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그믐 밤은 칠흑이었다.
서산 끝머리에 떠 있는 독성(獨星)이 홀로 반짝였지만 사람들의 마을을 밝게 비추기에는 별이 너무 멀리 있었다.
인가(人家)위를 날으는 반딧불이 칠흑의 어둠을 지우려 해보았지만 그믐 밤 어둠의 크기보다 반딧불의 빛이 작아 빛이 바랬다.
그저 산속 깊은 곳에서 울어대는 두견새만이 이곳이 산이고 저곳이 골(谷)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마을에 땅거미가 내리고 한참이 지났을 때 어느 집, 어느 집 방문에 희미하게 호롱불빛이 비쳤다.
어느 집은 호롱불조차 켜지 못하였다.
가난이 그렇게 하였다.
낮에 친구들과 멱을 감고 때기치기(딱지치기)로 해가는 줄 몰랐던 나는 사방이 캄캄해지고 마당에까지 초야의 어둠이 찾아오고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일 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할 숙제를 미뤄 두었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바카라을 꺼내고 작기장(공바카라)을 꺼내 방바닥에 엎드렸지만 이미 칠흑의 어둠은 내가 엎드려 있는 방 깊숙이 들어와 앉아 있었다.
코밑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호롱불 좀 켜주십사 엄마 눈치를 보았고 내 엄마는 할배의 눈치를 보셨다.
다행히 할배가 거처하셨던 사랑방에서 할배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얼른 다왕(성냥)으로 호롱불을 켜주셨다.
불붙은 성냥을 호롱으로 가져가 그곳에 불을 붙이시던 엄마는 고장 난 축음기에서 들렸던 애국가 후렴처럼 늘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내가 니 때문에 못 산다.
해가 중천에 벌겋게 떠 있을 때는 뭐 하고 꼭 해 빠지고 어두불 때(어두울 때) 이카는 지 내사 모리겠다.
그러나 자주 할배가 일찍 주무시지 않으실 때는 나는 해야 할 숙제를 들고 호롱불이 켜진 친구집으로 가거나 할배가 잠드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호롱불은 석유로 켰는데 할배가 호롱불권(權)을 쥐고 통제하셨던 것은 그 석유가 아까우셨던 것이다.
지독한 가난이 할배를 작게 만들었다.
국민학교 1~2학년 어느 때쯤이었다.
여름방학 중이었다.
내가 살고 있었던 옆집 친척 아지매가 대구 딸레미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 아지매 딸 집이 내 생모와 생부가 살고 계셨던 곳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친척 아지매가 나더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내 동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시 어렸던 나는 당연히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그 허락은 친척 아지매가 대신 받아 주셨다.
대신 무사히 잘 데리고 갔다 오겠다, 대구에서 딱 이틀밤만 자고 오겠다는 단서를 달고서 말이다.
대구에 다녀와도 좋다는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고 세상의 시계라는 시계는 모조리 멈추어 버렸다.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고 날이 바뀌지 않았다.
아침에 뜬 해는 몇 날 며칠을 하늘에 떠 있는 듯 길었고 흐르던 시냇물도 제 자리에서 서버렸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째깍이며 가는 벽에 걸린 낡은 자명시계의 바늘은 내 온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가면서 느리게 느리게 가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대구에 가 있었다.
느리게 갔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 드디어 내일 대구로 가는 날이었다.
나는 마을 동무들에게 내일의 일을 말해두었다.
-나는 내일 성내에 간다.
내 갔다오꾸마.
갔다 와서 거서(거기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느그한테 다 말해주꾸마.
나의 말들은 이미 수십 번 한 이야기들이었고 다만 '내일'이라는 단어만 바뀌어 들어갔다.
-니 대구 가면 코 조심해래이
대구는 깍쟁이들이 많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코 비(베어) 간다 카더라.
동무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름밤 깊은 산속에서 울어대는 두견새는 울었다 쉬면서 밤새 운다는 사실을 그날 밤 처음 알았다.
-열이 니 조심해서 댕기 오니라.
대구는 차가 많아가 함부로 뛰 댕기마 큰일 난다.
걸을 때 눈 단디 뜨고 걸어라.
알았지?
엄마의 걱정이 늘어지셨다.
그날 나는 아침 밥상에 올라온 쌀이 꽤나 섞인 밥을 반도 먹지 못하였다.
-열아
준비 됐으마 나오니라.
인자 가자.
나를 데리러 집 마당으로 오신 친척 아지매 목소리가 지옥에서 만난 부처님 목소리로 들렸다.
사랑방에 계신 할배께 다녀오겠다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마당 싸리문에서 맴돌았다.
아지매 손을 잡고 마을회관 앞 길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용산에서 출발해서 왔는데 버스의 움직임은 멀리서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도로에서 하얀 먼지가 일어 버스가 지금 어디쯤 오는지 그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버스는 시간을 정해서 다녔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길에서의 변수들이 더 많았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고
길 잃은 주인 없는 소가 느리게 길을 앞서 지나가고
급작스레 강물이 불어 도로를 넘어오기도 하였다.
이럴 때 버스는 늦었다.
어떤 때는 아예 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조짐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용산방향에서 고정되어 좌우로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의 시계들이 또 멈추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용산 쪽에서 희뿌연 먼지가 일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온다.
드디어 온다.
그때의 나는 대구로의 여행도 좋았지만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도 그것만큼 좋았다.
버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버스는 -영화여객-
이라는 버스 머리 위의 글자가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이 오더니 내 눈앞에 멈추어 섰다.
버스가 멈추자 뒤따르던 먼지가 일순간 버스를 에워쌓다.
기름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버스의 문은 먼지가 조금 가라앉고서야 열렸다.
문이 열리자 이내 차장누나가 내려 아지매와 나를 안으로 안내하였다.
- 야 몇 학년인교?
차장누나가 아지매한테 물었다.
누나의 눈매는 용의자를 앞에 둔 형사의 눈매처럼 날카롭고 매서웠다.
어리바리한 나는 그때부터 바짝 쫄아 있었다.
-몇 학년은 무씬 몇 학년?
핵교는 내년에 드가는데ㆍㆍ
아지매는 일부러 차장누나와 눈을 맞추지 않으셨다.
차장누나의 날카로운 눈매는 이내 내쪽으로 향했다.
일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이 얼어붙었고 머리가 하얘졌다.
차장 누나가 나한테 무엇을 물을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니 몇 학년이고?
학교 다니고 있제?
예상 질문지가 내게 떨어졌다.
...지는 지금 국민학교 1학년입니더.
학교는 올해 드갔어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버스를 타기 전 수없이 엄마와 아지매한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열이 니 잘들으래이.
니 뻐스 타거든 차장이 니한테 뭐라꼬 물어도 니는 올해 일곱 살이라 캐라.
학교 댕기나 물어도 절대로 댕긴다 카믄 안된다.
알겄나?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내가 왜 여덟 살인 내 나이를 일곱 살이라고 해야 하는지,
왜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한 내가 내년에 입학한다고 해야 하는지 엄마와 아지매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버스요금이 국민학생은 어른의 반값이고 미취학 아동은 면제라 그렇다고 하셨다.
거짓말에 익숙치 않았던 그때 나로서는 그 순간이 죽을 지경이었다.
그것도 무서운 차장 누나 앞에서의 거짓말ㆍㆍ
내 입에서 나오는 정반대의 대답을 기대하며 나를 쳐다보는 아지매와 차장누나의 눈빛이 매서웠다.
-학교는 내년에 드갑니더.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의 울듯 말하는 내가 불쌍했는지 차장 누나는 더 이상 내 나이를 묻지 않았다.
그때 짧게 대구로 가겠다고 결심한 것을 후회하였다.
시골버스는 정류장이 없었다.
아무 곳이건 사람이 손을 들면 세워서 손든 사람을 태웠다.
버스가 지나간 뒤로 하얀 먼지가 일었다.
마을에서 30여분을 걸어야 했던 멱감으며 놀던 곳 배로까지 버스는 5분 만에 지나갔다.
버스는 생조모 친정이 있는 평천을 지나 고모부고향 임고도 순식간에 지났다.
산골에서 자라면서 말로만 들어왔던 곳이었다.
꿈을 꾸는 듯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읍내 영천에 도착하였다.
-여서(여기에서)쪼매 기다리셔야 합니더.
운전수, 조수, 차장이 점심 먹고 오겠심니더.
운전기사 아저씨가 버스 시동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승객들에게 던지 듯 말씀하시고 버스에서 내리셨다.
그 쪼매의 시간이 정확히 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때 버스 승객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으셨다.
어리바리하였던 촌뜨기 나는 버스 안에서 바깥으로 보이는 신천지 구경에 혼을 빼고 있었다.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정류장 안에 켜져 있는 전기로 켜진 형광등
비포장이 아닌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알록달록한 버스들
바로 옆에서 소리를 내지르며 지나는 기차
차창 밖에서 4개를 한 묶음으로 해서 '능금'을 외치며 파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은 형들
버스 안에서 수염이 목까지 내려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대담배를 뻑뻑 소리를 내면서 피우셨고 옆 좌석에 앉은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는 할아버지가 담배를 끄실 때까지 버스 밖에서 기다리셨다.
나는 1시간을 1분 보내듯 보냈고 기사님과 조수 아저씨, 차장 누나가 버스에 올랐다.
- 오라이~
차장 언니가 버스문을 닫자 버스는 출발하였다.
대구로 들어선 버스 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점차 도시스러워졌다.
번호를 달고 달리는 시내버스가 보이고
거리에 신호등과 가로등이 보이고
극장 한 곳도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대낮인데도 노란 백열등을 켠 상점들이 즐비한 곳은 어쩌면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나는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 차창쪽으로 돌아서 마음에서 이는 것을 소리로 내었다.
- 우와, 우와
[동부정류장]이라 쓰여 있는 정류장으로 버스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버스가 서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가 가지고 탄 물건들을 정리하여 손에 들었다.
사람들의 물건은 대부분 쌀과 보리쌀, 고구마, 감자 같은 농산물들이었으나 어쩌다 닭, 토끼 같은 가축들을 가지고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지매 보따리에는 콩과 옥수수
그리고 암탉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닭은 오는 내내 보따리 안에서 몇 번 퍼덕였으나 얌전히 잘 있었다.
아지매는 하나밖에 없는 대구 사는 사위가 좀체 오지 않자 직접 씨암탉을 들고 사위사랑은 장모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아지매가 대구에 오신 이유였다.
버스에서 내린 대구는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
많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열기에다 아스팔트 열기를 보탰다.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살던 시골의 더위는 숫제 명함도 못 내밀 더위였다.
- 엄마
와 이래 늦게 오노?
오다가 차가 고장 났나?
정류장 저쪽에서 아지매 딸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가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였는지, 딸이 도착시간을 잘못 알았는지 꽤 오랜 시간을 찜통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리신 것 같았다.
아지매 딸에게 인사하고 내 눈은 이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버스와 길게 줄을 서 있는 택시들, 그리고 정류장 안에 켜진 형광등ㆍㆍ
시골에서 내가 쉽게 볼 수 없었던, 아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장면들이 내 눈 바로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넋을 놓고 있었다.
아지매 딸의 안내로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대구의 시내버스는 내가 살던 곳을 다니던 버스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대구의 시내버스는 내가 가끔, 아주 가끔 타 보았던 시골버스처럼 덜컹대지 않고 달렸다.
달리다가 정해진 곳에 정차하였다.
시골버스는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정류장인데 대구 시내버스는 차가 멈추는 곳에서 사람들이 기다렸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는 모든 것들이 내게는 신천지였다.
아지매 보따리에 쌓인 암탉과 내 눈이 휘둥그레하였다.
아지매 딸 집은 시내버스에서 내려 약간의 오르막길을 걷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판자로 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스무 집은 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곳이 달동네인 듯싶다.
그곳에서도 내 입은 조금 전과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와, 우와
사람구경하기 힘든 몇 집 되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다가 이렇게 벌집처럼 붙어 있는 집들이 어린 내 눈에는 별천지로 보였다.
아지매 딸 집 천장에 노란색 백열등이 달려 있었다.
아지매 딸 집 마당 한가운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아지매는 당신이 가지고 오신 보따리를 풀어 딸에게 주셨고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시골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구경하였다.
버스와 택시소리가 마당 가까이에서 들렸다.
- 엄마
그라고 열아
오늘 대구까지 온다꼬 몸이 고단할낀데 일찍 자거라.
아지매 딸이 둘러앉아 먹은 저녁상을 부엌으로 물리면서 말씀하셨다.
아지매 딸은 아지매와 나를 위해 방 한 칸을 비워주셨다.
잠들기가 아까웠다.
내가 지금 이대로 눈을 감으면 대구에서의 밤풍경이 내 감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또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기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천장에 복숭아만 한 노란색 백열등이 매달려 작은 방을 비추고 있었고 불빛을 좇아 하루살이 떼들이 모여들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모기들은 앵앵 소리로 하루살이 떼 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감지말자.
-열아
인자(이제) 자자.
니 불쫌 꺼라.
아지매가 누운 채 말씀하셨다.
잠들지 말자던 내 의지는 지킬 수 없는 희망이 되어 무너졌고 이제 불을 꺼야 했다.
옆방에서 아지매 딸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 아쉽지만 이제 불을 꺼야 한다.
일어나 켜진 백열등 쪽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에 놀란 하루살이 떼가 일시에 흩어졌다.
-후우~~
백열등을 입에 대고 불었다.
대구에서의 마지막 풍경이 못내 아쉬웠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내 입김이 약했나?
-후우~~
아까보다 입에 바람을 더 넣어 불었다.
백열등만 내 입김에 흔들릴 뿐 불은 꺼지지 않았다.
-후우, 후우
대여섯 번 더 불어보았지만 백열등은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아지매
이 불 안꺼집니더.
벽을 보고 돌아 누우신 아지매한테 말했다.
-야가 머라카노?
그럴 리가 있나?
비끼봐라
내가 꺼꾸마.
-후우, 후우~~
아지매의 입바람에도 백열등은 빛을 놓지 않고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희한테이
도시 호롱불은 촌 호롱불하고 틀린갑다.
할 수 없지
그냥 자자.
아지매와 나는 밤새 백열등을 켜놓고 잤고 덕분에 그 방에 있던 하루살이와 모기는 그날 진수성찬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어젯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지매 딸은 박장대소로 말했다.
-내가 엄마하고 열이 니 때문에 못 산다.
못살아.
아지매 딸이 백열전구 옆에 붙은 스위치를 돌려 불을 껐다.
밤새 켜져 있던 백열등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