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부터 내 고민은 양갈래 길에서 서로 제 갈 길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하였던 내 고민은 최선바카라이 아닌 차선바카라,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못한 최악의 선택지만 피하려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었다.
우선의 선택지는 오천만 원을 김**님에게 변상하고 그분에게 정중히 머리를 조아려 사과드리고 지금의 사태를 끝내는 것이었는데 그 선택지를 선택하기에는 내게 너무나 가혹하고 대미지가 컸다.
우선 봉급생활자가 하루아침에 오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하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당장 그 큰 금액을 마련하려면 지금 내가 가족들과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는 방법 밖에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면 그때 내가 다녔던 은행은 자행(自行) 임직원들에 대한 대출조건은 너무나 까다로웠다.
대출을 받는 이유를 철저히 따져 물었고 실제 받은 대출이 그 이유에 정확히 쓰였는지를 은행은 feed back 하였다.
더군다나 대출목적을 업무미스에 따른 변상목적이라고 신고하면 불섶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 금액을 변상하고 나면 딱한 남의 형편을 살피다 생긴 결과가 너무나 가혹하여 내 남은 삶의 지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두렵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김**님과 계속해서 기(氣) 싸움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출업무를 제외한 지점의 모든 성과를 바카라임져야 할 VIP팀장의 자리로 보직이 바뀌었다.
지점 성과면에서 그때 내 자리의 바카라임은 막중하였고 보직을 받은 그날부터 맨발로 뛰어도 될까 말까 한 자리였는데 오천만 원 사건만을 손에 쥐고 세월을 죽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성과를 내팽개치고 내가 허송세월을 하고 있으면 나는 물론이고 지점직원 전체에 큰 폐를 끼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였다.
설상가상으로 금감원 검사역은 내게 계속해서 같은 목소리로 해결을 종용하였고 지점장님은 그런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셨다.
지점장님의 그 안타까운 눈빛은 부하직원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입장을 헤아리신 안타까운 마음과 그 부하직원이 어려움으로 주저앉은 시간이 너무 길면 지점의 일은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셨으리라.
내 마음은 하루 종일 오천만 원을 앳따하고 내어놓고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느냐, 이렇게 큰 금액을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내어 놓을 수는 없다는 이 두사 (二頭蛇)가 다투고 있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였다.
퇴근길이었다.
늘 자동차로 지나던 길에 지금껏 내 눈에 보였던 아름다운 가로등, 그 가로등 밑을 걷던 사람들, 어쩌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의 모습은 이제 내 눈에 없었다.
세상에서 사라진 듯하였다.
퇴근길에서 조차 마음속 이두사의 다툼은 계속되었다.
그날
은행과 집 중간 어디쯤에 왔을 때 갑자기 굵은 무엇이
내 등에서 시작되어 목덜미 쪽으로 스멀거리며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왔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고 차창 가까운 곳에서 죽음이라는 아직 청(請) 하지 않은 불청객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껏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빠르고 느리게 내 머리에 머물렀다.
자동차를 갓길에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조용히 머리를 등받이 쪽으로 붙이고 몸을 뉘었다.
사람이 이렇게 떠나는구나 싶은 마음에 조금은 서글펐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달리 해 볼 것이 없었다.
아직 어린아이 셋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 이렇게 내가 떠나고 나면 저 눔들을ㆍㆍ
조용히 눈을 감고 이제 곧 닥칠 내 운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내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순간 내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던 묵직한 그 무엇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이내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차창에서 서성이던 내가 청하지 않은 손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일시적일까?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있어 보았다.
괜찮았다.
땀도 멈추고 호흡도 점차 돌아왔다.
그 순간 내 고민을 정리하였다.
... 변상하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자.
그깟 오천만 원이 목숨보다 소중하랴.
나와 아내, 아이들 명의로 된 예금 전부를 해지하여 억지로 오천만 원을 마련하였다.
다음 날
출근해서 지점장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서 그 돈을 변상하겠다 말씀드렸을 때 지점장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점장님 얼굴에 희(喜)와 비(悲)가 같이 비쳤다.
김**님께 전화해서 그 돈을 드리겠다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젊은 이 팀장 앞 길을 생각해서 그 돈을 받을 것인데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그동안 내가 당신이 한 업무 착오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걱정한 비용으로 5백만 원을 추가로 더 주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그 돈을 가지고 올 때 서울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당신 은행 은행장과 함께 와야 하고, 와서 은행장은 내게 말로 사과하고 이 팀장 당신은 내 발치에 엎드려 절하면서 사과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청와대 고충실, 국민 권익위에 이 팀장 당신을 고소해서 꼭 콩밥을 먹이겠습니다.
그리 아세요.
하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 기간 동안 처음 창구로 와서 돈을 찾아가신 정**님도 수시로 나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받아가셨다.
- 이팀장
내가 지금 50만원이 필요하니 그 돈 좀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길로 경찰서로 가서 팀장님께 뇌물을 주었다고 진술을 번복할 것이오.
나는 그 때마다 그 분께 돈을 드렸고 그 분은 늘 그리 크지 않은 50~100만원을 내게 요구하셨다.
그동안 내가 아름답게 보았던 세상과 믿어 왔던 사람들의 모습에 뿌연 안개가 끼였다.
40년을 살아온 내 인생관이 통째로 흔들리고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지점장님이 노발대발하셨다.
-이 팀장
김**씨 이 양반
사람이 아니다.
법대로 하자.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내가 미리 적극적이지 못해 이팀장한테 미안하다.
하셨다.
나는 그저 말로만 들어왔던 청와대, 권익 위라는 말이 아직 내 귓속에 남아 심장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이후 지점장님은 은행 본점 법무실에 내용을 보고 하셨고 일의 앞뒤를 파악한 법무실에서 소송을 진행하였다.
소송의 원고는 은행이었고 소송명은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었다.
즉 김**씨가 은행에 돈을 변상하라고 하는데 은행에서는 변상할 채무가 없다는 판결을 구하는 소송이었다.
민사소송은 내 생각보다 오랜 기간 진행되었다.
서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반박하고 그 반박을 상대는 또 반박하며 세월이 갔다.
그 기간 동안 김**님은 수시로 내가 근무하는 지점에 찾아와 큰 소리로 내가 정**씨에게 대가성으로 돈을 받고 엉터리로 돈을 지급하였다고 항의하셨고 객장의 다른 고객분들은 범죄자 보 듯 나를 보셨다.
또 지점 밖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셨다.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맞은편 **은행 ***지점 안에 뇌물을 받고 돈을 다른 사람에게 지급한 이종열팀장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이 살면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평안하고 축복받은 하루인지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있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고 드디어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의 내용은 이랬다.
- 정**(당초 오천구백만 원을 찾아가신 분)은 원고 은행에서 부당하게 찾아간 오천구백만 원을 반환하고 원고 은행은 정**에게 반환받은 금원을 당초 있었던 계좌 1234- 56-789-0에 환원예치 하라.
하였다.
판결문 내용으로 봐서는 내 은행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정**에게서 돌려받아 그 돈 그대로 김**에게 반환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나에게 업체 부도를 운운하며 오천구백만 원을 찾아가신 정**님이 이미 파산 상태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심지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낡은 자동차에 조차 서너 개의 압류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연히 찾아간 오천구백만원을 반환 할 자금의 여력은 없었다.
김**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
누가 돈을 내던 최종적으로 지신에게 돈을 돌려줄 당사자는 공신력이 있는 은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규정상 우선 은행에서 가지급금(假支給金) 계정으로 당초계좌 1234-56-789-0으로 원금 오천구백만 원과 지연이자까지 계산하여 입금하였다.
입금되기 하루 전 날
김**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그날 전화 목소리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목소리와는 180°가 다른 목소리였다.
-이 팀장님.
그동안 이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죠?
지나고 나니까 제가 팀장님께 너무 심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
전화로의 말씀이 꽤나 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게 전화하신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 오천구백만 원을 공동명의 계좌 1234-56-789-0으로 입금하지 말고 자신의 부인 계좌로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셨다.
원인도 모른 나는 지금부터의 모든 진행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법리에 따라 은행법무팀에서 하는 것이라 설명드렸다.
그때는 솔직히 김**님이 밉고 야속하였다.
다음날
법원판결문대로 문제의 오천구백만 원은 당초 존재하였던 계좌로 입금되었다.
그것으로 거의 3년 동안 나를 애먹이고 괴롭혔던 공동명의예금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후 나는 서울 본점 인사부로 올라가 인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곳은 나의 부당한 업무처리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하는 곳이었고 대상자에게 사건내용의 진술을 듣는 곳이었다.
위원회의원들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내게 물었고 나는 숨김없이 사실을 진술하였다.
그 위원님 중 한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팀장님의 그 업무처리가 비록 규정에는 조금 벗어났지만 그것이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전에 팀장님의 상벌(賞罰) 사항을 조사해 봤는데 팀장님은 팀원 시절 여러 차례 고객응대 우수직원으로 상을 받으셨더군요.
업무 우수직원으로도 요.
이번 일도 그런 차원이라 저희는 봅니다.
그러니...........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징계워원회 상벌 결과는 내가 서울에 다녀온 후 6개월 만에 나왔다.
출장을 다녀온 내 바카라상 위에 놓인 봉투에 붉은색으로 써진 친전(親展)이라는 글씨를 보고 나는 징계위 결과표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다행히 징계는 없었고 은행이 대신 반환한 오천구백만 원에 대한 변상은 내게 바카라임이 떨어졌다.
그런데 내가 변상해야 할 금액은 아주 소액이었다.
인사부장님 명의의 공문도 함께 들어있었다.
공문에는 변상에 관한 규정에 의한 변상조치이고 다음부터는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더 철저하고 더 규정에 입각하여 업무를 처리하라는 말도 공문에 적혀있었다.
그때가 2007년 어느 날이었다.
처음 정**고객님이 나를 찾아오고부터 정확히 5년이 넘은 날이었다.
이로서 나는 그 지옥 같았던 공동명의예금 지급사건에서 벗어났다.
그날 지점장님은 물론 우리 지역 본부장님까지 내게 전화로 고생했다는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들의 따스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그때 김**님이 왜 갑자기 전화로 나에게 그토록 다정다감하게 오천구백만 원을 부인명의 통장으로 입금하여 달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은행에서 당초 계좌로 오천구백만 원을 반환하려 하였을 그 무렵 이미 그 계좌는 다른 채권자들에 의해 압류, 가압류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고 그 금액은 십억 원이 훨씬 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은행에서 당초계좌로 오천구백만 원을 반환하여 입금하면 그것은 김**님의 돈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채권자들이 안분하여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김**님은 미리 알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그때 은행에서 반환하여 입금하여 드린 오천구백만 원은 고스란히 그분 채권자들 몫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오고 숨이 막힌다.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몇 가지를 깨달았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낀 것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지 못할 때도 있구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생긴 나쁜 일에 편승하여 일을 더 나쁘게 하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같이 걱정해 주고 일을 해결해 주려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구나.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
그때의 일이 내 남은 은행생활의 큰 자양분이 된 것은 확실하다.
내 삶의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