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워진다.
흔히 어둠을
빛이 사라진 결핍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어둠은
흐트러진 존재를 다시 세우는
고요한 ‘정렬’의 시간이다.
빛이 사물의 겉을 드러낸다면,
어둠은 그 외형을 잠재우고
본질의 뼈대만 남긴다.
깊은 호흡 끝에
몸 안의 공기를 완전히 비워낼 때,
비로소 새로운 숨이 들어오듯.
우리는 어둠 속에서
이름을 내려놓고,
형태를 비우고,
다시 본래로 돌아간다.
그래서 밤이 필요하다.
빛을 끄고, 눈을 감아야
비로소 자신에게 닿을 수 있다.
빛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둠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음(陰)이 있어야 양(陽)이 서듯,
깊은 어둠이 있어야
빛은 방향을 가진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선명해지고,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둘은 서로를 통해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며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