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
-제5화 -

번져도 괜찮아, 계절이 올 거야.

by정해남



금고, 진짜 큰 부자는?

=== 제5화 ===

그대,


이미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부자들도 부러워하는 왕부자랍니다.


넓은 세상에는 돈 많은 부자도 참 많지만,

나만큼 마음이 든든한 부자는 드물 것이기에 말이죠.

우리 집 안방에는 큼직한 금고가 하나 있습니다.

인감도장과 권리증, 작은 금반지처럼

잃어버릴까 봐 항상 가슴 졸이는 소중한 물건들을 보관하려고 마련한 것이지요.


예전에 이사를 여러 번 다니던 시절에는

어느 틈에 흘려버렸는지 몰라 애를 태우거나 잃어버린 물건도 있었는데,

금고 하나 들여놓고 나니 이제

듬직한 지킴이를 곁에 둔 것처럼

마음이 어찌나 든든하던지요.


금고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가슴이 콩콩거리지 않나요?

단단한 철문을 스르륵 열면

무언가 귀한 것이 나올 것만 같은 기대가 피어나곤 하지요.


하지만 나의 금고는 돈이나 집문서만 보관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번진 땀방울이 빛나는 보물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답니다.


살다 보면 남들은 저만치 봄날처럼 달려가는 것 같고,

나만 오도카니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답답하고 쓸쓸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이럴 때는 가만히 마음의 금고를 살짝 열어봅니다.

----


금고를 열다

/ 정해남


파르르 한 떨림으로

금고를 열어보니

돈도 금도 아니었네


약속을 지켜 온

성실한 시간이 있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끈기의 발자국이 있었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선 용기가 있었고

나를 귀하게 여긴

의연한 자존감이 웃고 있었네


세상은 이것들을

든든한 신뢰라 불러요


----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자산은

통통하게 잘 익은

'신뢰'라는 살진 열매입니다.


인생을 앞마당 꽃밭처럼

정성스럽게 가꿔온 워런 버핏 역시

가장 큰 자산에게 '신뢰'라는 이름표를 달아 줬다지요.


신뢰는 통장에 숫자로 선명하게 찍혀 나오지는 않지만,

마음의 곳간에 쌀가마처럼 차곡차곡 쌓여

그 어떤 금빛보다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을 발휘하지요.


나는 문득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대 역시 이미

이런 보물들을 가득 모아 놓은

참으로 따스한 부자가 아닌가 하고요.


그러니 살다가

조금 번지고 넘어지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겨도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가만히 마음속 금고를 열어보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설 힘이 언제나

그 안에서 그대의 계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그대답게,

폼 나고 당당하게 걸어가기를

두 손 모아 다정하게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펭귄, 그대 닮은 나 - 제4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