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지 않은 가상의 소설입니다.
-폐하~
그 자(者)를 지금 당장 이곳 어전(御前)으로 끌고 나와 그 자의 죄를 문초하옵시고 그 자의 입에서 그 어떤 대답이 나와도 괘념치 마시고 그 자를 참(斬)하시옵 소서.
왕은 옥좌에서 정전(正殿)을 내려다보고 그곳에서 머리를 조아린 늙은 신하가 엎드린 채 읇조렸다.
신하는 병조시랑 이겸(李兼)이었다.
병조는 웅변하였고 왕은 침묵으로 그의 간언(諫言)을 듣고 있었다.
병조시랑의 목소리는 크지 않고 작았지만 정(靜)함이 없이 탁하고 거칠었다.
-예조시랑도 병조와 생각이 같은가?
왕이 병조시랑 맞은편 정전에 엎드린 예조시랑을 보며 물었다.
-신(臣)은 병조와 생각이 다르옵니다.
예조의 목소리도 병조와 같이 크지 않고 작았지만 낮고 정(靜)하였다.
-경의 생각을 말해보라.
왕이 예조에게 물었다.
-신은 그 자의 벌(罰)함은 옳지 않다 여겨지옵니다.
세 가지 연유이옵니다.
그 첫 번째가 그 자를 지금 벌하시면 전시(戰時) 상황인
작금(昨今)에 그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하게 되고 그리되면 그 자의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가 그 자가 하던 일을 대신해야 하옵니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 것은 병법의 기본 중에 기본이옵니다.
두 번째 이유가 그 자는 지금껏 쉰 번이 넘는 전투에서 모두 승전하여 우리 고려에는 자랑이요, 적 거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옵니다.
그런 그자를 벌하신다 함은 옳지 않다 사료되옵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전장(戰場)의 상황은 그곳에 있는 장수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니 그가 그리 한 것에는 다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생각되옵니다.
그자의 생각을 알기 전에 참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 사료되옵니다.
-그가 그리한 것에는-이라는 예조의 말에 왕의 미간(眉間)이 일순간 일그러졌으나 병조와 예조는 알지 못하였다.
-예조의 생각에 대하여 병조시랑이 반박해 보시오.
왕이 일그러진 미간을 펴고 병조시랑을 보았다.
-폐하
신(臣) 또한 세 가지 이유로 그 자를 지금 당장 벌해야 한다 사료되옵니다.
첫 번째가 그 자는 그 자의 직속인 상장군의 명(命)을 어긴 죄인 이옵니다.
상장군의 명이 신 병조의 명이고 신의 명이 곧 폐하의 명일지 온데 그 자가 이를 따르지 않음은 곧 폐하의 명을 따르지 않음이옵니다.
군(軍)의 생명이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온데 그자는 그 생명을 하찮게 여겼사옵니다.
그것은 곧 폐하의 명을 하찮게 여긴 것이옵니다.
두 번째는 그 자가 비록 지난 쉰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것은 맞사오나 그 자는 자신이 질 전투에는 출전치 않았사옵니다.
이번에도 그랬사옵니다.
장수가 이길 것이 뻔한 전투에 나가 이기는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닐 뿐 아니라 이는 자신의 승전으로 나라를 속이고 백성을 속이고 나아가
폐하를 속이고 기만한 것이옵니다.
세 번째가 무릇 장수는 자신이 처한 전장의 상황을 알고 모르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출전하여 얼마나 많은 전공을 세우느냐가 중요하옵니다.
전장상황의 부지(不知)를 이유로 출전하지 않고 몸을 웅크린 것은 장수의 덕목이 아니옵니다.
해서 그자를 지금 당장 참해야 된다 사료되옵니다.
병조시랑은 처음 왕에게 고했을 때보다 목소리가 더 작아지고 말하는 도중 깊은 기침을 토하였다.
-폐하
작금(昨今)에 오랑캐 무리들이 우리 고려를 짓밟고 다니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지금 고려 백성들의 목숨을 도륙하고 백성들의 양식을 약탈하고 있사옵니다.
지금 나라의 사정이 이렇듯 풍전(風前)의 등화(燈火)와 같사온데 이리도 중차대한 시국에 용장(勇將)이고 맹장(猛將)인 그 자를 참하시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저들 오랑캐들의 아가리에 고깃덩어리를 갖다 바치는 형국이옵니다.
설령 그자를 오늘 참하지 않으면 내일 참하여도 될 것이오나 만약 그자를 오늘 참하시면 내일 다시 그 자를 살릴 길은 없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소서.
엎드린 예조시랑의 어깨가 들썩였다.
- 물러가라.
왕이 옥좌(玉坐)에서 일어났다.
두 신하는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바닥이 차니 그만 물러들 가라.
내 오늘 두 분의 말을 생각해 보고 명일 간 결정하리다.
왕이 일어나 대전을 나갔다.
예조시랑의 눈에 빈 옥좌가 흔들거려 보였다.
... 저 옥좌는 얼마나 더 보존될까?
병조시랑 이겸(吏兼)과 예조시랑 신축(申蓄)은 어릴 적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도반이었다.
이겸과 신축은 똑같이 영재였다.
스승이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고 열을 가르치면 백을 깨우쳤다.
스승은 그런 둘에게 그들이 영재의 재목이라는 사실을 함구하였다.
그들이 입학하고 2년쯤 지났을 때 둘은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꿈꾸었다.
이겸은 학문은 곧 수학자의 입신영달을 위한 과정이고 도구라 여겼다.
수학자들은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하여 학문을 익히고 그 학문을 외운다고 여겼다.
가끔 그런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다 그의 스승에게 회초리를 맞았지만 그는 스스로의 뜻을 굽히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현실주의자였고 실리주의자였다.
신축은 이겸과는 정 반대의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문은 수학자의 마음의 양식을 넓히고 삶의 지표로 삼을 방향타의 역할을 할 것이라 여겼다.
더군다나 모름지기 대장부의 학문은 장차 나라를 부국 하게 하고 백성들의 삶을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학문은 외우지 않고 깨달아야 한다 여겼다.
그러나 그는 그의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둘은 강하게 서로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스승은 알고 있었다.
예조 신축이 궁의 감옥에 투옥된 대장군 조혁종(趙赫宗)을 그날 밤 야심한 시간에 찾아갔다.
투옥된 조장군은 목에 칼을 쓰고 힘겹게 바닥에 좌정하고 있었으나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얼굴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다.
예조시랑이 찾아온 것을 눈치챈 조장군이 가늘게 눈을 떠 그와 눈을 맞추었다.
투옥된 지 나흘이 지났다.
-대장군
어떠시오?
견딜만하시오?
예조의 눈에 대장군이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그리 물었다.
장군이 힘겹게 눈을 떠 예조시랑과 눈을 맞추었다.
-어찌 이리 미련하고 무모하오?
적의 진지(陣地)로 출정하라는 상장군의 명(命)을 따르지 않음의 의미를 장군은 진정 모르시오?
예조가 무릎을 낮추어 옥창살을 잡고 말했다.
-대감
그 의미를 알기에 소장(小將)은 더욱더 출정치 못하였사옵니다.
병조는 전쟁의 날이 길어 빠른 시기에 종전을 원하는 조급한 마음에 소장에 출정을 명하였으나 이는 거란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옵니다.
소장이 미리 보낸 첨병들이 그리 보고 그리 들었다 보고하는데 소장이 어찌 그곳으로 출정을 하겠나이까?
병법 중에 적(敵)은 자신들의 본진으로 그들의 적을 절대 끌여들이 지 않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 온데 지금 거란은 그들의 심장부를 완전히 비워놓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소장이 어찌ㆍㆍ
조장군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병조가 원하는 종전과 소장이 원하는 종전은 의미가 다르옵니다.
병조의 종전은 이 나라 고려의 패전의 종전이고 소장의 종전은 적 거란이 이 나라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승전의 종전이옵니다.
-그럼 왜 그런 사실을 병조에게 알리지 않으셨소?
예조시랑이 물었다.
-상장군은 전투에 익숙하지도, 병법에 밝지도 않은 그저 정치군인 이옵니다.
그것은 소장이 대장군이 되기 오래전부터 그 자의 행적을 보고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소장은 정치군인의 한낮 새털 같은 명분을 위해 제 자식과도 같은 군사들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을 수는 없사옵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저의 목이 달아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사옵니다.
대장군 조혁종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대장군의 말은 결연하고 단호하였다.
예조는 상장군과 대장군의 위치가 바뀌었으면 이 나라 고려의 운명이 오늘과 같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분통이 일었다.
-내 대장군의 뜻을 이미 폐하께 아뢰었으니 지금 몸과 마음이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시구려.
힘들 터이니 더는 말씀하지 마시요.
내 이만 돌아가리다.
예조가 돌아서자 대장군 조혁종이 눈을 감았다.
간수가 닫는 철문 소리가 온 천지를 누르듯 크고 무겁게 들렸다.
... 폐하께서는 대장군의 무고함을 이미 알고 계실 터
그런데 문제는 폐하의 어심(御心)이 대장군 조혁종을 못마땅히 여기시는 데 있어.
예조시랑은 이미 왕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사실 대장군 조혁종은 거란군에게는 지옥의 차사 같은 존재였으나 그의 군사들과 백성을 대할 때는 어미가 자식을 대하듯 해왔다.
군사들과 백성들은 그런 대장군을 어버이 대하듯 하였고 그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았다.
왕은 그런 대장군이 내심 두렵고 거부감이 들었다.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보다 대장군을 더 따른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고 대장군 휘하에 수만의 군사가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대장군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역모를 꿰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조시랑이 무시(無時)로 왕에게 그리 고하였고 왕은 그의 말을 믿었다.
병조시랑이 천거한 상장군은 문(文)은 물론 무(武)의 깊이도 얕고 약했다.
그의 역할은 대장군 조혁종의 동태를 살피고 그가 백성들에게 깊이 들어가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상장군은 병조시랑의 명(命)을 목숨처럼 여기고 따랐다.
병조시랑의 명(命) 중 많은 것이 왕의 입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내 지난날 두 대신의 뜻을 헤아리고 짚어 보았다.
두 대신의 의견 모두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이 난중이라 짐은 예조시랑의 뜻을 헤아리기로 하였다.
병조는 더 이상 짐의 결정에 토 달지 말라.
왕이 다음 날 예조와 병조를 불러 그렇게 말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예조시랑이 더 낮게 엎드렸다.
-대신 대장군은 방면되는 그 길로 비어있어 허술한 적 거란의 본진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 지금의 전란을 하루속히 마무리 지으라 이르시오.
이는 황명이요.
왕은 말을 마치자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을 나갔다.
자신의 간언을 더는 듣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예조시랑은 알고 있었다.
왕이 나가자 병조시랑의 입가에 묘한 웃음기가 도는 것을 예조시랑이 보았다.
-대장군!
내 어찌어찌하여 당장의 그대 목숨은 구하였소.
예조시랑은 조혁종의 목에 걸린 칼을 풀어주며 조금 전 왕의 말을 전하였다.
대장군 조혁종은 예조시랑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누어 갖지 않는다.
조혁종은 어렸을 적 글을 가르친 스승에게 몇 번 그 말을 들었으나 그때는 스승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너는 이길로 거란의 본진으로 가라.
가서 칸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자를 알아내어 이 서신을 전하라.
서신의 봉투에 서신을 전하는 자는 고려의 사신이라 적어 놓았으니 그들이 네 목숨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혁종은 감옥에서 방면되고 사흘뒤에 병영에서 군사 하나를 은밀히 불러 말했다.
불려 온 군사는 몸이 날래고 말을 잘 다루는 병사였다.
대장군의 서신을 전한 군사는 거란의 칸 앞에 허리를 숙이고 고개도 숙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본 거란의 칸은 눈매가 호랑이와 같이 매섭고 모자를 벗은 머리는 수사자의 갈퀴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손은 고려인들보다 두 배는 커 보였고 배가 나와 의자에 앉은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그래
그대가 이런 생각을 하였단 말이지?
하하하~~
서신을 읽은 칸이 고개를 뒤로 젖혀 웃었다.
웃을 때마다 복숭아만 한 목젖이 위아래로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너는 이 길로 돌아가 그대 대장군에게 이 서신을 전하라.
그리고 고려에 그대 같은 인걸이 있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는 짐의 말도 같이 전하라.
칸이 웃음기를 거두고 고려군사에게 말했다.
군사가 말을 달려 고려 본진으로 들어가 대장군 조혁종에게 글로 쓴 칸의 서신과 말을 같이 전했다.
다음 날
대장군 조혁종이 휘하의 장수들을 한 자리로 모았다.
그는 모인 장수 중 나이가 제일 많고 전투경험이 가장 많은 장수에게 이 시간 이후부터 자신의 직무를 대신하여 행하라 명하였다.
그날 늦은 밤
명을 받은 늙은 장수를 따로 불러 조혁종이 반시진 긴 이야기를 하였다.
둘의 밀담을 다른 병사들은 알지 못하였다.
그날 밤
조혁종은 잠들지 못하였다.
진영에서 멀지 않은 낮은 산에서 부엉이가 쌍으로 울었다.
조혁종은 깊은 밤
진영에 작은 촛불하나를 켜고 예조시랑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를 쓰면서 지금 쓰는 편지가 자신의 생에서 마지막 쓰는 편지가 될 것이라 직감하였다.
- 대감
대감께서 이 서신을 읽으실 때쯤이면 소장은 아마 불귀의 객이 되어 이승의 다리를 건넜을 것입니다.
그동안 소장을 많이 아끼고 보살펴 주신 대감의 은혜 제가 설사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될지언정 잊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대감께서 소장에게 폐하를 말씀하실 때 차마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못하시고 본질의 중심에서 맴돌 듯하셨다는 것은 소장이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장의 존재를 필요악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소장은 익히 알고 있었나이다.
해서 소장이 수일 전
고려의 칸에게 서신을 보내 소장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이제 이 전란은 우리 고려에게나 적 거란에게나 더는 지속할 명분이 하나 없는 그저 소모전일 뿐이옵니다.
제 조국 고려는 적이 이 땅에 주둔하는 한 계속 피폐해질 것이고 적 또한 낯선 이국에 계속 주둔하기 힘들 것입니다.
소장이 거란의 칸에게 서로에게 맞는 명분을 주고받음으로 지금의 이 전란을 종식시키자 제안하였습니다.
소장이 그리 말하였사옵니다.
대감은 그리 아시옵고 늘 강령하시옵소서.
전란은 멈추었다.
급작스런 종전이었다.
거란군이 고려의 땅에서 철군하였다.
예조시랑은 급작스레 전란이 멈춘 연유를 보름 후에 알 수 있었다.
조혁종의 명을 받고 그의 직을 대무(代務)하였던 늙은 장수의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예조시랑 앞에서 말하는 노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대감
대장군께서는 보름 전 수행병사 둘만을 대동하고 적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적 진영으로 들어갔던 대장군은 검(劍)은커녕 갑옷조차 입지 않지 않은 완전 비무장 차림이셨습니다.
적 진영이 보이자 대동한 두 병사에게 이 길로 돌아가라 하시고 혈혈단신으로 진영으로 들어갔사옵니다.
대장군이 적진영으로 들어가고 이틀 후 적의 사신이 소장에게 스스로의 철군을 알렸고 다음날부터 실제 철군이 이루어졌사옵니다.
고(告)하는 노장은 두어 번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그래
대장군이 스스로 평상복으로 적의 진영으로 들어간 연유가 무엇이라 하더냐?
예조가 물었다.
-외길이라 다른 방도가 없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대장군이 예조를 보며 말했다.
-외길이라ㆍㆍ
대장군의 길이 무슨 연유로 외길이 되었다 하더냐?
예조가 다시 물었다.
-그것까지는 소장이ㆍㆍ
노장은 대장군 조혁종이 말한 외길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조시랑은 대장군의 외길의 뜻을 알고 있었다.
... 대장군
그대는 어찌 이리 내 마음을 아프게 하오?
왜 스스로를 외길에 가두고 그 길을 따라갔소?
그대가 말한 외길이라는 것이 어차피 이 전란이 끝이 나면 폐하께서 항명의 죄를 물어 그대를 참(斬)할 것이라는 것을 그대가 알았기에 차라리 그대의 목숨을 종전과 바꾸는 그 길이라는 것을 내 알고 있소.
그래도 장군
너무 쉽게 적의 진영으로 그대의 목숨을 던지셨소.
내 심히 마음이 아프고 쓰리오.
대장군
예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란군이 물러가고 열흘 후에 고려 황제 앞으로 서신 한 통이 전달되었다.
거란의 칸이 보낸 서신이었다
-고려의 황제는 읽으시오.
이번에 짐이 직접 군사들을 데리고 그대 나라 고려로 출정하여 전쟁을 벌여 과인의 위력을 보임으로 그대 나라 백성들에게 짐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 이번 전쟁의 큰 전과(戰果)였소.
하나 더 큰 나의 전과는 내 오랑캐인 그대 나라 고려에 그리 큰 그릇의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오.
대장군 조혁종
내 이 자 때문에 이번 징벌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던 차에 이 자가 무장을 해제하고 백의(白衣)로 내 처소에 들렀소.
이 자가 짐에게 말했소.
스스로 나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길 터이니 이번 전란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 달라 청하였소.
조혁종이 나에게 이는 거란국의 칸과 고려국의 대장군 간의 약조가 아닌 대장부와 대장부 간의 약조로 해달라 하였소.
내가 그리 약조하였소.
짐은 그대 나라 대장군 조혁종을 내 나라로 데려가서 크게 쓰려하였소.
그러나 내 바람은 거기까지였소.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조혁종은 이미 내가 크게 쓸 수 없게 되어 있었소.
내 조혁종의 시신을 짐이 주둔하였던 청계사(靑溪寺) 은행나무 옆에 간단히 묻어두고 철군하였소.
고려의 황제는 그의 시신을 잘 거두어 주시오.
거란국 칸의 자격으로 하는 부탁이 아니라 대장부로 하는 부탁이오.
이런 인재를 다스린 그대가 나는 부럽소.
칸의 서신을 읽은 황제는 대장군의 주검을 찾아 성대히 장례를 치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조혁종의 무덤 봉분이 완성되던 날
교지를 내렸다.
-이 시각 이후 그 어떤 누구도 조혁종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라.
이를 어기는 자는 황명으로 엄히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서로 약속을 지킨 두 대장부 사이에서 고려의 황제는 대장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