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3화

by더블윤
수성을 향해 항해중인 거대 탐사선 코라


“일은 어때?”
블레어가 타코를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뭐, 그냥 그래. 아직까지는.”
노라는 식판에 담긴 수프를 떠서 입에 넣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블레어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항상 기대하던 우주여행이잖아. 벌써 재미없어진 거야?”

“그런 건 아니야.”
그가 식판에 담긴 수프를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대답했다.

숙소의 관측창 너머로 펼쳐지는 우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인공조명으로 만든 하늘 아래에서 평생을 보낸 노라에게,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별빛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능통제실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가 상상했던 우주여행과 거리가 멀었다. 노라는 콘솔 위에 펼쳐진 수십 개의 상태 표시창을 차례로 넘겼다. 채굴 드론의 동력 계통, 지질 분석기의 감도, 외부 탐사 모듈의 기밀 상태. 대부분의 장비는 아직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은 채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라의 자동화 시스템은 작은 수치 변화까지 감지해 스스로 조정했다. 노라가 할 일은 시스템이 내린 판단을 다시 확인하고, 기록하고,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이 다였다.

“하루 종일 장비 상태만 들여다보거든.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좋은 거 아니야?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바빠질 텐데.”
“그건 그렇지.”
블레어는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타코를 입으로 가져갔다.

노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블레어.”
“응?”
“코라에는 군인이 얼마나 타고 있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조종사들은 모두 해군 소속이라고 했지?”
“응. 함교 인원하고 비행단, 보안 인력도 대부분 군 소속일 거야.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 사람들이 실탄 무기도 가지고 있어?”

블레어는 타코를 입으로 넣으려던 손을 멈추었다.
“실탄 무기?”
“총 말이야. 테이저건 말고.”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건 왜?”

노라는 블레어를 향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내가 뭔가를 본 것 같거든.”




어김없이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노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장비 상태에 관한 업무 일지는 콘솔 위에서 자동으로 작성되고 있었다. 그가 할 일이라고는 생성된 내용을 확인하고 승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때 보조 화면 한쪽에 노란색 경고창이 떠올랐다.
『제3화물 모듈—적재물 취급 충격 감지』

노라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경고창을 선택했다. 해당 구역의 상태 정보와 함께 화물실 내부를 비추는 영상이 화면에 나타났다.
노란색 제복을 입은 승조원 한 명이 컨테이너 취급 장비를 조종하고 있었다. 기계팔에 매달린 회색 컨테이너가 바닥으로 내려오던 중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었다. 승조원이 급히 균형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컨테이너는 그대로 화물실 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으로 컨테이너 문이 벌어졌다. 내부 고정대에는 길고 검은 물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묶여 있었다. 그중 고정 장치가 풀린 하나가 문턱에 걸친 채 밖으로 기울어졌다.
노라는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려 화면을 확대했다. 검은색 몸체. 길게 뻗은 총열. 개머리판과 손잡이. 사진 기록물에서만 보아 온 총기처럼 보였다.
당황한 승조원은 취급 장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뒤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황급히 컨테이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 물체를 집어 드는 순간, 그의 얼굴이 감시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노라는 영상 속 승조원과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을 느꼈다. 노라는 무언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다가 들킨 사람처럼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다른 구역으로 전환했다.




“저건 6.8밀리미터 M-582 소총으로 보여. 21세기말, GU의 비폭력 정바카라에 따라 폐기된 모델이지.”
노라의 개인 숙소 안에 소피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다목적 소총으로, 사용 탄종은 열화우라늄 철갑탄 K71과 비살상·대테러용 탄환인—”

“소총이라고? 확실해? 테이저건이 아니라?”
승조원용 단말기로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던 노라는 놀란 목소리로 소피의 설명을 끊었다.

“내가 분석한 바로는 그래. 현재 영상만으로는 대략 68퍼센트 정도 확신할 수 있어.”
“너는 68퍼센트로도 ‘확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거야?”
“몰라. 내 마음이야. 믿기 싫으면 말든가.”




노라는 자신이 목격한 일을 블레어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블레어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그게 정말 총이었어?”
“소피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68퍼센트 확률로 말이지.”

블레어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까운 좌석에 앉은 승조원들은 각자의 식사와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화성행 수송선 조종사들에게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무슨 소문?”
“반군.”
노라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반군? ‘지구의 자녀’를 말하는 거야?”

그 역시 그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성의 일부 생태 돔을 점거하고 지구로의 귀환을 주장하는 집단. 공식 방송에서는 언제나 과격한 시위대나 파괴된 행정시설의 영상과 함께 소개되었다.

“나도 그들에 대해선 알고 있어. 행정시설을 불법으로 점거한 과격한 반정부 단체잖아.”
“그건 GU가 작성한 설명이지.”
“사실이니까 그렇게 설명하는 거겠지.”
“공식 기록이라고 해서 전부 사실인 건 아니야.”
“그럼 네가 들었다는 소문은 뭔데?”

노라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블레어는 화를 내지 않았다. 잠시 입술을 다문 채 생각을 정리한 뒤 조용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몰라. 다만 처음부터 과격 단체였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
“그럼?”
“처음에는 지구로 돌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에 가까웠대. 화성에서 사라져 가는 언어와 문화를 되찾고 싶어 했고, 생태 돔의 운영권을 주민들에게 돌려달라는 요구도 했고.”
“그러다 행정시설을 점거했잖아.”
“GU가 집회를 막고 관련 정보를 검열하기 시작한 뒤였다는 말도 있어.”

노라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블레어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GU가 총기를 동원해 그들을 진압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
“소문일 뿐이잖아.”
“그래. 소문이야.”

블레어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고는 노라의 손목 단말기를 가리켰다.
“하지만 네가 직접 봤고 소피가 분석한 그 총은 소문이 아니잖아.”

노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반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일 거야. 코라는 GU의 주요 탐사선이고, 로쉬 장관까지 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일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야 앞뒤가 맞네. 그렇다고 한다면 총기가 실려 있는 것도 이해는 돼.”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총기가 있는 게 납득된다는 거야?”
“GU가 재무장하게 된 건 어쨌든 반군의 위협 때문이잖아. 여기는 보안이 필요한 곳이고.”

블레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이유를 찾는 것 같아.”
“무슨 뜻이야?”
“GU가 한 일이라면 반드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노라는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GU가 언제나 옳다는 말은 아니야.”
“그런데?”
“적어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어. 지구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을 화성으로 옮긴 것도, 코어리움을 이용해 문명을 유지한 것도 GU야. 그 질서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어.”
“인류를 살렸다는 사실이 그 이후의 모든 선택까지 정당화해 주는 건 아니야.”
“폭력으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어.”

노라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높아졌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았다. 블레어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 낮춘 채 물었다.

“그 말은 GU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지?”
“GU가 먼저 폭력을 썼다는 증거는 없잖아.”
“반군이 먼저였다는 증거도 너한테는 없어.”
“행정시설을 점거하고 사람들을 선동했어. 그들 때문에 슬롯가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폐기했던 총까지 다시 꺼내게 된 거라면—”
“정말 그들 때문에 총이 돌아왔다고 생각해?”

블레어의 표정이 굳었다. 노라 역시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그들을 감싸는 거야?”
“감싸는 게 아니야. 나도 진실을 모른다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서 GU의 발표는 거짓일 수 있다고 단정하잖아.”
“단정한 적 없어. 적어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무슨 의심? 뉴스에 나온 불타는 시설들이 전부 자작극이라는 의심?”

참다못한 블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식당 안에 짧게 울렸다.
“네가 본 건 테이저건이 아니었어. 공식적으로 폐기됐다는 실탄 소총이었고.”

노라는 굳은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그런데도 너는 총이 왜 거기에 있는지 묻기보다, GU가 그것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부터 대신 만들어주고 있잖아.”

블레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거,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녀는 먹다 남은 타코가 놓인 식판을 들고 몸을 돌렸다. 몇 걸음을 옮기던 블레어는 다시 노라를 돌아보았다.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거야, 노라.”

그 말을 끝으로 블레어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노라는 아무 말 없이 식어버린 수프만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한테 속고 있다는 거야.”

숙소로 돌아온 노라는 차가운 벽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으로 관측창 너머의 희미한 별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블레어의 말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말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노라의 생각은 자꾸만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노라의 아버지는 평생 GU의 코어리움 채굴 장비를 정비했다. 기름과 금속 가루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 돌아오는 날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GU의 과감한 선택과 코어리움의 발견, 과학자들의 지성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미 사라졌을 거야.”
아버지는 노라에게 여러 번 그렇게 말했다.

“코어리움을 캐내는 일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단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인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거야.”
그 말은 어린 노라에게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진실이었다.

아버지는 별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거대한 질서 속에서 각자가 맡은 일을 해야만 문명이 계속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노라가 코어리움 연구자가 된 것도, 코라에 오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딘 것도 그 믿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에게 GU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히 정부를 의심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평생 자부심을 품었던 노동과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감당한 선택,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까지 의심하는 일이었다.

노라는 관측창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구원을 믿었다. 멸망의 문턱에 섰던 인류가 한 차례 구원받았고, 자신 역시 그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구원이 고통과 어둠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랐다. GU가 내세운 ‘질서와 번영’, ‘조화와 공존’이라는 말은 그가 바라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블레어의 목소리는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류를 살렸다는 사실이 이후의 모든 선택까지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

노라는 숙소에 비치된 승조원용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화물실에서 본 영상을 다시 확인하려 했지만, 해당 기록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열람할 수 있었던 영상이었다.

“소피.”
“응.”
“이 영상이 왜 잠긴 거야?”
“보안 등급이 변경됐어.”
“누가 변경했는데?”
“확인할 수 없어.”

노라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때 기상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을 시간이었다. 근무 일정이 바뀐 뒤로 낮과 밤의 구분은 희미해졌다. 코라의 시간은 창밖의 풍경과 아무런 관계없이 흘러갔다.
관측창 너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었다. 별빛은 찬란했지만, 그 사이를 채운 어둠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노라는 빛과 빛 사이에 놓인 검은 공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금성을 떠난 지 3주째 되는 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