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번져도 괜찮아. 곧 계절이 올 거야.
-------------------------------
벽돌, 아픔으로 기둥을
- 제9화-
-------------------------------
그대,
살다 보면 잘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뜻하지 않은 시련에 덜컥 발등을 찍히곤 하지요.
억울한 오해의 그늘에 갇혀 막막해지기도 하고,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담장이 한순간에 무너지듯
오랜 노력이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질 때도 있습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다리가 풀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는 날처럼요.
나에게도 마치
날아온 벽돌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환갑이 다 되어서야 눈물겹게 대학원 문을 나서며,
내가 얻은 작은 지혜를 세상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손을 잡고,
서로의 삶을 푸르게 가꿔보자는 소박한 모임을 만들었지요.
처음에는 다들 씨앗의 마음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흐르며 순수했던 처음의 빛깔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습니다.
타인을 향한 배려보다는 새싹이 미처 자라기도 전에
달콤한 열매에만 눈이 어두워졌고,
정직하게 흘려야 할 땀방울 대신 사욕과 불평이 잡목처럼 무성해졌지요.
나는 우리가 처음 약속했던
곧은 원칙의 길을 가자고 가만히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겠다는 이별의 통보였습니다.
나는 구질구질하게 단 한마디 변명도 내놓지 않은 채 묵묵히 돌아섰던 그날,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서 양파보다 더 매운 진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허망한 수포가 아니었습니다.
젖은 마음 밑바닥에서
나는 오히려 더 잘 타오르는 촛불의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진짜 내 삶을 써 내려가자.’ 하고 말이지요.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떠나간 이들이 남긴 자리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편한 그늘만 찾아다니며 남의 우산 속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비틀거리며 근근이 지탱하고 있지만,
그때 끝까지 진심을 나누어준 분들은
이제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뿌리를 내려
어느새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 새벽 4시,
세상이 가장 깊고 고요한 숨을 쉬는 시간입니다.
나는 오늘도 정갈하게 옷을 입고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조용히 등불을 밝혀 바카라을 펼치고,
시를 짓고, 붓에 계절을 담아 그림을 그립니다.
아픔이 찾아왔을 때 잠시 휘청였을지언정 결코 주저앉지 않았기에,
나는 배움의 끝에서 시인과 화가로 다시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 선율에 마음을 얹고,
'바카라 500권 읽기와 10권 쓰기'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향해 걸으며
캘리그래피와 사진으로 여전히 봄날 같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때린 벽돌이 있었기에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어여쁜 꽃들을 피워 올릴 수 있었던 셈이지요.
모진 날들을 지나며 마음을 보듬듯
적어 내렸던 시 한 구절을 여기에 놓아 봅니다.
벽돌 / 정해남
갑자기 날아와
온몸에 깊게 달라붙은 땅벌
아주 무섭지요
많이 무겁고요
날줄과 씨줄로 엮어낸
땀과 눈물
시간이 가면
별것 아니에요
멀지 않아 곧
고소한 참기름에
선홍빛 육회비빔밥 상(賞)
승리의 꽃다발과 함께
듬뿍 받을 거예요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일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는 혹독한 시련을 맞았었지요.
세상이 던진 거대한 벽돌에 맞았던 셈입니다.
훗날 그는 그 아픈 경험이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새로운 계절을 열어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벽돌에 맞았던 슬픔에 주저앉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든든한 바닥으로 삼은 셈이지요.
그대여,
지금 삶이 아프고 비틀거린다고 해서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다는 것은,
희망이 기다리는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대에게 던져진 아픈 돌들을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주워 모아 보셔요.
어느새 그 돌들이 모여
세상의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대만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 줄 테니 말입니다.
시련은 때로 축복이라는 선물을 안고,
아픈 가면을 쓴 채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참 외롭고 다스리기 힘든 시간이었지요.
지친 그대의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 봅니다.
그대의 마음 안에는 호수 같은 잔잔함과,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깊은 힘이 함께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곧 다가올 그대의 계절에는
행복이라는 꽃들이 곧 어여쁘게 만발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 걸음에 따스한 손뼉을 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