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

4화

by더블윤

「감속을 위한 역추진을 시작합니다.」
항해장교의 음성이 선내에 울리자 노라는 안전벨트를 조였다.
「4... 3... 2... 1... 역추진 개시.」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화면에는 항해 속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노라는 패널을 조작해 외부 카메라 화면을 띄웠다. 커다란 태양이 가까운데 보였고 코라의 주변에는 작은 바위덩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쪼개지다만 달과 같은 천체가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수성이었다. 그것은 상상했던 것보단 훨씬 거대했지만, 행성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흩어져 있었다.
코라는 감속을 마친 뒤, 한때 수성의 궤도였던 공간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탐사선의 외부를 비추는 카메라 너머로 수천 개의 암석이 보였다. 산맥만 한 파편부터 손에 쥘 수 있을 법한 돌조각까지,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인 잔해들이 태양빛을 받아 번뜩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띠처럼 보이던 잔해 지대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로 변했다. 코라는 추진기를 짧게 분사하며 파편들 사이를 미끄러졌다. 작은 돌멩이들은 선체에 부딪히며 흩어졌고 거대한 암석 하나가 선체 위를 지나갈 때마다 통제실의 조명이 희미하게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노라는 관측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성이 파괴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기록 영상도, 붕괴 모형도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러나 실제 잔해 앞에서는 그 어떤 자료도 무의미해 보였다. 저 조각들이 한때 하나의 행성이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잔해 지대 진입 완료.」

항법 담당자의 보고가 통제실에 울렸다. 곧이어 화면 곳곳에 녹색 항로가 표시되었다. 코라의 인공지능이 파편들의 속도와 질량을 계산해 안전한 이동 경로를 그려냈다.
미로와도 같은 잔해지대를 헤쳐나가던 코라는 한때 행성의 일부였을 거대한 암석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자,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임무 시작이야."
통제실장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임무 개시 시각은 30분 뒤다. 첫날은 H+3까지 운용한 뒤 장비 점검과 평가를 실시한다. 문제가 없으면 내일부터 운용 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린다. 다들 훈련받은 대로 임무에 임해주도록.”

통제실장의 말이 끝나자 통제실의 전원이 짧게 대답한 후 각자의 패널들을 조작했다. 노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채굴장비들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30분 후, 선체 하부의 격납고가 열리고, 무인 시추선들이 차례로 우주 공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검은 기체들이 파편 사이로 흩어졌다.
시추선은 납작한 선체 양옆으로 다이아몬드 드릴이 달린 기계팔이 뻗어 있었다. 후미에는 채굴한 코어리움을 담는 컨테이너가 붙어 있었고, 선체 중앙의 적색 센서는 하나뿐인 눈처럼 주변을 훑었다. 곳곳에 박힌 소형 추진기가 짧게 빛날 때마다 시추선은 수성의 잔해 사이를 분주히 옮겨 다녔다. 간간히 시추선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하얀색 통제선과 연구용 탐사셔틀들이 없었다면 영락없는 개미떼의 모습 같아 보였을 것이다.
시추선들은 코어리움 반응이 감지된 암석에 달라붙어 고정 장치를 박았다. 곧 다이아몬드 드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암석 표면에서 튀어나오는 파편과 진동 수치만으로도 굴착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통제실 전면에 수십 개의 영상이 펼쳐졌다. 각 시추선의 카메라와 레이더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노라는 화면을 옮겨 다니며 채굴량과 배터리, 기체 온도를 확인했다.
검은 기계들이 죽은 행성의 잔해를 에워싸고 남은 광물을 긁어내고 있었다.


이후 사흘 동안 노라의 일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시추선을 내보내고, 채굴량을 기록하고, 배터리가 한계에 이르면 다시 불러들였다. 반복되는 수치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블레어가 남긴 말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채굴 구역 전체 배터리 잔량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노라는 늘 그랬듯이 수치를 확인한 뒤 통제실장에게 보고했다.

“복귀시켜.”
“모든 시추선에 복귀 명령을 전송합니다.”

이윽고 시추선들의 카메라가 하나둘씩 '코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3번 시추선이 복귀 명령을 받은 뒤 멈춰 선 채, 텅 빈 우주 공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잔해에서 발생한 전자기 간섭 때문에 자동 항법이 멈추는 일은 종종 있었다. 노라는 조작 패널을 펼치고 3번 시추선의 제어권을 넘겨받았다.

"3번 시추선, 통신 오류. 명령 인지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수동 조작으로 전환합니다."

다행히 레이저 통신이 작동해, 곧바로 3번 시추선과의 연결에 성공했다.
노라는 그 시추선의 외부 카메라 화면을 확대해 정면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수동 조작 다이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화면 속의 별 하나가 휘어져 보였다. 작은 빛이 길게 늘어지며 일렁였다. 처음에는 영상 압축 과정에서 생긴 잔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그러짐은 별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검은 공간 위에 흩어진 별빛들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마치 투명한 무언가가 그 앞을 지나가며 빛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노라는 곧바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레이더를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 징후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시추선의 카메라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의 우주는 일그러짐도, 별다른 흔적도 없이 그저 평범한 우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업무일지의 빈칸에서 입력 커서가 깜박였다. 노라는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다.

- 3번 시추선 외부 카메라에서 비정상적인 가시광선 굴절 현상을 확인함.

그는 비정상적인 가시광선 굴절 현상을 보고서에 포함시켜야 할지, 아니면 단순한 오류로 치부해버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써.”
소피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겠어?”

결국 노라는 문장을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영상 기록과 분석 결과를 첨부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통제실장은 보고서를 읽자마자 중력 레이더 기록부터 확인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재생했고, 다른 감지 장비들의 기록을 하나씩 대조했다.
통제실장은 외부 통신이 차단된 별도의 채널을 열었다. 그리곤 노라에게 들리지 않도록 음량을 낮춘 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노라 그린비.”
통신을 마친 그가 노라를 불렀다.
“정말 공간이 왜곡됐다고 확신하나?”

“공간 자체가 왜곡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시광선이 비정상적으로 굴절된 건 분명합니다.”
노라는 정지 영상을 확대했다.
“여기입니다. 이 경계를 기준으로 별빛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통제실장은 화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글쎄… 내가 보기엔 애매한데. 카메라 렌즈 자체의 곡률 문제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전혀 애매하지 않았다. 입술은 굳어 있었고 손가락은 불규칙하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보고서를 제출한 지 반나절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개인 숙소에서 쉬고 있던 노라의 단말기에 호출 알림이 도착했다. 정식 호출 절차도, 발신 부서도 표시되지 않은 구식 보안 메시지였다.
발신자명은 단 한 단어였다.

함장.

메시지 역시 짧았다.

- 함장실로 오게.

노라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잡아가는 거 맞잖아, 소피.”
"... 그러게...?"




길고 긴 복도의 끝, 단단한 강철문이 무음으로 열렸다. 베할라 로쉬는 등을 돌린 채, 외벽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너머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성의 파편들이 천천히 부유하고 있었다.


“보고서, 읽었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단순한 오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노라는 바로 해명하려 했지만, 로쉬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런 류의 오류라면, 수십 년 전 기술로도 이미 차단됐지.”
그가 몸을 돌렸다.

차가운 조명이 그의 얼굴선을 따라 흐르며 미묘한 빛을 비췄다.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젊은 외모, 시간이 그를 지나치지 못한 채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엔 어떤 감정도 머무르지 않는 듯한 이질적임이 자리했다.

“일단 좀 앉게.”
그는 접객용으로 보이는 긴 테이블 너머의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진짜 소가죽이니까 조심하고.”
농담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노라가 조심스럽게 앉자 로쉬는 커피머신을 작동시켰다. 곧 진한 향이 함장실에 퍼졌다.

“커피 한 잔 하겠나? 커피를 복원하고 재배하는 데 성공한 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복원 업적 중 하나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쉬는 거절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잔을 하나 더 내려놓았다.

“노라 그린비라 했나. 아마 궁금한 게 많겠지.”
그의 말은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은 시선처럼, 날카로우면서도 흐릿했다.
“나는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네. 그러니 자네가 가장 궁금해할 답부터 주지.”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말했다.

"자네가 발견한 것은 장비오류 같은 게 아닐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무엇입니까?"

로쉬는 노라의 앞에 뜨거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함선. 그것은 외계 문명의 함선을 가능성이 크네."

로쉬 박사는 마치 오래된 금고 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코어리움 채굴이라는 임무의 이면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또 다른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
그건 결코 '음모론'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십 년 전부터 아니, 어쩌면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침묵의 기록들이었다.




20세기말.
지구의 여러 전파망원경들이 일제히 이상 신호를 기록했다. 그것은 단순한 전파 간섭이 아니었다. 특정 대역의 주파수만이, 의도적으로 차폐되고 있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처음엔 이를 자연 현상이나 기술적 결함으로 의심했지만, 극소수의 천문학자들만은 그 안에서 고도의 의도성을 감지해 냈다.
신호는 간헐적이었고, 일정 주기로 다른 방향에서 동일한 패턴이 포착되었다.
그건 멀지 않은 태양계 밖, 특정 궤도들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며, 인간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하거나 일부러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관측되지 않는 거대한 행성이 이전에 없던 장소에 등장해 시시각각 태양계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이후 수십 년간, GU는 해당 현상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동시에, 비공식적으로는 수천 억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구와 인류 문명의 해답을 찾는다는 명목 아래, 수많은 관측소가 개편되었고, 인공위성의 일부는 지상 통제에서 제외되었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구축한 모든 장비를 동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이곳, 우리 은하에 외부은하에서 온 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다.'

이 결론은 GU 상층부만이 공유한 금기의 정보였고, 대중은 오직 우주개발의 이유를 '코어리움 에너지 확보'라는 겉모습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라', 이 거대한 함선이 태양계 깊은 곳까지 침투하도록 설계된 진짜 이유는, 단순한 채굴을 넘어서 그들과의 접촉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있었다.

그들은 지금도 멀지 않은 태양계 궤도 너머 어딘가에서, 거대한 움직이는 행성을 거느린 채로, 인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노라는 조용히 그 모든 기록들과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왜 하필 이곳, 수성이죠?”
그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과 접촉하려면 외행성계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로쉬 박사는 마치 그 질문이 반드시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랑데부(rendezvous)’라고 해두지.”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태양을 향해, 정확히 말하면 이곳으로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어딘가 들뜬 기운이 묻어났다.
“놀라운 일이야. 인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우리가 감지할 수 없을 거라, 그들은 믿었지. 하지만...”

그는 창밖의 부서진 수성 파편을 배경 삼아 고개를 돌려 노라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확신에 가까운 흥분이 서려 있었다.

“정확히 한 달 전, 그들은 목성을 스쳐 지나갔어.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그들의 궤도를 포착했고, 놀랍게도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한번 창 너머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여기야. 수성의 궤도. 정말 우연치 곤 신기하지 않나? 늘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찾아 방문했던 죽은 행성의 무덤이, 그들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