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기회의 바람은 스스로
- 제15화 -

좀 번져도 괜찮아, 곧 계절이 올 거야.

by정해남




부채, 기회의 바람은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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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요즘 참 덥지요?


힘겨운 온라인 게임 생활에 남모를 삶의 공부까지,

하루하루 견디느라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요.


세상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맺히는 날도 있겠지요.

그럴 때면 잠시, 부채 하나 꺼내 들어 보아요.


나도 마음이 어수선하게 흔들리는 날이면

울긋불긋 수채화 물감이 스민 부채를 가만히 펼쳐 봅니다.


꽃잎처럼 번진 물감 위로 손목을 가볍게 흔들면,

잠들어 있던 보이지 않던 바람이 깨어나지요.

그 바람은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를 식히고

엉킨 생각 사이로 고요한 길을 내어,

마음 한쪽에 푸른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참 신기하지요.

바람이란 처음부터 멀리서 불어오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요.

내 손끝의 작은 움직임이 바람의 서막이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세상이 뜨겁고 앞길이 안개처럼 흐려질 때,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우리의 계절은 언제쯤 시작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럴 때면

《해리 포터》를 쓴 J. K. 롤링의 가난했던 날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홀로 어린 딸을 보듬으며 힘겨운 시절을 견뎌야 했던 그녀.

차가운 거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펜 끝을 놓지 않았지요.

카페 한구석에서

한 줄의 문장을 적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며

자신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조금씩 밀어냈습니다.

그 작은 손끝의 파동이 마침내 한 권의 바카라이 되고,

국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다채로운 숲을 이루었지요.

그녀 역시 처음부터 거대한 태풍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오늘 마주한 한 문장을 써 내려갔고,

내일 이어 쓸 이야기를 놓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러는 사이 그녀의 숨결은 세상의 바람과 만났고,

어느새 커다란 이야기의 숲을 피워 냈습니다.


그대,

그리스 신화에는 원하는 것을 끝없이 내어놓는 ‘풍요의 뿔’이 있답니다.

나는 가끔 그 신비로운 뿔을 생각해요.

풍요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에도

서가의 한 장을 정성스레 넘기는 손길,

풀린 신발 끈을 고쳐 매며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

어제 멈추었던 자리에서 오늘 다시 내딛는 작은 용기.

그런 움직임들이 모여

언젠가 풍요의 문을 두드리는 우리만의 바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세상에는 기회가 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문 앞에서 서성여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남들은 앞서가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아

조급함이 밀려오는 날도 있겠지요.


머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칼을 의식하며 불안해했다는

‘다모클레스’의 신화처럼, 놓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때로 우리를 더 위태롭게 만듭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초조함,

사람들은 이를 '포모(FOMO)'라 부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대,

타인의 바람에 마음을 빼앗기느라

정작 그대 손에 쥐어진 부채를 내려놓지는 말아요.

누군가의 바람은 그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듯,

그대의 시원한 바람은 오롯이 그대의 손끝에서 시작될 테니까요.


오늘 당장 거창한 열매를 맺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바카라장의 한 구절을 음미하고,

미뤄 둔 일에 살며시 손을 대며,

마음속 계획을 가벼운 첫걸음으로 옮겨 보는 거예요.

부채가 처음부터 바람을 안고 있지 않았듯,

우리의 하루 역시 처음부터 기회를 감추고 있지는 않을 테지요.


다만 내 손이 움직일 때 공기에 결이 생기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닫힌 길목에도 기분 좋은 틈새가 벌어집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고 기회가 깃드는 법이지요.


그러니 그대,

그대의 손으로 그대만의 부채를 직접 펼쳐 보세요.

오늘의 작은 날갯짓이 내일의 기회가 되고 쌓여

그대 삶을 풍요로운 계절로 물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속도로 천천히.

나는 그대가 스스로의 계절을 믿으며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 걸음 끝에서 마침내

가장 그대 다운 살진 기회의 풍요를 만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마음돌보기-

오늘, 나의 작은 손끝에서

조용히 일으켜 보고 싶은 나만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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