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은 없다

한반도 경계의 민낯

by다소느림

2026년 9월 21일 오전 10시 50분,

파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두 번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 남쪽 50~100m로 보도됐다.


18명


현장에는 18명이 있었다.

합동참모본부가 23일 공개한 초기 진술에 따르면 간부 15명과 병사 3명이다.


그들의 임무는 길을 내는 것이었다.

합참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인근의 지형 변화를 식별하고 유엔사에 현장조사를 요청했다.

조사는 다음 주 초로 잡혀 있었다.

부대는 조사단이 들어갈 새 수색로를 뚫고 있었다.

기존 길이 아니라 좌표 하나에 의지해 군사분계선 쪽으로 접근하는 작전이었다.


사고는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일어났다.

대열 맨 앞의 공병 중사가 먼저 폭발로 쓰러졌다.

수색대대장인 중령이 부상자를 살피고 안전조치를 하려고 다가가던 중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대대장은 발목이 절단됐다.

중상자는 두 명,

경상자는 한 명이다.


작전 병력은 지뢰탐지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방호복과 지뢰덧신도 착용한 상태였다.

합참은 그 덕분에 최악의 피해는 면했다고 설명했다.


중상자 두 명은 유엔사 협조로 DMZ 안에 들어온 의무후송전용헬기로 국군수도병원에 옮겨졌다.


사고 현장에는 성인 허리 높이까지 수풀이 자라 있었다.

감시장비로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사고 순간을 찍은 영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은 폭발 횟수와 지뢰 종류를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440m와 50m


같은 장면이 11년 전에 있었다.


2015년 8월 4일, 같은 파주였다.

1사단 수색대대 장병 8명이 일상 수색을 하다 북한제 목함지뢰 3발이 터졌다.

하재헌 하사는 두 다리를 잃었다.

김정원 하사는 오른발을 잃었다.

김 하사가 다친 것은 쓰러진 하 하사를 옮기던 중이었다.


부상자에게 다가가는 순간 터지는 두 번째 지뢰.

11년이 지났다.

구조의 순간은 또다시 부상의 순간이 됐다.


2015년의 결론은 빨랐다.

합동조사단 24명이 6~7일 현장을 조사했다.

수거한 잔해가 북한군 목함지뢰와 일치한다는 결론은 사고 6일 만인 10일에 나왔다.


사고 지점은 북한 GP에서 남쪽으로 930m,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440m,

우리 군 GOP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이었다.

440m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침범이었다.


2015년에도 초기 진단은 틀렸다.

사건 직후에는 폭우에 떠내려온 유실 지뢰라는 분석이 먼저 나왔다.

조사 뒤 의도적 매설로 뒤집혔다.


비판도 같았다.

북한이 전년 말부터 DMZ 안에 지뢰를 묻는 징후를 포착하고도

대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2026년에도 경고가 있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사고 11일 전인 9월 10일 대정부질문에서,

25사단 경계구역에 북한군이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지뢰지대 6곳이

군사분계선을 10~15m가량 넘어왔다고 주장했다.


경고는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사람이 먼저 다쳤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거리다.


2015년은 440m였다. 2026년은 50~100m다.

440m는 누구의 지뢰인지 말해준다.

50m는 말해주지 않는다.


28g과 220g


현재 사고 원인에 대한 공식 입장은 한 문장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겠다."


가능성은 셋이다.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묻은 지뢰,

폭우에 떠내려온 북한 지뢰,

그리고 우리 군이 과거에 묻은 지뢰.


판정의 단서는 폭약에 있다.

우리 군 M14 대인지뢰에는 TNT 약 28g이 들어간다.

북한 목함지뢰에는 약 220g이 들어간다.

2015년 도발에 쓰인 PMD-57형 목함지뢰도 같은 양이었다.


여덟 배 가까운 차이다.

합참은 파편과 폭약 잔류물,

진술을 토대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잔류물 분석만으로도 판정의 상당 부분이 가려질 수 있다.


작전의 적정성을 두고는 전문가 비판이 나왔다.


30여 년간 군 DMZ 작전 분석장교로 일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은

매설 정황과 지형 변화를 알고도 기본 탐지·안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작전 실패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근거는 금속이다. 목함지뢰는 겉은 나무 상자지만 뇌관 등에 금속이 8g 넘게 들어 있어

일반 금속탐지기로도 10cm 넘는 거리에서 경고음이 울린다는 것이다.


반대편의 사실도 있다.

합참은 2011년 목함지뢰가 최근 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 소장 스스로도 DMZ의 좌표 체계가 역사적으로 달라 왔고 폭우로 지질이 바뀌어

수색 경로가 늘 위험하다고 인정했다.


유실 가능성도 막연한 가설이 아니다.

사고 두 달 전인 7월, 합참은 접경지역 집중호우로 유실된 지뢰가

임진강·한탄강·북한강 등 남북 공유하천을 따라 흘러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


1,292개와 200개


군사분계선은 철바카라이 아니다.

말뚝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높이 1.8m의 시멘트나 석면 말뚝 1,292개가 세워졌다.

각 말뚝에는 노란 철판 두 장이 붙었다.

남북이 5km씩 번갈아 관리했다.

이 말뚝을 이은 약 155마일의 가상선이 군사분계선이다.


72년이 지났다.

비와 바람에 쓸려 대부분 사라졌다.

남은 것은 200여 개로 전해진다.


1,292개 중 200개.

84%가 없다.


선은 사라졌고,

선을 잇던 점도 사라졌다.


60%


사라진 말뚝을 지도가 대신한다.

그런데 지도가 하나가 아니다.


우리 군 군사지도는 2004년 남은 표지판을 측정해 만들었고 2011년부터 쓰고 있다.

유엔사 지도는 2014~2015년 측정해 2015년 확정했다.


군 관계자는 두 지도가 약 60% 지점에서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그 차이가 수십 m에 이른다.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금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이 사실상 4개라고 표현했다.

남측 기준선, 북측 기준선, 정전 직후의 기준선, 유엔사가 새로 만든 기준선이다.


선이 넷이면 침범도 넷이 된다.


유용원 의원이 말한 "10~15m 남하"는 어느 선으로 재느냐에 따라 침범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두 지도가 수십 m씩 어긋나는 땅에서 15m는 판정이 모호한 거리다.


이번 폭발 지점 50~100m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2015년의 440m와 달리,

이 거리는 어느 지도를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9회와 17회


선이 흐려지는 동안 북한은 선 근처로 내려왔다.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은 2024년 9회, 2025년 17회였다.

합참은 북한의 이른바 국경선화 작업이 이어지면서 침범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지뢰 매설, 불모지 조성, 철바카라 보강, 대전차 방벽 설치 등이다.


국방부는 기준선 설정을 논의하는 군슬롯담을 북측에 제안했다.

북한은 지금껏 응하지 않고 있다.


선을 함께 긋자는 제안은 답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 군은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

합참은 2025년 9월 전방부대에 "군 지도와 유엔사의 기준선이 다르면

더 남쪽 선을 채택해 대응하라"는 지침을 전파했다.

군은 이 지침이 2024년 6월에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평가는 갈렸다.


한 사설은 전 정부 때부터 현장에서 실행해 온 지침을 이번 정부가 아예 문서로 공식화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안보 자해 행위"라고 규정했다.

국방부는 이 조치가 북한군이 주간에 노출된 상태로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활동하는 지역에만 적용되며,

소극 대응을 위한 것도 북한에 유리하게 적용한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주목할 사실이 있다.

이 지침은 보수 정부에서 만들어졌고 진보 정부에서 문서화됐다.


어느 한 정권의 결정으로 돌리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선은 계속 흐려지고 있었다.


올해 8월에는 동부전선에서 북한군 몇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했다.

올해 들어 첫 사례였다.


땅속


105만과 200만


한반도에 묻힌 지뢰가 몇 발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국방부는 1999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민통선 이북과 DMZ에 105만 발이 묻혀 있다고 밝혔다.

후방에도 주요 기지 경계용으로 대인지뢰 7만5,000발이 매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보도는 DMZ 지뢰를 200만 발로 추산했다.


추정치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


제거 속도는 더 절망적이다.

2018년 보도는 전방 공병부대만 투입하면 제거에 200년이 걸린다고 했다.

인력과 장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검토보고서에서 연간 50만㎡씩 제거한다고 가정할 때

미확인 지뢰지대 9,300만㎡를 치우는 데 186년이 걸린다고 봤다.


186년.

2026년에 시작하면 2212년에 끝난다.


이번 사고에서 아군 지뢰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지뢰 논쟁과 별개로,

우리가 묻은 지뢰조차 다 모른다.


991개


지뢰는 DMZ에만 있지 않다.


2011년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군이 경기도 14곳에 묻은 지뢰 1만3,864개 가운데

991개가 유실된 상태였다.

양주 노고산과 앵무봉에서만 3,139개 중 458개가 빗물에 쓸려 내려갔다.

김포와 평택처럼 주거지와 가까운 산에서도 사라졌다.


그 지뢰의 대부분은 M14,

이른바 발목지뢰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짙은 초록색이라 풀숲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민통선 안 인삼밭에서 호박을 따던 주민이 이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된 일도 있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지뢰도 있다.

2010년에는 떠내려온 목함지뢰로 민간인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그해 군이 탐색해 수거한 목함지뢰는 193발이었다.


2024년 보도는 북한이 임진강·역곡천·화강·인북천처럼 남쪽과 이어진 하천 인근에

지뢰를 집중 매설했으며, 나뭇잎 모양 지뢰도 다수 포함됐다고 전했다.


지뢰는 해마다 비를 따라 움직인다.

지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6,428명


지뢰는 군인만 밟지 않는다.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의 2021년 집계에서 국내 지뢰·불발탄 피해자는 6,428명이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가 43.7%다. 청소년까지 합치면 62.9%다.


피해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이였다.


같은 단체는 2010년 이후에도 민간인 30여 명이 지뢰·불발탄 사고를 당했다고 집계했다.

2020년에는 김포대교 근처에서 낚시하던 시민이 다쳤다.


가장 큰 사고는 1984년에 있었다.

김포 장릉산에서 폭우로 흙이 쓸려 내려가며 지뢰가 연쇄 폭발했다.

65명이 죽거나 다쳤고, 그중 14명이 숨졌다.


숫자를 읽을 때 구분이 필요하다.

6,428명은 불발탄 피해를 포함한 수치다.

같은 단체는 2017년 순수 지뢰 피해자를 591명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1997년의 기록이 있다.

대인지뢰금지협약 초안을 확정하던 오슬로 회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는 한국에 대인지뢰로 인한 희생자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가 피해자를 부정한 지 17년 뒤인 2014년,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법에도 결함이 있다.

위로금은 사고 당시의 월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오래전에 다쳐 국가가 오래 외면한 피해자일수록 위로금이 적어진다.

민간인 피해자 12명이 이 산정 기준을 문제 삼아 소송에 나섰다.


예우의 조건


공상과 전상


지뢰에 다친 군인이 국가에게 받는 이름은 둘 중 하나다.


전상(戰傷)은 전투나 그에 준하는 직무 중 입은 부상이다.

공상(公傷)은 국가 수호나 국민 보호와 직결된 직무·훈련 중 입은 부상이다.


군은 전상을 더 명예롭게 여긴다.


2019년 8월,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하재헌 중사에게 공상 판정을 내렸다.

근거는 법조문이었다. 당시 시행령상 경계·수색·매복·정찰 중 부상은 공상에 해당했다.

하 중사는 수색작전 중이었다.


육군은 이미 전상 판정을 내린 상태였다.

군 내부 규정이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다치거나 그것을 제거하다 다친 사람을 전상자로 보기 때문이었다.


같은 부상에 두 기관이 다른 이름을 붙였다.


하 중사는 이의를 신청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조문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10월 재심의에서 판정은 전상으로 뒤집혔다.

보훈처장은 최초 심의가 법령을 문자 그대로 경직되게 해석했다고 인정했다.


'적이 설치한'


법은 바뀌었다.


2020년 6월 국무회의에서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전상 기준에 '적이 설치한 위험물로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사람'이 신설됐다.

적이 설치한 위험물을 제거하다 다친 사람도 포함됐다.

군인사법 시행령과 국가유공자법의 기준이 달라 생긴 혼선을 없애려는 개정이었다.


제2의 하재헌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조건이 하나 있다.

'적이 설치한'이다.


이번 폭발이 북한군 매설 지뢰로 판정되면 부상 간부들은 새 조항의 보호를 받는다.

우리 군이 과거에 묻은 지뢰로 판정되면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끝내 출처를 판정하지 못하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감식 결과는 외교 문제이기 전에 한 사람의 예우 문제다.

유엔사 특조팀이 폭발물 파편에서 무엇을 찾아내느냐가 발목을 잃은 대대장이

국가로부터 어떤 이름을 받을지를 사실상 결정한다.


한 달


열네 번째


폭발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8월 6일,

북한은 원산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올해 10번째이자 42일 만의 발사였다.


8월 20일,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 기간에

600mm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쐈다.


9월 12일,

원산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쐈다.


약 250km를 날았다.

23일 만이었다.


9월 20일,

원산 일대에서 1발을 쐈다.


약 450km를 날았다.

8일 만이었다.


한 보도는 이를 올해 14번째 도발로 셌다.


발사 간격이 42일에서 23일,

다시 8일로 줄었다.


9월 20일 발사에 대해 북한은 이틀 뒤 신형무기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극초음속 탄두를 단 화성-11마로 추정된다.


그 이틀 전인 18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담화에서 미 7함대 주관 다국적 해상훈련 등을

비난하며 비례적이거나 그 이상으로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위협했다.


미사일은 20일에 날아갔다.

지뢰는 21일에 터졌다.


두 사건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전술조치선


폭발 다음 날인 9월 22일, 북한의 미그 계열 전투기 1대가 서해 전술조치선을 넘어 내려왔다.

공군은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다.


전술조치선은 북한 전투기의 남하에 대비해 군사분계선 20~50km 북쪽 상공에 그은 가상의 선이다.

북한 전투기가 이 선을 넘은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22년 이후 처음이다.


해경은 주변 해역 어선에 즉시 입항하라는 취지의 대피 문자를 보냈다.


군 소식통은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상황은 아니라고 전했다.


"북한 미그기가 NLL을 침범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넘은 것은 전술조치선이다.


사흘 사이 미사일, 지뢰, 전투기가 이어졌다.

지상과 해상과 공중이 한 주에 모두 흔들렸다.


166종


같은 시기 다른 방향의 정바카라도 진행 중이었다.


정부는 평양시 강동군병원에 의료장비 166종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진단·수술·치료용 필수 장비다.

강동군병원은 김정은 정권의 '지방발전 20×10 정바카라' 첫 사례로 2025년 11월 준공됐다.


제재와 재원 문제는 미리 해결됐다.

통일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서 인도적 제재 면제를 승인받았다.

재원은 남북협력기금 보건의료협력 예산이다.

정부는 북한이 수용 의사만 밝히면 바로 집행하는 '레디 투 고' 방식으로 준비했다.


나경원 의원은 이 지원이 1,431개,

93억 원 규모라고 언급하며 이번 사고를 "예고된 참사"로 규정했다.


9월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공방이 오갔다.

박충권 의원은 강동군이 무기 개발 기관인 제2경제위원회가 있는 곳이라며 전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원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고통과 필요라고 반박했다.


미사일 발사 간격이 8일로 좁혀지는 동안,

의료장비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도발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대화 유인바카라을 멈추는지,

그 기준을 정부가 밝힌 적은 없다.


미상의 폭발


사고 당일,

합참의 발표는 '미상의 폭발'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X(옛 트위터)에 부상 장병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썼다.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정부가 치료와 회복에 필요한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비판이 이어졌다.

성일종 의원은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생긴 사태라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반드시 바카라임져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의원은 국방부가 '미상의 폭발'이라는 표현으로 말장난을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즉시 데프콘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데프콘은 한미연합사 체계에서 한미가 합의해 격상하는 사안이다.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발령하는 구조가 아니다.


늑장 대응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에도 청와대는 북한 소행이 확실해진 뒤에야 NSC 상임위를 열었다.

합동조사를 거친 뒤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성준 의원은 청와대가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의식해

조용히 상황을 관리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공식 발표가 나온 10일까지 아무 대바카라 없이 기다렸다는 것이다.


2015년의 정부는 보수였다.

2026년의 정부는 진보다.

비판의 문장은 거의 같다.


"확인 후 대응"과 "늑장 대응"은 같은 행동을 다른 쪽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유엔사라는 변수


48시간


사고 이전,

한국 정부와 유엔군사령부는 DMZ를 두고 충돌하고 있었다.


쟁점은 출입 권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하고 통일부가 지원하는 이른바 DMZ법은

관광이나 생태 보전 같은 비군사적 목적의 DMZ 출입을 한국 정부가 허가하도록 한다.


유엔사는 2026년 1월

이 법이 정전협정과 상충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유엔사가 특정 현안에 공개 반대를 표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양쪽 모두 정전협정을 근거로 댄다.

정부는 협정 서문의 "순전히 군사적 성질"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비군사적 영역까지 유엔사가 통제하는 것은 주권침해라고 본다.


유엔사는 협정 8·9·10항을 근거로,

군사정전위원회나 유엔군사령관의 허가 없이는 DMZ에 들어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반론도 있다.

1954년 11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북한이 DMZ 주민의 자유 통행을 제안하자 유엔사는 정전협정과 직결된 군사 문제가 아니라며

개입을 거부했다.


과거에는 자기 권한을 훨씬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갈등의 표면에는 48시간 규정이 있다.

유엔사는 방문 48시간 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을 불허하거나 미루곤 했다.

유흥식 추기경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도 그렇게 막히거나 늦춰졌다.


한 사설은 양쪽 모두에 경고했다.

민간도 아닌 한국 정부 인사의 출입까지 막는 유엔사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동시에 국내법으로 국제조약 이행을 거부할 수 없게 한 비엔나협약 27조에 비춰,

민주당도 정전협정을 침해하는 입법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헬기


그 유엔사가 이번 사고의 한가운데에 있다.


부상자를 옮긴 헬기는 유엔사 협조로 DMZ에 들어갔다.

사고 원인은 유엔사 특별조사팀이 규명한다.

애초에 부대가 수색로를 뚫은 이유도 유엔사 현장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유엔사 특조팀은 합참 감식단과 함께 폭발 지점 주변의 흙을 채취하고 파편 등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DMZ 출입을 막아서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DMZ에서 벌어진 일의 진실을 판정하는 존재다.

불편함과 필요성이 한 사건에 겹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9·19 군사합의 복원 의지를 밝혔다.

국방부는 부분 복원 검토에 착수했다.


DMZ의 관리 틀이 다시 짜이는 과정에서,

이번 조사에서 유엔사와 합참이 결과를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합의는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의 지뢰


탈퇴의 행렬


한반도에서 지뢰가 터지는 동안,

세계는 지뢰로 돌아가고 있다.


1997년 채택된 대인지뢰금지협약,

이른바 오타와협약은 사람이 밟으면 터지는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 비축, 이전을 금지한다.

최근 탈퇴 이전까지 당사국은 166개국이었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2025년 12월 탈퇴를 마쳤다.

핀란드는 2026년 1월 탈퇴했다.

폴란드는 2월 20일 탈퇴하며 대인지뢰를 보유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접경 배치를 위한 대량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25년 7월 의회 승인으로 탈퇴 절차를 밟았다.


인도주의 군축조약 역사상 가장 많은 이탈이다.

탈퇴국들은 모두 러시아의 위협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은 1990년대 이 협약을 초기에 주도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여전히 지뢰가 필요하다며 가입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바이든 정부의 2022년 제한 정바카라을 철회해 지역 제한 없이 지뢰를 배치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미얀마, 인도, 이란, 이스라엘은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거나 비준하지 않았다.

한국도 1997년 협상 당시 북한과의 대치를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30년 가까이 지뢰 금지 운동의 대표적 예외였다.

이제 유럽이 그 예외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이 흐름을 한국의 현실주의가 옳았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인도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같다.

지뢰는 묻은 쪽의 병사도, 묻지 않은 쪽의 아이도 가리지 않는다.

6,428명이 그 증거다.


다섯 개의 통념


사고 직후 몇 가지 문장이 빠르게 퍼졌다.


첫째, "북한 지뢰가 확실하다."

정황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았다.

2015년에도 초기 진단은 유실 지뢰였다가 뒤집혔다.

반대 방향으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둘째, "북한 미그기가 NLL을 침범했다."

사실과 다르다.

넘은 것은 북방한계선보다 북쪽 상공에 그은 전술조치선이다.


셋째, "데프콘을 즉시 올려야 한다."

데프콘은 한미가 합의해 격상한다.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다.


넷째, "진보 정부만 북한 도발에 약하게 대응한다."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은 3,000회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고강도 도발 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한국이 군사적 보복까지 한 사례는 3건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조기경보와 방어 단계부터 대응이 미흡했다.

정권 성향과 무관한 결과다.


다섯째, "북한 도발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군사분계선 침범은 2024년 9회에서 2025년 17회로 늘었다.

미사일 발사 간격은 최근 42일에서 8일로 줄었다.

전투기는 4년 만에 전술조치선을 넘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오물풍선이 5,000여 건에 이르렀고,

2024년 한 해 GPS 교란으로 장애가 생긴 기지국·항공기·선박이 1,963건으로 집계됐다.

도발의 총량이 늘었다기보다 양상이 비군사 영역에서

미사일과 공중과 지상 인명 피해로 옮겨갔다고 보는 편이 숫자에 가깝다.


착각인 통념은 빠르게 퍼진다.

사실인 통념은 숫자 없이 퍼진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숫자의 부재다.


사고 지점이 우리 군 지도와 유엔사 지도 각각의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몇 m 떨어져 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50~100m라는 수치조차 어느 기준선에서 잰 것인지 명시되지 않았다.


지뢰의 종류와 재질,

매설 추정 시점이 공개되지 않았다.


9월 10일 대정부질문의 지뢰지대 경고 이후 작전 계획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2015년 이후 부상자 구조 절차,

즉 2차 폭발에 대비한 접근 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남쪽 기준선 지침이 적용된 이후 대응 판정이 달라진 사례의 수가 없다.


한반도에 묻힌 지뢰의 수가 105만 발인지 200만 발인지 공식 확정치가 없다.


후방 유실 지뢰의 최근 미수거 현황이 없다.


지뢰피해자 특별법에 따른 위로금 지급 실적이 공개되지 않는다.


출처가 확정되지 않은 지뢰 부상에 대한 보훈 판정 원칙이 없다.


유엔사 특조팀 조사 결과를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원칙이 알려지지 않았다.


도발 수위에 따라 대북 지원을 조정하는 정부의 기준이 공개되지 않았다.


지뢰에 관해 해마다 축적되는 것은 장마철 주의 당부 보도자료뿐이다.


반론: 신중론


균형을 위해 반대편의 사실도 정리해야 한다.


원인이 확인되기 전에 북한 소행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과실이 아니다.

2015년에도 정부는 합동조사로 북한 소행을 확인한 뒤에 공식 발표를 하고 대응 수위를 정했다.

그 절차가 있었기에 이후의 대응이 흔들리지 않았다.

확인 전에 강경 대응했다가 유실 지뢰나 아군 지뢰로 드러나면,

그 역풍은 부상 장병의 예우까지 흔들 수 있다.


남쪽 기준선 지침도 일방적인 양보로만 볼 수 없다.

두 지도가 60% 지점에서 어긋나는 상황에서 현장 부대가 임의로 판단하면 우발적 교전으로 번질 수 있다.


이 지침은 2024년 6월,

강경 기조의 정부에서 마련됐다.


대북 의료장비 지원은 유엔 제재위원회의 인도적 면제 절차를 거쳤다.

북한 주민의 의료 수요는 정권의 도발과 별개로 존재한다.


유엔사의 출입 통제는 주권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정전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의 틀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이번 사고에서 후송 헬기와 조사를 뒷받침한 것도 그 틀이다.


작전 실패론도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방호장구는 착용돼 있었고 지뢰탐지기도 가동 중이었다.

플라스틱 지뢰나 지형 변화에 따른 탐지 한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즉 현재의 상태는 한 정부의 안이함보다,

72년 동안 흐려진 선과 누구도 다 세지 못한 지뢰와 정권마다

바뀐 대응 기준이 한 지점에 겹친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그 사정이 설명 바카라임까지 면제하지는 않는다.


지뢰지대 경고 이후의 작전 판단,

2차 폭발에 대비한 구조 절차,

기준선 불일치를 방치한 채 지침으로 봉합한 결정,

출처 미확정 부상에 대한 보훈 원칙의 공백,

지뢰 매설 규모조차 확정하지 않는 관행은 북한의 행동과 무관한 제도와 기관의 선택에 속한다.


제언


검토에서 도출되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감식 결과는 지뢰의 종류와 재질,

매설 추정 시점까지 공개돼야 한다.

"북한 소행 추정"이나 "원인 미상" 같은 한 줄 결론으로는 작전의 적정성도,

보훈 판정도 검증할 수 없다.


둘째, 사고 지점이 각 기준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밝혀야 한다.

50~100m라는 숫자가 어느 선에서 잰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는 침범 여부를 말할 수 없다.


셋째, 우리 군과 유엔사의 군사분계선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보정 작업이 기한을 정해 추진돼야 한다.

60%의 불일치를 지침으로 봉합하는 방식은 다음 사고에서도 같은 논쟁을 반복하게 만든다.


넷째, 출처가 확정되지 않은 지뢰 부상에 대한 보훈 판정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

2020년 개정이 '적이 설치한'이라는 조건을 달았다면,

그 조건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의 원칙도 함께 있어야 한다.

입증 바카라임을 부상자에게 지울 수는 없다.


다섯째, 지뢰 매설 의심 지역 작전의 안전 절차가 점검돼야 한다.

2015년과 2026년 모두 부상자에게 다가가다 두 번째 폭발이 났다.

같은 유형의 부상이 11년 간격으로 반복된 이유가 설명돼야 한다.


여섯째, 한반도에 묻힌 지뢰의 수와 위치에 대한 공식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105만과 200만 사이의 간격은 추정의 오차가 아니라 관리의 공백이다.


일곱째, 지뢰 제거 속도를 끌어올릴 인력과 예산 계획이 필요하다.

186년이라는 추산은 사실상 제거를 포기했다는 뜻과 같다.


여덟째, 민간인 지뢰피해자 위로금의 산정 기준이 고쳐져야 한다.

오래 방치된 피해자일수록 적게 받는 구조는 국가의 외면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다.


아홉째, 도발 수위에 따라 대북 지원과 대화 제안을 조정하는 기준이 공개돼야 한다.

지원을 지지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열째, 이 사건을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누구의 정부가 약했나"의 틀로만 말하면,

흐려진 선과 세지 못한 지뢰와 비어 있는 보훈 원칙은 각각 별개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다음 정부에서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9월 21일 오전 10시 50분,

파주 서부전선 DMZ에서 수색로를 뚫던 18명 가운데 3명이 다쳤다.

선두의 공병 중사가 먼저 쓰러졌고,

그에게 다가가던 대대장이 두 번째 폭발로 발목을 잃었다.

그들은 유엔사 현장조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2015년에도 부상자를 옮기다 두 번째 폭발이 났다.

그때 사고 지점은 군사분계선에서 440m,

이번에는 50~100m다.

2015년 결론은 6일 만에 나왔다.

두 번 모두 사전 경고가 있었다.


우리 군 대인지뢰의 폭약은 약 28g,

북한 목함지뢰는 약 220g이다.

지뢰의 종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1,292개였던 군사분계선 표식물은 200여 개가 남았다.

우리 군과 유엔사의 지도는 약 60% 지점에서 어긋난다.

합참은 두 기준이 다르면 남쪽 선을 따르라는 지침을 2024년에 마련해 2025년에 전파했다.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은 9회에서 17회로 늘었고,

북한은 기준선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묻힌 지뢰는 105만 발에서 200만 발 사이로 추정된다.

미확인 지뢰지대를 치우는 데 186년이 걸린다는 추산이 있다.

경기도 후방에 묻은 지뢰 중 991개가 사라졌다.


국내 지뢰·불발탄 피해자는 6,428명이고 그중 62.9%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1997년 한국 정부는 국제회의에서 지뢰 희생자가 없다고 말했다.


2019년 하재헌 중사는 공상 판정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전상으로 바뀌었다.

2020년 시행령은 '적이 설치한 위험물' 부상을 전상으로 인정하도록 바뀌었다.

이번 부상자의 예우는 감식 결과에 달려 있다.


사고 전후 한 달 사이 미사일 발사 간격은 42일에서 8일로 줄었다.

폭발 다음 날 북한 전투기가 4년 만에 전술조치선을 넘었다.

같은 시기 정부는 강동군병원 의료장비 166종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DMZ 출입을 두고 충돌하던 상대이면서,

이번 사고의 후송과 조사를 맡았다.


발트 3국과 핀란드와 폴란드가 대인지뢰금지협약을 떠났다.

미국은 한반도를 이유로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은 3,000회가 넘는다.

고강도 도발 7건 중 한국이 군사적으로 보복한 것은 3건이다.


북한의 도발은 오래 반복됐다. 그 반복 덕분에 논쟁은 "북한의 소행인가"와 "정부가 약한가"에 머물렀고,

군은 장마철마다 지뢰 주의 보도자료를 내는 것으로 지뢰를 설명했다.


그동안 선의 말뚝은 비에 쓸려 사라졌고,

두 지도는 60% 지점에서 어긋난 채 남았으며,

우리가 묻은 지뢰는 몇 발인지 세지 못했고,

부상자를 구하러 가는 사람은 11년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다쳤다.


말뚝은 사라졌다.

선이 지워진 땅에서 장병이 다칠 때,

그 선을 지키지 못한 것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