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을 우아하게 물리치는 법

by시트러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건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되지도 않는 무례를 저지른다면, 나는 더 막돼먹은 무례함으로 맞서야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중학교에서 담임을 하며 호되게 인생 수업을 한 나는 얼마 뒤 초등으로 옮겼다. 이전 동료 선생님들의 축복 속에 출근한 첫날. '개학날이니 전담 수업을 안 한다'는 교내 메신저가 왔다. "이게 학교지." 감동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출결 확인도, 학폭 사안도, 점심 지도도 없었다. 대신 제법 큰 업무를 받았지만 나는 이미 대감님 댁에 채용된 마당쇠로 빙의하여 "아이고, 그럼요. 더 하겠습니다. 평소에도 업무 좋아해 왔습니다." 굽신굽신, 신이 났다.


그리고 그 기쁨은 며칠 사이 묘한 불편함 속에서 점점 사그라들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뵙는 남자 선생님이 연구실에 들어왔다. "오, 새로 오신 영어선생님?" 하더니 갑자기 물개 박수를 쳤다.


"와아!"


"와... 아! 감사합니다."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여기는 이런 분위기인가? 했다. 새로 왔으니 메신저니 업무포털 인증서니 다 되는 게 없었다. 이것저것 컴퓨터를 세팅하고 있는데 불쑥 얼굴 앞으로 손이 들어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밖에 없죠?" 음... 초면에요? 이때부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그 선생님은 학년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동료들과의 갈등을 처음 보는 내게 들려주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제 편 안 들어주셔도 됩니다."


그 말은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TMI의 인트로였다. 매일 아침, 점심, 퇴근 시간 전에 연구실로 계속 찾아왔다. 오죽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연구실에 전화해서 "000 선생님 거기 계신가요?" 하고 물으셨다.

"제가 연구실 죽돌이라는 걸 아시는 거죠."


그리고는 며칠 뒤 난데없이, "저 사실은..." 자신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인복이 없어요." 누구와 싸웠고, 누구와 사이가 좋지 않고, 남에게 쉽게 하지 않을 법한 개인사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학교는 영어실이 따로 없어서 피할 곳도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대화는 첫 출근 후 불과 일주일도 되기 전에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 일방적인 친밀감을 쌓았다고 생각했는지 선생님은 슬슬 내게 장난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학년에 간식으로 떡이 나왔다.

"아이, 영어샘 꺼 제가 챙겨뒀죠. 샘은 제 것 왜 안 챙겨줘요?" 감사합니다, 하고 손을 내밀자 줬다 뺐었다 장난을 쳤다. "그냥 선생님 드세요." 했더니 죄송하다며 건네는 척하다 다시 뺏었다. 그러고는 "와아아!" 하며 떡을 먹던 자신의 입안을 보여 주었다.

'오... 정상이 아니시구나?'


다음 주 선생님은 기어코 선을 넘어왔다. 코를 풀고 내 어깨에 닦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문신을 했다며 갑자기 옷자락을 걷어 보여주었다. 나는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과 함께 얼어붙었다.


갑자기 외모 평가까지 이어졌다. 연구실 간식을 더 이상 쳐다도 안 봤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니, 선생님 몸매 정도면 드셔도 되죠!"

"선생님 미모는 인정. 남편분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뭐지? 이런 말을 온라인 게임에서 들어야 하나? '동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예시로 교과서에 실어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웃고 넘긴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웃어넘길 수 없는 목록이 되어 갔다. 도저히 두고 볼 일이 아닌 것 같아, 나도 기록을 시작했다.


가장 심한 일은 최근에 터졌다. 그 선생님은 내 자리에 와서 물건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정면에 서서 파티션 앞으로 고개를 쑥 내리며 "뭐해요? 바빠요?" 그러고는 모니터를 쭉 뒤로 젖혔다. 몇 번이나 그런 장난을 치길래 진심으로 화가 났다. "선생님, 하지 마세요. 아까도 모니터 한쪽이 안 나와서 재부팅했어요."

선생님은 내 눈치를 쓱 본 후 "아니, 이거 뭐 선도 잘 꽂혀 있구먼." 하며 선을 몇 번 흔들어 확인하는 시늉을 하고 멀어졌다.


나는 고민했다.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학교 옮길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순간부터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내가 만만한가.' 물론 나는 좀 만만한 사람이다. 속없이 잘 웃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느니 그 상황을 피해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불편한 내색을 삼키고 웃는 게 슬롯생활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 선생님은 몇 번이나 "선생님, 저 싫죠?", "샘 나 싫어하죠?" 물어보며 내 자리 바로 앞까지 오고는 했다. "오지 마세요."라고 하면 옆으로 와서 "여기는 괜찮아요?", "여기는?" 어디까지 받아주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그런 순간마저도 "싫고 좋고가 어딨습니까." 등등의 말로 무마하고는 했다. 실제로는 '쥐덫이라도 놓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쯤 되니 내가 싫어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 싫어해도 자기가 괜찮은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그 선생님과 싸움이 났다. 싸움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극 i들이 이 정도로 터트린다면 한 천 번쯤 참은 다음이다. 익숙한 머리가 파티션 위로 불쑥 나타났다. 나는 다가올 스트레스에 몸이 먼저 긴장되었다. 여지없이 또 내 모니터를 뒤로 젖혀 흔들기 시작했다. "아, 선생님! 모니터는 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도 놀랐는지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모니터를 기어코 한번 더 뒤로 젖혔다. "아니, 왜? 뭔데? 뭐 보는데요?"


"선생님. 하지 마세요."

"불편합니다."


연구실에 싸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불편을 해소해 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선생님은 민망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알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업무를 보았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선생님이 나갔다.


잠시 뒤, 선생님이 다시 들어왔다. 머리를 장난식으로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했다. 거기에 대고 습관적으로 "괜찮습니다." 하고 말해버린 나 자신이 싫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마당쇠 자아가 먼저 슬롯생활을 했다. "모니터는 건드리지 마세요." 밭일, 아니 수업을 하러 갔다.


다녀오니 선생님이 내게 따졌다. "아니, 왜 메신저를 안 봐요!" 대답할 기운이 없어서 메신저를 열었다. 장문의 정중한 사과가 써져 있었다. 전혀 받아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확인했습니다." 하고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주말 동안 분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장 파티션 연장 가림막과 이어폰을 주문했다. 실전은 역시 장비빨이다.


월요일. 모니터를 흔들고 사과한 뒤, 다른 선생님에게는 '영어선생님한테 혼났다'라고 했단다. 출근하여 조용히 수업 준비를 했다. 그 선생님은 늘 하던 대로 자신의 반도 아닌 연구실로 출근했다. 나는 바로 연구실을 나와버렸다. 또다시 TMI가 시작되는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곧장 한 층 아래로 내려갔다. 친분이 있는 다른 학년 선생님을 붙들었다. "연구실에 있기가 힘든데, 혹시 남는 교실이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사정을 들은 선생님이 놀랐다. "어머, 선생님. 우선 빈 교실이 하나 있으니까 거기서 지내시며 수업하세요."

"어엇? 샘 마침 교감선생님 지나가시네요!"


우리는 바로 교감선생님께 달려갔다. 덕분에 그 자리에서 교실 사용 허락까지 떨어졌다. 나는 당장 필요한 짐만 싸서 연구실을 나왔다. 혹시 내 자리를 기웃거릴까 봐 바카라상 위에 올려둔 바카라도 챙겼다. '무례한 사람에게 우아하게 대처하는 법' 비슷한 제목이었다. 분명 봤을 터였다.


오후에 다시 연구실에 들렀을 때는 선생님은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평소라면 벌써 어제 뭘 먹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몸은 또 어디가 안 좋은지 온갖 사연을 쓰레기통에 투척하듯 쏟아냈을 시간이었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내 자리에서 업무를 보았다. 사실 또 말을 걸고 이상한 시비를 걸까 걱정이 들기는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없었다. 참을 자신이.


결국 말 한마디 없이 앉아만 있던 선생님이 자신의 짐을 우당탕 챙겨 연구실을 나갔다. 학교 문짝이 그리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와중에 새로 들어온 간식은 챙겨 간 게 눈에 띄었다.

"문 살짝~."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싫은 사람도 물리치고 우아함도 챙기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자리를 바꾸는 게 훨씬 빨랐다.


누군가 나대면, 그 모습이 내게 피해를 준다면.

나도 개같이 나대줘야 한다. 그것이 내가 터득한 가장 우아한 대처법이다.


아르르.





* 인물 보호를 위해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일부 세부사항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