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침묵이 품어 낸 날개
- 제10화 -

번져도 괜찮아, 계절이 올 거야.

by정해남




매미, 침묵이 품어 낸 날개

- 제10화 -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온 세상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동네 공원 그늘에 잠시 머무는데,

허공을 가르며 매미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더군요.


오늘은 칠월 칠석이 지나고

어느덧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드높아진 하늘 사이로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슬며시 깃들기 시작하네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한철을 저토록 뜨겁게 울어 대는 매미들은

이 여름을 어디서 어떻게 기다려 왔을까요.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아득한 땅속에서

수많은 계절을 견디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올라온 그 울음.

그 소리는 결코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침묵이 품어 낸 고요한 기도의 결실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거대한 산조차 집어삼켜 버릴 듯한 인고의 포효였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가끔 그대에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곤 합니다.

"왜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느냐"고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대는 묵묵히 날개를 활짝 벼르고 있었음을.

언젠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자신만의 목소리를 조용히 다듬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이러한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시 한 자락을 띄워 선물합니다.


매미 / 정해남


저 아래 깊은 어둠 속에서

인고의 뿌리를 키울 때

세상은 나를 아예 잊었습니다


이제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풍류나 즐기는 줄로만 압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그저 돌인 줄로만 압니다


그러나 나는


한없는 눈물로

날개를 채우며

무수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 날

마침내 품어 낸

빨갛게 불태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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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gh tide will surely come. On that day, I will set sail out to the sea. 그림 : 정해남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어느 노인의 집 벽에 걸린 초라한 나룻배 그림 하나.

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그 작은 배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하네요.


‘반드시 밀물은 온다.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참으로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리는 고요한 문장입니다.


살다 보면 남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데,

나만 홀로 갯벌 위에 멈춰 선 듯한 쓸쓸함이 찾아오곤 하지요.

노가 부러지도록 진땀으로,

아무리 애써 저어 바다로 나가려고 해도

물길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할 때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인생은 한 점 수채화 같아서,

지금의 어둡고 흐릿한 번짐조차

언젠가 '그대'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 가는 근사한 바탕색이 되어 줄 것입니다.


썰물이 지나면 반드시 차오르는 밀물이 있듯이,

매미가 허물을 벗고 하늘로 오르듯,

그대 역시 그대만의 노래로 세상을 날을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대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땅속에서의 깊은 견딤이 있었기에

매미가 마침내 제 계절을 만났듯,

아직 오지 않았을 뿐 '그대라는 계절'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차오르고 있으니까요.


어둠을 견뎌 낸 날개에

곧 다가올 그대의 계절,

맑은 햇살이 드는 그날을 그리며,

오늘도 마음 모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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