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엄마가 수상하다

좀 번져도 괜찮아 ⑧

by정해남

제 계절을 기다리는 아들딸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건네는 인생편지 79편 중에서.



너희 엄마가 수상하다



sticker sticker


살다 보면 가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수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


요즘 아빠가 딱 그랬어.

아무래도 너희 엄마가 수상하다고 말이다.


연애할 땐

내가 음치 박치는 물론 몸치까지 인데도


그저 좋다고,

잘한다고,

마냥 손뼉 치며 웃어주더니


요즘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단다.


결정적으로 사건이 터진 건

금식까지 하며

회전근개파열로 어깨 시술을 앞둔 날이었어.


제수씨 친정아버지 부고가 왔단다.

몇 달 전 안사돈 장례식에도 다녀왔기에

이번만큼은 곁에 있어주길 바랐는데

너희 엄마는

또 화순으로 문상을 떠났지.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혼자 입원할 짐을 챙겨 가는데

하필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더구나.


우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몹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단다.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나?' 싶었지.


그런데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단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온 너희 엄마가

혀 짧은 코맹맹이 소리로


"아잇쿠웅~

우리 은총 띠 잘 잇 떠 떠 영?

마닝 보고 싶었어 영~"

하면서 덥석 안아주고

뽀뽀까지 해주는 게 아니겠니.


그러면서

밥도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고,

세상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게 아빠가 아니라

바로 강아지 은총이였단다.


그제야 알았어.

아내가 수상했던 이유를.

수상한 상대가

사람도 아니고 강아지였던 거야.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나도 미안한 일이 있었단다.


어느 날

우유 배달 아주머니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 나가 보니

집이 헷갈린다면서 나에게 물었단다.


"분홍 운동화 신고

머리 길고 검정 옷 입고 나가시는 분,

사모님 맞나요?"


그래서 아빠가 되물었지.


"어? 우리 집사람이 그렇던가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나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남편 맞으셔요?" 하는 거야.


너희 엄마가 머리에 힘주고 외출할 때와

그냥 슬리퍼 질질 끌고

편의점 갈 때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빠는

너희 엄마가 무슨 운동화를 신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살았던 거야.


그 순간 깨달았단다.

나는 사랑받기만 원했지

정작 너희 엄마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처음 나를 향하던 사랑이

너희들에게 옮겼고,


너희들이 장성하여 떠나니

이제는 은총이에게로 번진 거야.


그런데

엄마의 사랑만 번진 게 아니었더구나.


아빠의 사랑도 엄마의 사랑처럼

너희들에게로,

이웃들에게로,

독자들에게로 번져가고 있었던 거야.


사랑은 꼭

말로만 증명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밥 한 끼 챙겨주는 일이고,

때로는

물그릇을 채워주는 일이고,

때로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일이고 하단다.


그러니 혹시

너희들도 *엄빠가

예전 같지 않다고 서운해하지 말렴.


결국 사랑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번지는 것이란다.


그래도 아빠는


지금도 가끔은

달빛 같던 그 옛 시절이

몹시 그립긴 하구나.


* 엄빠 - 엄마 아빠


----- 생 각 하 기 -----

Q1. 요즘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 )

Q2. 사랑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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