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져도 괜찮아, 계절이 올 거야.
연필, 깎일수록 깊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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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실 창가에서 붓과 연필을 잡은 지도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내 손끝을 거쳐 간 연필이 참으로 많았지요.
처음 구입했을 땐 길고 매끄럽던 연필도,
화폭 위를 부지런히 오가다 보면 조금씩 닳고 짧아져
어느새 손에 쥐기조차 어려운 몽당연필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나는
2센티미터도 채 남지 않은 그 조그만 연필을 차마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사각사각, 내 손끝의 온기를 나누며
많은 밑그림을 함께 그려온 시간이
그 작은 몸뚱이에 온전히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아진 몽당연필을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있노라면,
연필 한 자루에서도 우리네 삶의 기나긴 여정을 읽게 됩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참 많이 깎이고 닳아가지 않습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 세파에 마음이 깎이고,
거듭되는 시련 앞에 자신감이 닳아지며,
때로는 까닭 없이 상처받아 한없이 작아지는 날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깎였다는 것은
결코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만큼 성실하게 세상을 건너왔고,
그만큼 내 삶의 솔직한 흔적을
화폭에 남겼다는 맑은 증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햇살이 뉘엿해지는 창가에 서서 연필을 깎을 때면,
연필심이 드러나는 그 아스라한 순간마다 지나온 시간들이 겹쳐 보입니다.
화폭 위에 처음 그었던 선은 때로는 비뚤어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뜻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지우개로 문지르고 다시 그어가도
연필은 제 몸을 깎아내어 비로소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지요.
인생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이 짧아진 몽당연필이라 할지라도,
그 짧은 몸통 안에는 수많은 망설임과
다시 시작했던 용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으니까요.
몽당연필
/ 정해남
길었던 날들은 지나고
손가락 마디보다 짧아진 몸으로
조용히 화지에 누운 그대
여전히 사각사각,
번짐을 견뎌 온 세월소리가
그 속에 숨어 있구나.
깎여나간 것은 길이였으나
깊어진 것은 그대의 온기
손끝에 걸린 몸짓으로
그대는 여전히
동녘 햇살을 맞이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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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삶이 참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의 단정한 선으로 완성되는 그림은 세상에 없습니다.
긋고 다시 그어가면서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몽당연필이 되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턱없이 작은 몸이지만,
작은 웅덩이에 솟아 나온 맑은 샘물을 마시듯,
그대와 나는 여전히 그 작은 연필로
거대한 코끼리 발자국 같은 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작아진 그 속에서도
그만큼 깊은 세월의 켜켜이 묵혀진 시간과 정성스러운 흔적이 숨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남들의 글씨나 그림을
내 것과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고 해서 잘못된 길이 아니고,
남보다 조금 번졌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느 때늦은 가을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대만의 그림이,
진달래와 개나리가 흩날리던 샛강처럼
가을 달빛에 흔들리는 은빛 갈대숲처럼
아름다운 수채화로 완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손가락 마디에 겨우 걸리는
몽당연필을 다시 고쳐 쥐어 봅니다.
좀 번져도 괜찮습니다.
곧 그대의 좋은 계절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