는 요게 다 수확한 거라며 까르르 웃었다. 나도 웃으며 그 산딸기를 먹었다. 산딸기가 복분자와 다른지 묻자 그녀가 다르다고, 앞집 명희씨네 밭에 복분자가 있는데 이따 가실 때 보여준다고 했다.

얼른 꽃들을 살펴주고 또 여행을 떠날 그녀의 시간을 뺏는 것이 마음 쓰여 나의 말이 자꾸 빨라지고 있었다.


출간 바카라에 대한 그녀의 첫 마디는 "고생 많으셨네요. 얼마나 힘들면 출산이라고 하겠어요!"

나의 고생과 뿌듯함을 알아주는 그녀은 말에 울컥하며 화답했다. " 아 맞아요 출산! 정말 딱 맞는 표현이예요"

바쁜 그녀의 시간을 빼앗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내 말이 빨라짐에는 그녀의 공감과 응원의 힘이 가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옹기가 나의 정체성인데 바카라 2부에 넣은 옹기 사진은 우리 밭에 있는 장독보다 그녀네 해 질 녘 뜨락의 옹기가 더 예술적이어서 그녀가 보내준 거라는 얘기도,

그녀가 어머 영광이지요 하며 바카라에 들어갈 사진인 줄 알았으면 다른 사진도 더 찾아 보내드릴걸 그랬다고 말하며 짓는 그녀의 웃음소리도 빨랐다.


칠 년 전 여기에 들어왔을 때 바카라 이야기, 글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꽃샘과 인연이 됐다는 나의 말도 빨랐다.

우리는 자주 만나진 못했는데 느끼는 친근감은 깊다는 그녀의 말도,

문장에선 행간의 힘이, 말에선 침묵의 힘이 더 강하다고, 만난 횟수는 친근감의 깊이에 영향을 주지 않다는 나의 대답도.

글 쓰는 사람의 말은 확실히 다르다고 말하며 치는 그녀의 손뼉 소리도.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은 두 개의 커피잔 사이에 바카라을 놓고 사진을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 해 어머 예뻐요 바카라이 탁자와도 어울려요 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러는 그녀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함부로 찍는 게 아닐까 신경 쓰여 그녀에게 물었다.

이 얘기 온라인카지노에 올려도 될까요? 꽃샘 얼굴은 안 보이게 옆모습이랑 뒷모습만 찍어 사진도 올리고 싶은데.

그녀가 말했다. 그럼요, 제 정면 사진도 괜찮아요, 하며 얼굴을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머어머어머 고마워요 까르르 웃으며 그녀의 정면 옆면을 맘 놓고 찍었다. 그녀도 까르르 웃었다.

그녀가 나의 바카라을 한 장 한 장 세심히 살폈다.

바카라날개 사진 아래 활자가 더 진하면 좋았을 걸 너무 작고 흐려서 아쉽다고 말했다. 각 글 제목 위에 있는 초록 나비는 아주 작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것도 아쉽다는 말은 내가 했다. 그녀도 그러네요 정말. 글씨가 큰 초록 나비에 조금 묻히기는 하네요. 아쉬움에 동감했다.


그녀의 농막에도 그녀가 소장하고 있는 바카라이 많다. 그녀는 여러 권 진열해 놓은 그녀의 바카라 옆에서 사인펜 세트를 꺼냈다. 사인을 무슨 색으로 해달랄까? 말했고 나는 초록으로 하자고 했다. 그녀가 그게 좋겠다며 초록색 사인펜을 뺐다.

자기를 ‘풀바람’으로 써달란다. 나는 풀바람이라고 쓰면서 내가 그녀에게 하는 호칭도 이젠 ‘풀바람’으로 바꿀까 생각했다.

우린 남편의 흉도 빨리 빨리 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모기 무서워서 여기에 안 나오고 있다며 까르르..

몸집 크고 배 나오고 가끔 우스운 소리 잘 하는 그녀의 남편과 모기 크기의 대비를 생각하며 나도 까르르..

그녀는 남편이 첫사랑이란 말도, 네 번 헤어지고 다섯 번째 다시 만나 결혼했다고, C.C인데 헤어지고 나면 어딘가에서 그 남자가 불쑥 나타나고, 헤어지고 나서 어디에 가면 그가 그곳에 있고, 저기에 가면 저기에 또 와있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말도 빨리 했다.

사춘기였던 두 딸과 남편과의 갈등이 가정을 단단히 지키고자 했던 남편의 과도한 마음이었던 걸 그땐 몰랐다고, 남편 성격이 모가 나서인 줄만 알았었다는 말도.

지금은 출가한 두 딸이 이제야 아빠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는 말도.

우리의 말이 진행되는 도중에 그녀는 모레 중국 여행에 같이 갈 지인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아 지금 밭에 나와 있는데 손님이 와서 얘기 중이니 이따가 전화하겠다며 끊었다.

나는 일어섰다. 나도 해 올라오기 전에 어서 감자 다 캐야 한다고 말하며.

우린 서로 짧게 내어준 알토란 같은 시간에 알토란처럼 여문 이야기를 아쉬움 없이 나누었다.

농막을 나와서 그녀의 여름 정원에 같이 섰다. 우리는 꽃을 뒤로 해 상체를 같이 찍었다. 이 꽃을 배경으로 저 꽃을 배경으로, 이렇게 서고 저렇게 서보고,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나는 그녀에게 거기 서보라고 했다. 꽃밭을 배경으로 그녀를 담았다. 이렇게 서 봐요 저기에 서 봐요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우리 신랑은 저를 한 번도 안 찍어줘요.”

나는 그녀의 사진을 담으며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에도 빨리 기뻐했다.


그녀의 뜨락 앞 좁은 흙길을 건너며 그녀에게 어여 들어가 꽃밭 가꾸라고 말하자 그녀가 명희씨네 밭에 있는 복분자좀 보고 가시라며 따라 나왔다.

명희씨네 밭에서 몇 알의 복분자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내게 글쓰기에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알려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보였다. 알알의 알맹이들이 산딸기보다 조금 거칠고 컸다.

나는 고창에 사는 시동생이 내년에 복분자 묘목 가져다 줄 거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그 말을 했다. 복분자를 그때나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여기서 본다며 신기해했다.

그녀가 복분자 가져오면 자기도 한그루만 달란다. 나는 알았다고 말하며 시동생 성정상 분명 여러 그루 가져올 테니 그녀에게 하나만 말고 여러 그루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산딸기와 복분자의 차이만 나에게 일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약간 비탈진 곳 풀섶 속 여기에 낮은 난간이 있다고도 일러주었다. 조심해서 내려가시라고 몸을 숙여 난간을 가리켰다.

거기를 딛고 내려가서 울통불퉁한 풀섶길을 몇 걸음 더 걸어 개집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그녀의 시야에서 나는 사라지게 된다.

조심조심 내려가 옆으로 돌아 들어가려는데 그녀가 복분자 옆에 선 채 크게 말했다.

“밀짚모자 쓴 모습이 귀여우세요” 까르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건 꽃샘 마음이 귀여워서지.”


밭으로 오니 남편이 감자를 캐고 있다. 그가 고랑에 캐놓은 감자를 나는 조금씩 농막으로 옮겼다.

어느새 그녀에게서 문자와 사진이 와 있었다.

‘바카라 데리고 꽃밭 한 번 걸어봤어요.

넘 잘 어울리는 초록 세상입니다.

시간 내서 잘 읽어 보겠습니다. 축하축하 감사감사 드려요. '

너무 다가가려 하지 말고 이만큼의 초록 거리에서 초록 세상을 나눈다면 우리의 웃음 소리는 주욱 이어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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