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져도 괜찮아, 계절이 올 거야.
침(針), 막힌 삶을 뚫다
그대.
내가 요즘 모니터 불빛 아래 밤낮없이 글을 다듬다 보니,
눈도 밤안개처럼 침침하고
목과 어깨가 돌처럼 굳어버렸어요.
돌아보니 몇 년 전 치열하게 원고를 고치던 날에도,
결국 병원을 찾아 침을 맞았었지요.
막힌 기운을 따끔하게 뚫어내던 그 침 끝에서
이런 시 한 구절이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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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찾아 / 정해남
어둠에 갇히지 않은 뿌리 없고
번져 얼룩 없는 잎 없나니
꽃인들 다를쏘냐
활짝 핀 꽃들도 세월 따라
막힌 혈이 굳어간다
밤새 글을 다듬다가
목과 어깨를 짓누른
어둠의 터널
검은 피가 나온다
미처 몰랐던 지난날의 번짐들
혈이여, 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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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끝이 살에 닿을 때는 움찔할 만큼 아리지만,
잠시 기도하듯 숨을 고르면
막혀 있던 기운이 온몸으로 번지며
금세 굳었던 몸이 사르르
봄날 따스한 햇살에 눈 녹듯 하지요.
그 기운이 잔잔하게 퍼져나갈 때면,
잠시 내 마음의 속살도 들여다봅니다.
몸이 이토록 굳었던 것은
비단 밤샘 작업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꽉 엉켜있던 수많은 욕심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편안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 조바심들이
내 안의 숨통을 꽉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도
이 침 한 방과 참 많이 닮아있어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마음의 열망과 팍팍한 현실이 부딪쳐,
어느 순간 삶 전체가 턱 막힌 듯 답답해지지요.
애쓴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고,
정성껏 내민 손이 허망하게 밀려날 때처럼 말입니다.
몸의 혈이 막히듯,
때로는 사람의 길과
마음의 물길도 그렇게 굳어버리는 것인가 봅니다.
서산에 뉘엿뉘엿, 70 가까운 인생
결코 적지 않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트럭 한 대를 끌고 다니며
천 번이 넘는 거절을 견뎌낸 끝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새긴
미국, KFC의 커널 샌더스처럼 말입니다.
그 역시 거절의 문턱을 넘어설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치며 답답했을까요.
어쩌면 그가 견뎌낸 수많은 거절과 응어리야말로,
막힌 삶의 실패를 털어내고
다시 바르게 흐르게 한
세상의 따끔한 침 한 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대,
지금 삶의 어느 한 길목에서 마음이 막혀 답답하지 않나요?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거절이나 아픈 실패를 만나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침이 피부를 찌르는 건 상처를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꽉 막힌 통로를 열어 숨통을 트여주기 위함이니까요.
그동안 참 많이도 참고, 묵묵히 버텨왔잖아요.
이제 잠시 어깨의 힘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좀 바라보세요.
오늘도 그대를 파고드는 아픈 침은
청량한 하늘처럼
내일 그대가 걸어갈 길을
가장 솔직하고 당당하게 열어줄 거예요.
바그너처럼 웅장하게
모차르트처럼 잔잔하게
개나리 핀 실개천
돌돌돌 물 흐르듯
구석구석 통하라고.
그대의 좋은 계절이 오는 것을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