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은 위에서, 부담은 아래에서

서민식품이라는 이름

by다소느림

편의점 매대의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00원이다.

2025년 3월 950원에서 오른 뒤 그대로다.


올해 인하 대상에서 빠졌고 인상 대상에서도 빠졌다.

표면만 보면 라면값은 멈춰 있다.


문장에는 결함이 없다.

검토가 필요한 것은 그 문장이 놓인 자리다.


이 글은 올해 라면 가격의 인하와 인상 내역, 원재료 가격의 추이, 밀가루 담합 제재의 내용,

수출과 내수의 실적 격차, 연구개발비의 배분, 프리미엄 제품의 성과를 공개 자료에 근거해

순차적으로 검토한다.


라면의 맛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가격 결정의 설명 바카라임을 다룬다.


1,000원이라는 숫자


올해 봄 농심과 오뚜기와 삼양식품과 팔도는 41개 제품의 출고가를 40원에서 100원씩 내렸다.

물가 안정에 동참한다는 명분이었다.


인하 목록에서 신라면과 진라면과 불닭볶음면은 빠졌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그대로 두고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제품의 가격을 내린 셈이다.


넉 달 뒤인 8월 1일,

농심은 용기면 18개와 스낵 23개와 음료 2개,

모두 43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5.8% 올렸다.

용기면은 6.0%, 스낵은 5.5%, 음료는 7.7%였다.


육개장사발면은 1,100원에서 1,200원이 됐다.

새우깡 90그램은 1,500원에서 1,600원이 됐다.


이번에도 봉지라면은 빠졌다.

라면 매출의 63%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인하는 체감되지 않는 곳에서 이뤄졌고

인상은 체감되는 곳에서 이뤄졌다.


용기면은 1인 가구와 젊은 소비층의 구매 비중이 높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드는 사람이 부담을 졌다.


인하 품목과 인상 품목을 각각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14.2%라는 격차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8.2% 올랐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은 13.6%, 라면은 14.2%, 빵은 19.4% 올랐다.


밀가루 가격은 최근 2년 사이 약 20% 하락했다.


원재료는 내렸고 완제품은 올랐다.

가격 인상 이후 기업의 수익성은 개선됐다.


업계의 반론에도 근거가 있다.

올해 들어 팜유는 연초 대비 18.0%, 대두유는 54.7%, 옥수수는 6.06% 올랐다.

고환율과 고유가로 포장재를 비롯한 부자재 값이 뛰었고,

부자재 단가가 10% 오르면 월 20억 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는 증권가 분석이 있다.


농심의 2분기 별도기준 영업이익은 321억 원으로 1분기보다 32.0% 줄었다.

국내 사업의 원가 압박은 실재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오를 때는 즉시 반영되고 내릴 때는 좀처럼 반영되지 않는다.

이 비대칭은 라면 회사만의 습관이 아니었다.


원가의 뒤


6,710억 원


5월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제분업체 7곳에 과징금 6,710억4,500만 원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대표자와 실무자가 55차례 모여

24차례에 걸쳐 가격과 물량을 합의했다.


관련 매출은 약 5조6,900억 원이다.

2022년 9월 밀가루 가격은 2019년 12월보다 업체별로 38%에서 74%까지 올랐다.


업체별 과징금은 사조동아원 1,830억 원, 대한제분 1,792억 원, CJ제일제당 1,317억 원,

삼양사 947억 원, 대선제분 384억 원, 한탑 242억 원, 삼화제분 194억 원이다.


담합사의 시장 점유율은 2024년 매출 기준 87.7%다.


농심이라는 기준가격


담합의 출발점이 공정위 자료에 명시돼 있다.


농심은 국내 밀가루 총 가공량의 약 10%를 구매하는 최대 수요처다.

제분사가 농심에 공급하는 가격은 다른 거래처 공급가의 기준가격 역할을 한다.


2018년 11월 대한제분이 농심 견적에 최저가를 써내 물량의 약 30%를 확보했다.


경쟁이 격화됐고,

그 반작용으로 이듬해 11월 담합이 시작됐다.


24차례의 합의 중 19차례가 농심과 팔도와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를 겨냥한 것이었다.

피해 제면업체 명단에는 농심과 삼양식품과 오뚜기와 팔도와 풀무원이 모두 올라 있다.


2023년 이후 원맥 시세가 하락하자 제분사들은 대형 수요처에 대한 인하 폭과 시기를 늦추기로 합의했다.

앞서 지적한 비대칭이 우연이 아니라 합의의 결과였다는 뜻이다.


471억 원


정부는 2022년 하반기 이후 출하가를 동결하거나

인상 요인의 10% 이내로 억제하는 업체에 상승분의 80%를 지원했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471억 원이 집행됐다.


담합은 그 기간에도 계속됐다.

국민 세금으로 가격을 눌러주는 동안 가격을 함께 올리기로 약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합사들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 마이너스 11.2%에서 7.1% 사이였으나

2024년에는 5.6%에서 13.3% 사이로 개선됐다.


2006년에도 같은 업계가 435억4,700만 원의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을 받았다.

대표자급 임원 6명이 고발됐다.


20년 만의 재범이다.


올해 확정된 식료품 담합 과징금은 1조8,155억 원으로,

종전 최대였던 2017년의 1조3,330억 원을 넘어섰다.


피해자이면서 인상의 주체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라면 회사는 밀가루 담합의 피해자다.

동시에 그 원가를 근거로 소비자가격을 올린 주체다.


담합이 적발된 직후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일부 제품 가격을 내렸고,

넉 달 뒤 다른 제품 가격을 올렸다.


제분사에는 3개월 내 가격 재결정과 이후 3년간 연 2회 보고 의무가 부과됐다.

인하된 밀가루 값이 라면 가격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담합으로 발생한 초과 이윤이 소비자에게 환원되는 경로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성장의 위치


15억 달러


내수가 눌리는 동안 수출은 팽창했다.


2025년 라면 수출액은 15억2,086만 달러로 전년보다 21.8% 늘었다.

수출량은 37만4,313톤으로 20.6% 증가했다.


2021년 6억7,440만 달러와 비교하면 4년 만에 125.5% 늘었다.

단일 가공식품으로는 처음 15억 달러를 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25.3%인 3억8,539만 달러,

미국이 16.7%인 2억5,474만 달러다.

러시아 수출은 2021년 대비 370.9%,

네덜란드는 303.0% 늘었다.


올해는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수출액이 13억8,176만 달러로 이미 전년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2015년 이후 11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이 예상된다.


34.4%


미국 라면 시장은 2021년 18억9,160만 달러에서

2025년 39억2,710만 달러로 연평균 20.0% 성장했다.


같은 기간 농심의 점유율은 16.8%에서 24.9%로,

삼양식품은 2.1%에서 9.5%로 올랐다.

1위 마루찬은 31.8%에서 26.8%로 떨어졌다.


두 한국 기업을 합하면 34.4%다.

마루찬을 7.6%포인트 앞선다.


독일에서는 삼양식품이 12.7%로 2위다.


84%


실적에 그대로 나타난다.


삼양식품의 2분기 연결 매출액은 7,703억 원으로 39.3% 늘었고

영업이익은 1,762억 원으로 46.7% 증가했다.

미국 매출이 2,100억 원, 중국이 1,800억 원,

유럽이 1,100억 원이었다.

해외 매출 비중은 84%다.


농심의 2분기 연결 매출액은 9,561억 원으로 10.2% 늘었고

영업이익은 593억 원으로 47%대 증가했다.

해외 법인 매출이 30.6% 늘었다.


지난해 3분기에는 농심의 해외법인 매출이 14.4% 늘어 전체의 30.5%를 차지한 반면,

국내법인 매출은 2.1% 줄었다.


농심은 해외 매출 비중을 2025년 39%에서 2030년 61%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성장의 좌표가 국경 밖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국내 소비자의 자리


건더기


박탈감은 가격에만 있지 않다.


라면 회사들은 국가별 음식문화와 가격 정바카라에 따라 다른 레시피를 적용하며,

해외로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생산한 라면은 건더기 양이 많고 더 큰 것이 사실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한 매체가 신라면과 짜파게티와 너구리와 육개장컵과 진라면과 열라면과 불닭볶음면과 삼양라면과

팔도비빔면과 왕뚜껑의 내수용과 미국·중국·일본 판매용을 비교했다.

그 결과 내수용에는 대부분 MSG가 빠진 반면 해외 판매용에는 첨가돼 있었다.


일본판 신라면 컵라면은 오래된 논란거리다.


농심은 건더기 차이가 나라별 취향과 맛 트렌드를 반영한 것일 뿐 차별 의도는 전혀 없으며,

같은 제품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일본 신라면이 건더기가 많은데도 한국 제품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농심은 국내용과 수출용 모두 같은 레시피를 쓴다면서도,

현지 공장의 원료는 원산지가 달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삼양식품은 2016년 10월부터 고기 성분을 뺀 수출 전용 스프를 만들어

대부분의 수출용 제품에 쓰고 있다.


미국에서 파는 신라면사발면은 월마트 기준 개당 2달러다.

국내 신라면큰사발은 1,250원이다.


내수용과 수출용의 규격 차이를 제품별로 공개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129억과 1,628억


연구개발비의 행방이 이 구도를 분명하게 만든다.


올해 상반기 삼양식품은 연구개발비로 126억3,000만 원을 집행했다.

전년 동기 57억7,000만 원보다 118.9% 늘었다.

지난해 연간 전체인 127억6,000만 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매출 대비 비율은 0.53%에서 0.85%로 올랐다.


같은 기간 농심은 129억8,682만 원으로 5.2% 줄었다.

비율은 0.8%에서 0.7%로 낮아졌다.


오뚜기는 89억7,743만 원으로 5.8% 줄었다.

비율은 0.64%에서 0.58%가 됐다.


그리고 삼양식품은 상반기 연구개발 역량을 대부분 수출용 제품에 집중했다.


같은 회사들이 2023년에 쓴 광고선전비는 농심 1,628억2,800만 원,

오뚜기 485억6,145만 원, 삼양식품 411억4,468만 원, 팔도 293억5,968만 원이다.

삼양식품은 1년 새 70%, 팔도는 65% 늘렸다.


농심의 광고선전비는 연구개발비의 열두 배를 넘는다.

업계 전체의 연구개발비 비율은 매출의 1%에 미치지 못한다.


맛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로 경쟁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회로


프리미엄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새 제품을 비싸게 내면 된다.


삼양1963은 2025년 11월 출시 후 한 달 만에 700만 개가 팔렸다.

기존 삼양라면 월평균 판매량의 80%가 넘는다. 가격은 기존 제품의 약 1.5배다.

1,500원인 신라면 골드는 한 달 만에 1,000만 봉이 팔렸다.


한계선도 분명하다.


개당 2,200원인 하림 더미식 장인라면은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림산업은 2024년 매출 802억 원에 영업손실 1,276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2020년 294억 원에서 2022년 868억 원으로 계속 커졌다.

2016년 이후 9년 동안 매출총이익이 마이너스였다.


만들어 팔수록 손해라는 뜻이다.


2024년 광고판촉비는 267억 원이었고 연구개발비는 11억 원이었다.

부채비율은 2022년 110.6%에서 2025년 3분기 429.2%로 올랐다.


건면과 나트륨


건강을 앞세운 건면도 답이 되지 못했다.


2023년 국내 건면 시장은 약 1,600억 원으로 추정된다.

2020년 1,178억 원보다 36% 늘었으나 업계 평가는 제자리걸음이다.

전체 라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신라면건면은 출시 후 6개월간 5,000만 개가 팔렸으나

최근 6개월 판매량은 2,000만 개 수준으로 줄었다.


한편 라면의 나트륨은 70%에서 90%가 스프에 몰려 있다.

조리 후에는 국물과 면에 각각 49%와 51%로 나뉜다.

스프를 절반만 넣고 국물을 남기면 섭취량은 크게 줄어든다.


신라면 한 봉지의 나트륨은 1,790밀리그램, 진라면 순한맛은 1,880밀리그램이다.

자극적이라 여겨지는 팔도비빔면은 1,090밀리그램,

불닭볶음면은 1,280밀리그램으로 오히려 적다.


일본 닛신 치킨라멘은 2,200밀리그램,

마루짱 세이멘 돈코츠라멘은 2,400밀리그램이다.


식약처 나트륨 함량 순위에서 1위는 소금,

2위는 김치, 3위와 4위는 간장과 된장이며 라면은 5위다.


식약청은 2005년부터 면류 나트륨 저감을 추진해 12%에서 15%를 줄였고,

2011년에는 추가로 4%에서 15%의 감축을 예고했다.


20년간의 저감 실적을 연도별로 공개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절의 여지는 제품이 아니라 조리하는 손에 있었다.

그런데도 업계는 건면이라는 제품으로 답하려 했다.


세어지지 않는 것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숫자의 부재다.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약 3조 원으로 널리 인용되지만

산정 주체와 기준은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규모와 매출 추이를 따로 집계한 공식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이 보도자료로 내는 누적 판매량이 사실상 유일한 자료다.


신제품의 초기 판매량은 광고 물량과 화제성으로 형성된다.

재구매율이 공개되지 않는 한 성과는 판정되지 않는다.


닐슨 기준 2025년 3분기 국내 점유율은 농심 56%, 오뚜기 25%다.

조사 방식과 표본은 공개돼 있지 않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약 79.2개로 세계 2위다.

1위는 베트남으로 81개다.

국내 총소비량은 2021년 37억9,000만 개에서

2024년 41억 개로 늘었다.


더 먹을 여지도,

더 먹을 사람도 줄고 있다.


업계의 사정의 기록


균형을 위해 사업 주체 측 조건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라면 회사는 밀가루 담합의 직접 피해자다.

6년간 부당하게 높은 가격으로 원재료를 구매했고,

그 손실을 회수할 경로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원가 부담도 실재한다.

밀가루 인하분이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며,

팜유와 대두유는 올해 크게 올랐다.

환율과 물류비와 인건비는 별도의 변수다.

농심의 국내 사업 수익성은 실제로 악화됐다.


내수의 한계도 구조적이다.

1인당 소비량이 이미 세계 2위이고 인구는 줄고 있다.

라면은 서민식품으로 분류돼 정부의 가격 관리를 받는다.

2023년 7월에는 정부가 직접 인하를 요구했다.

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신제품 고가화는 기업의 합리적 선택에 가깝다.


수출용과 내수용의 차이에도 이유가 있다.

육류 성분을 금지하는 국가가 있고 할랄 인증 요건이 다르며 현지 조리 문화가 다르다.

전자레인지 사용을 전제한 용기 재질 변경이 그 예다.


즉 현재의 상태는 특정 기업의 탐욕보다 담합과 규제와 인구 구조가

누적된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그 사정이 설명 바카라임까지 면제하지는 않는다.


인하 품목과 인상 품목의 선정 기준을 밝히지 않은 것,

담합으로 발생한 원가 부담의 회수 경로를 공개하지 않은 것,

내수용과 수출용의 규격 차이를 제품별로 공시하지 않은 것,

연구개발비의 국내외 배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외부 환경과 무관한 개별 기업의 선택에 속한다.


검토에서 도출되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고가 조정 시 품목 선정 기준이 함께 공개돼야 한다.

어떤 제품을 내리고 어떤 제품을 올렸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나눴는지가 설명돼야 한다.


둘째, 원재료 가격과 소비자가격의 연동 내역이 공시돼야 한다.

인상 시점의 원가 근거를 제시한 기업은 인하 시점의 원가 근거도 제시할 의무가 있다.


셋째, 담합으로 발생한 중간재 초과 이윤이 최종 소비자에게 환원되는 경로가 설계돼야 한다.

과징금은 국고로 가고 가격 부담은 소비자에게 남는 현재 구조에는 환원 절차가 없다.


넷째, 내수용과 수출용 제품의 중량과 성분 차이가 제품 단위로 공개돼야 한다.

현지화가 사실이라면 공개가 불리할 이유도 없다.


다섯째, 연구개발비의 내수용과 수출용 배분이 공시돼야 한다.

매출의 1%에도 못 미치는 연구개발비가 어디로 가는지는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사안이다.


여섯째, 나트륨 저감 사업의 20년 실적이 연도별로 공개돼야 한다.

목표만 반복 발표되고 실적이 집계되지 않는 사업은 사업이라 부르기 어렵다.


일곱째, 가격 통제의 실효성이 재검토돼야 한다.

대표 제품의 가격을 묶는 방식은 신제품 고가화라는 우회로를 만든다.

통제보다 정보 공개가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이 남았을까?

이 글이 확인한 사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면 한 봉지는 1,000원이다.

올해 인하에서도 인상에서도 제외됐다.


인하된 것은 41개 제품이었고 대표 제품은 빠졌다.

인상된 것은 43개 브랜드였고 라면 매출의 63%를 차지하는 봉지라면은 빠졌다.

인상된 품목은 용기면이었다.


3년간 전체 물가는 8.2% 올랐고 라면은 14.2% 올랐다.

밀가루는 2년간 20% 내렸다.


제분업체 7곳은 6년간 24차례 가격을 합의했고 과징금 6,710억4,500만 원을 받았다.

담합의 기준가격은 농심 공급가였다. 하락기에는 대형 수요처에 대한 인하를 늦추기로 합의했다.

정부 지원금 471억 원이 집행되던 기간에도 담합은 계속됐다.

같은 업계가 2006년에 이미 한 차례 제재를 받았다.


라면 수출은 4년간 125.5% 늘어 15억 달러를 넘었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84%다.

농심의 국내법인 매출은 줄었고 해외법인 매출은 늘었다.


내수용 라면에는 대부분 MSG가 빠져 있고 해외 판매용에는 들어 있다.

수출용과 현지 생산 제품의 건더기가 더 많고 크다는 보도가 있으며,

회사는 현지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상반기 농심의 연구개발비는 129억 원으로 줄었고 2023년 광고선전비는 1,628억 원이었다.

늘어난 연구개발비는 수출용 제품에 집중됐다.


프리미엄 라면의 매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라면 시장 규모의 산정 근거도 제시되지 않는다.


가격이 1,000원에 멈춰 있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숫자는 아주 많은 일이 벌어졌음을 가리는 뚜껑에 가깝다.


라면은 오래 서민식품이라 불렸다.

그 이름 덕분에 정부는 가격을 관리했고 기업은 대표 제품의 가격을 묶었다.


그동안 밀가루 값은 합의로 올랐고,

인상 부담은 컵라면을 집는 손에 돌아갔으며,

연구비는 수출용 제품으로 흘러갔고,

건더기는 국경 너머에서 더 커졌다.


서민식품이라는 이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