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빠른 속도로 방사형 통로를 달리던 열차가 중앙 허브의 도킹 터미널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노라는 캐리어를 끌고 열차에서 내렸다. 좌석에서 일어날 때부터 가벼워졌던 몸이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조금 더 위로 떠올랐다. 캐리어도 바닥에서 살짝 들린 채 그의 손을 따라왔다.
회전하는 주거환에서 멀어질수록 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던 힘도 약해졌다. 평생 오르비트에서 살아온 노라에게 낯선 현상은 아니었지만, 직접 이곳까지 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는 난간을 가볍게 붙잡아 자세를 바로잡은 뒤 터미널의 커다란 출입문을 통과했다.
노라는 손목 단말기를 두드려 소피의 음성을 다시 켰다. 짧은 진동과 함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라……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다니.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야.”
“미안해, 소피. 그래도 봐봐. 늦지 않고 도착했잖아.”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노라는 소피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터미널 안을 둘러보았다.
돔 형태의 거대한 공간에는 파란 유니폼을 입은 승조원들과 그들을 안내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운송 로봇이 짐을 나르고, 공중에는 여러 개의 안내 홀로그램이 떠다녔다.
그러나 노라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돔 천장 곳곳에 난 두꺼운 관측창 너머로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작은 창마다 수없이 많은 별이 박혀 있었다. 주거환의 인공조명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짜 별빛이었다.
노라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저기 봐, 소피. 바깥이 보여.”
“이 시설의 기하학적 구조로 판단하면 엄밀히 말해 저건 천장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여기에는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저 너머가 진짜 우주라고.”
노라는 소피의 말을 끊고 관측창을 올려다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별빛의 바다가 관측창 너머로 일렁이고 있었다. 노라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낡은 천체 사진들이 문득 떠올랐다. 작은 종이 안에 갇혀 있던 별들이 이제는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노라는 한동안 관측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앙 홀을 향해 이동했다. 중심부에 가까워지자 가볍게 떠 있던 발이 다시 바닥에 닿았다. 캐리어의 바퀴도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국부 중력장이 작동하는 구역이야. 중앙부에만 별도의 중력장을 형성한 모양이네. 출력은 주거환보다 낮지만 보행에는 문제가 없겠어.”
소피가 말했다.
“나도 느껴져.”
“그래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첫날부터 다쳐서 돌아가면 굉장히 우스울 테니까.”
“아직 화났지?”
“전혀.”
짧게 대답한 소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노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중앙 홀로 걸어갔다.
터미널 한편에 마련된 탈의실로 들어온 노라는 가져온 캐리어에서 승조원용 유니폼을 꺼냈다. 파란색 상의에는 GU와 탐사선 코라의 문장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노라는 그 자수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GU가 세운 질서가 인류를 살렸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자란 노라가 이제 그 문장이 새겨진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의 자신을 보았다면 분명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잠시 후 탈의실 안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탐사선 코라에 탑승할 승조원들은 지금 4번 게이트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라는 서둘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바닥에는 곧 열릴 게이트로 승조원들을 안내하듯 홀로그램 안내선이 떠올라 있었다. 노라는 그 선을 따라 숫자 ‘4’가 크게 표시된 게이트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파란색 제복을 입은 승조원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노라도 자연스럽게 대열의 끝에 섰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노라가 돌아보자 풍성한 곱슬머리를 가진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블레어?”
“노라! 정말 너였네!”
블레어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채 노라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과거 반물질 연구소에서 노라와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노라는 뜻밖에 마주친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뒤늦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블레어!”
“그러게. 네가 부서를 옮긴 뒤로는 처음이니까…… 거의 3년 만인가?”
블레어는 노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그의 손목에 시선을 멈췄다.
“네 심술쟁이 친구도 잘 지내?”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목 단말기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피! 거기 있지?”
“시끄러워! 귀 아프다고!”
곧바로 소피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블레어는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겁나 웃겨! 너는 귀도 없잖아!”
“여전하네. 정말 하나도 안 변했어.”
노라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게이트의 차단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터미널 직원이 안쪽에서 걸어 나와 대기 중인 승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 앞부터는 인공중력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동 중에는 반드시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직원이 가리킨 곳에는 두 줄의 좌석이 레일을 따라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투명한 보호대와 안전벨트가 달린 모습은 테마파크의 롤러코스터를 떠올리게 했다.
승조원들은 안내에 따라 차례로 좌석에 앉았다. 몇몇은 긴장으로 굳은 표정을 한 채 안전벨트를 여러 번 확인했다. 노라와 블레어도 캐리어를 좌석 아래 수납함에 넣고 자리에 앉아 벨트를 당겼다.
블레어는 노라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긴장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지?”
“너는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어 보여.”
“3년 만에 만난 동료한테 할 말이 그것뿐이야?”
노라는 피식 웃으며 안전벨트를 한 번 더 잡아당겼다.
모든 승조원의 착석이 확인되자 안전장치가 잠기는 소리와 함께 좌석 아래에서 낮은 기계음이 울렸다. 길게 연결된 좌석들이 레일 위로 가볍게 떠오르더니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석이 차단문 너머로 들어서자 몸을 누르던 무게감이 빠르게 사라졌다. 노라의 몸이 좌석에서 떠오르려는 순간, 허리를 감싼 안전벨트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좌석은 어두운 연결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유도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스쳐 지나갔다. 얼마 후 터널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전방에 희미한 빛이 번졌다.
그리고 시야가 한꺼번에 열렸다. 터널 너머에는 투명한 외벽으로 둘러싸인 원통형 도킹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좌석 아래의 레일과 주변을 감싼 얇은 투명 외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밑에도, 머리 위에도 검은 우주와 별들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과 천장의 구분마저 사라진 공간에서 노라의 몸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안전벨트뿐이었다.
좌석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노라는 자신이 통로 안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보호도 없이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노라는 문득 자신들이 별빛 사이를 달리는 가느다란 열차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라의 시선은 곧 우주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붙잡혔다. 눈앞을 가득 채운 탐사선 코라였다. 전장이 500미터에 가까운 하얀 선체가 오르비트의 중앙 허브에 연결된 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함수에서 함미까지 이어진 금속 외피는 수많은 패널과 모듈로 나뉘어 있었고, 오르비트를 닮은 거대한 원환형 구조물이 선체 중앙을 감싸고 있었다. 하부에는 격납고와 도킹 설비가 층층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기관부 주변에서는 푸른 점검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노라는 고개를 들어 함교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대한 선체는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시야 밖으로 뻗어 나갔다.
“코어리움 반응로 하나로 이 모든 걸 움직이는 거야.”
블레어가 투명한 외벽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추진 기관뿐만 아니라 원환형 거주 구역과 주요 모듈의 중력장까지 모두 유지한대.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하지?”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전혀 다르네.”
노라는 코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선체가 창밖 대부분을 채울 만큼 가까워지자 코라 하부의 도킹 설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라 일행이 지나온 투명한 통로는 열린 도킹 터널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고, 터널 안쪽에서는 유도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짝였다.
레일을 따라 움직이던 좌석들은 코라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은 오래가지 않았다. 좌석들이 곡선 터널을 지나 다시 수평을 이루며 멈춰 서자, 터미널 게이트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구조의 승강장이 눈에 들어왔다.
승조원들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라도 좌석 아래 수납함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승조원들이 모두 내리자 그들을 태우고 온 좌석들이 레일을 따라 천천히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블레어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내 예상이 맞았어.”
“뭐가?”
노라가 물었다.
블레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거, 또 타고 싶어.”
노라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코라 내부에 도착한 승조원들은 신원과 탑승 확인 절차를 거친 뒤 각자의 근무지에 따라 다시 분류되었다. 노란색 제복을 입은 기존 승조원들이 통로 양쪽에 서서 새로 합류한 인원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노라 그린비!”
“네.”
“동부 기능통제실. 오른쪽 대열로.”
“블레어 킴!”
“네엡!”
“중앙 연구동. 왼쪽 통로.”
블레어는 연구동으로 향하다가 몸을 돌려 노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봐!”
노라도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블레어는 마지막으로 눈을 찡긋한 뒤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노라는 선임 승조원의 안내를 따라 기능통제실로 향했다. 하얀 복도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벽면에는 구역과 모듈의 방향을 나타내는 홀로그램 안내선이 흐르고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밀폐문 너머에서는 각종 장비와 운송 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복도 중간에 이르렀을 때, 벽면의 홀로그램 투사기들이 일제히 하얀빛을 내뿜었다. 선임 승조원이 걸음을 멈추자, 뒤따르던 신규 승조원들도 복도 양쪽에 멈춰 섰다. 이윽고 그들의 머리 위 허공에 한 남성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중후하고 정제된 목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탐사선 코라의 함장이자 GU 방위과학기술부 장관, 베할라 로쉬입니다. 지금부터 이번 임무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홀로그램 속 남성은 은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 넘긴 채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와 깊고 명료한 눈빛, 흐트러진 곳 하나 없는 슈트 차림까지 언론을 통해 보아 온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14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건강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화 억제와 생명 연장 기술의 가장 성공적인 수혜자로 알려진 그는 거의 한 세기 동안 태양계 탐사와 코어리움 연구를 이끌어 온 과학자이기도 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수성 파편 지대에서 코어리움을 탐사하고 채굴하는 것입니다. 채취한 코어리움의 일부는 연구용으로 사용되며, 대부분은 화성으로 이송되어 인류 문명을 유지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로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승조원들을 바라보듯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코라의 역할은 단순한 채굴에 머물지 않습니다. 미지의 물질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존재를 찾는 것. 그것이 코라가 수행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입니다.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그의 입가에 다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더 나은 인류를 위해, 여러분의 수고가 새로운 진보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영상이 사라지자 복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곳곳에서 가벼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굳은 표정으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노라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짧은 연설만으로 감동할 만큼 로쉬의 열렬한 추종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과 탐사에 대한 열정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코라가 건조된 이후 로쉬는 단 한 번도 장기 탐사 임무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진보’라는 이름 아래 연구와 탐사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런 인물에게 수많은 사람이 존경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능통제실에 도착한 노라는 배정된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노라 그린비.”
그를 부르는 통제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실장님.”
“시뮬레이션 성적이 우수하더군.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네. 출발 전 탐사 장비의 기능 점검을 실시하겠습니다.”
노라는 곧바로 승조원용 단말기를 콘솔에 연결했다. 잠시 후 동부 기능통제실이 관리하는 탐사 장비들의 상태가 화면 위로 펼쳐졌다. 노라는 채굴 드론과 지질 분석기, 외부 탐사 모듈의 상태를 차례로 확인했다. 자동 점검 결과만 넘겨보지 않고 냉각 계통과 동력 분배 수치까지 빠르게 대조했다.
“동부 기능통제실 담당 장비, 특이사항 없습니다. 장비운용실에도 해당 내용 전달하겠습니다.”
노라의 보고를 들은 통제실장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른 승조원들의 보고까지 모두 받은 뒤 함교로 통신을 보냈다.
“동부 기능통제실, 임무 수행 준비 상태 이상 무. 예인 절차를 진행해도 됩니다.”
통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실 중앙에 코라와 오르비트의 도킹 상태를 보여주는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선체 주변에는 여러 척의 예인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인선의 기계팔은 코라의 외부 고정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고, 도킹 통로에서는 마지막 철수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후 낮은 진동이 좌석을 타고 전해졌다. 노라는 자신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한 번 더 당겼다.
「도킹 해제. 예인 절차를 시작합니다.」
항해 장교의 목소리가 선내 방송을 타고 울려 퍼졌다.
입체 영상 속에서 오르비트와 코라를 연결하던 고정 장치들이 하나씩 풀렸다. 예인선들이 동시에 기동하며 거대한 선체를 중앙 허브에서 천천히 끌어냈다. 통제실 전면 화면에 보이던 오르비트의 구조물도 아주 느린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예인선들이 기계팔을 회수하고 오르비트로 돌아가자, 코라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었다.
「이안 완료. 항로 설정 완료. 코어리움 반응로 출력을 상승합니다.」
선내를 울리던 진동이 조금씩 깊어졌다. 콘솔 위의 수치가 빠르게 올라갔고, 통제실 곳곳에서 승조원들이 장비 상태를 확인하고 보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주 추진기 가동 3초 전.」
통제실의 소음이 잠시 잦아들었다.
「3…… 2…… 1…… 추진 개시.」
노라의 등이 좌석 쪽으로 깊숙이 눌렸다. 안전벨트가 가슴과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선체를 타고 전해지는 낮고 묵직한 진동이 통제실 전체를 흔들었다.
노라는 콘솔을 조작해 외부 카메라 화면을 불러왔다. 검은 우주 한가운데 금성이 떠 있었다. 짙은 구름으로 뒤덮인 황금빛 행성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었다. 행성의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빛의 테두리가 번졌고,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오르비트는 금성 앞을 지나가는 작은 금속 고리처럼 보였다.
코라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금성과 오르비트는 천천히 작아졌다. 노라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이었지만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던 휴고와 펠리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외부 화면이 전방 카메라로 전환되자 금성은 사라지고, 검은 우주와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통제실 앞을 가득 채웠다.
노라는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이제 평생 바라 왔던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