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백기를 흔드는 용기

좀 번져도 괜찮아 ⑨

by정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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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계절을 기다리는 아들딸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건네는 인생 편지 79편 중에서.




깃발, 백기를 흔드는 용기



아들아, 딸아,


너희들 가슴 한복판에 세운 깃발은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닻이 되어줄 거란다.


살다 보면

실패의 바람에 깃발이 요동칠 때도 있겠지.

하지만 그 흔들림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방향을 찾으려는

나침반의 몸짓이라는 걸 잊지 마렴.


아빠도 그런 날이 있었단다.

계약을 앞두고

이웃 동료 중개사와 감정이 크게 어긋난 적이 있었지.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고,

상대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단다.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계약은 깨지고 말았어.

솔직히 말하면

아빠도 먼저 찾아가고 싶지 않았단다.

자존심이 상했고 억울한 마음도 있었거든.


하지만 며칠 뒤

아빠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 동네 과일가게 아주머니께 슬쩍 물어

그가 좋아한다는 딸기를 한가득 사 들고 그를 찾아갔단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내가 완전히 잘못한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계약 성사에만 너무 마음이 쏠린 나머지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아빠가 먼저 말했지.

“미안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내 생애 가장 무거운 깃발이었다면

가장 가벼워진 발걸음이었단다.


그날 이후 우리는 진심으로 소통했고

깨졌던 계약도 함께하여 다시 성사시킬 수 있었단다.

아빠가

먼저 흔든 백기 하나가

더 큰 깃발이 된 거지.


아빠가 백기를 흔들 수 있었던 건

사실 더 오래전부터 배운 것이란다.


아빠가 철없던 시절, 뜨거운 여름날

담배밭에서 일하시다가 쓰러지신

너희 할아버지가 떠오르곤 해서다.


지금까지 가장 깊이 생각되는 것은

거창한 유산도,

화려한 훈장도 아니었어.


짙은 갈색 담배진과 노란 땀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구멍 난 메리야스였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메리야스는 마치

오랜 전쟁터에서 홀로 살아 돌아온 병사의

찢어진 깃발처럼

지금도

너희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눈에 선하단다.


그 깃발은

남을 이긴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평생 땀과 눈물로 자신을 낮추며 살았던

한 가장의 아버지란 깃발이었어.


그래서 아빠는 알게 되었단다.

세상은 승리의 깃발만 흔들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낮춰

백기를 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건 항복이 아니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 같아도

오히려 마음을 더 크게 만들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길이란다.


진심 어린 사과와

겸손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용기이지.


백기를 드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사람을 얻는 사람이고,

더 큰 관계를 얻는 사람이란다.


자존심보다 사람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

그것이 결국

너희를 더 멀리 데려다줄 거야.


아빠는 언제나

너희를 믿는다.

파이팅!


Raise the white flag. It takes more courage.

백기를 들어라. 그게 더 큰 용기란다.



------------- 생 각 하 기 -------------

Q1. 화해를 위해 먼저 백기를 든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         )

Q2. 내 가슴에 세워진 깃발은 어떤 깃발인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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