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뽀송하게 다시 서는 마음
- 제2화 -

번져도 괜찮아, 인생은 수채화.

by정해남




빨래, 뽀송하게 다시 서는 마음

========= 제2화



그대,


나는 아내가 외출해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저는 종종 정지에서 설구지를 하고,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빨레를 갠답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남자가 정지에 들어가거나 빨레를 개면

사내 체면을 잃는다고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남자가 부엌일을 하는 것조차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내 어머니는

음식도, 바느질도, 솜씨가 뛰어나셨고

동네에서 드물게 글을 깨우치신 분이셨어요.


하지만 시대가 그러했던 만큼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시퍼렇게 날선 도끼 날처럼

꽤 엄격하게 여기셨지요.


그래도 오늘은 문득

어머니가 쓰시던 정지, 설구지, 빨레라는 옛말을

입안에 가만히 굴려 보아요.

낯선 듯하면서도 정겨운 그 말들 속에서

그 시절의 따뜻한 화로 같은 삶의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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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머니께서는

빨래도 너무 세게 주무르면 옷감이 상하고,

대충 빨면 냄새가 남는다고 하셨어요.


살아보니 삶도 꼭 그렇더라고요.

너무 애쓰면 마음이 닳고,

편안함만 좇으면 꿈은 오뉴월 긴 장마때처럼 눅눅해져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음을 말려 줄 햇볕이 필요한가 봐요.


젖은 빨래를 억지로 펴려고만 하면

오히려 옷감이 상할 수 있듯이

젖고 구겨진 마음도

힘만으로는 쉽게 펴지지 않아요.


시간이 필요하고

따뜻한 햇살이 필요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기다림이 필요해요.


헬렌 켈러를 떠올려 보세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어린 헬렌에게

세상은 너무나 캄캄했을 거예요.


그때 헬렌에게 햇살이 되어 준 사람이

앤 설리번 선생님이었답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사랑과 인내는

젖어 있던 헬렌의 마음을 천천히 말려 주었고

구겨진 꿈을 하나씩 펴 주었지요.


마침내 헬렌은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배웠고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햇살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마음이 젖어 있는 날에는

당장 다 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겠지요.


비를 맞은 빨래가 햇볕을 기다리듯

우리 마음에도 마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빨래 / 정해남


나도 한때는

검게 번진 얼룩을

가득 안고 살았지


뒤엉킨 몸

흘러가 버린 시간들


구겨진 눈물로

몇 번이나 덥석 주저앉았지


이제, 놓고 싶지 않은 햇살

계절을 기다리며

다시 포근히 안기고 싶다


- --

삶이 너무 빠르게 돌아갈 때는

잠시 멈추어도 괜찮아요.

빨래가 햇볕과 바람을 만나야 뽀송하게 마르듯

구겨진 마음도

시간과 사랑을 만나야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혹시 지금

그대의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햇살은

젖은 빨래를 외면하지 않으니까요.

보송보송 마를 시간이 오고

다시 일어설 날도 찾아올 테니까요.


그럴 때는 잠시 고개를 들어

햇살을 바라보아도 좋겠어요.

오늘의 젖은 마음도

고운 햇살을 아마 오래도록 놓고 싶지 않을 거예요.


Keep your face to the sunshine and you cannot see the shadow.

It's what the sunflowers do.

햇살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그림자는 보이지 않을 거예요.

해바라기가 그렇게 하듯이요. — 헬렌 켈러에 관한 글 -



-마음돌보기-

지금 내 마음에

햇볕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어디일까요.

살포시 놓아 보세요. 곧 고슬고슬 마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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