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지 않은 3분의 2
2026년 9월, 부안 변산마실길 2코스에 붉노랑상사화가 피었다.
송포항에서 성천항까지 5.3km,
부안군이 안내하는 소요시간은 1시간 15분이다.
코스의 다른 이름은 노루목 상사화길이다.
잎이 완전히 진 뒤에야 꽃대가 올라오는 종이다.
꽃대는 40~60cm까지 자라고 끝에
네 송이에서 여덟 송이가 산형으로 달린다.
열매를 맺지 않아 비늘줄기로만 번식한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는 생태적 특성에서
그리움이라는 꽃말이 붙었다.
지역 언론은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군락이
서해 바다와 색채 대비를 이루며 탐방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해 질 무렵 낙조와 어우러진 꽃길이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힌다는 설명도 붙었다.
문장에는 결함이 없다.
검토가 필요한 것은 그 문장이 놓인 자리다.
이 글은 변산마실길의 조성 계획과 코스 체계, 상위 사업과의 중첩 구조, 식재 이력,
적용되는 법제도, 성과 집계 방식을 공개 자료에 근거해 순차적으로 검토한다.
길의 풍경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검증 체계의 존부를 다룬다.
부안군이 안내하는 변산마실길의 총연장은 66km다.
새만금방조제에서 출발해 줄포만갯벌생태공원에 이르며 8개 코스로 나뉜다.
2009년 조성을 시작해 2011년 전 구간이 연결됐고,
2012년 전국 5대 명품길로 선정됐다.
이 세 문장이 지난 14년간 변산마실길을 설명해온 거의 전부다.
그런데 조성 당시의 계획은 66km가 아니었다.
2011년경 보도에 따르면 부안군은 해안을 따라 난 마실길 외에 내륙길을 별도로 조성하고 있었다.
변산반도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라는 설명이 붙었고 완성 시점은 2012년으로 예정돼 있었다.
구성은 두 갈래였다.
바닷길에서 출발해 내륙의 명소를 돌아보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연결형 코스,
그리고 내륙의 산을 넘어가는 등반형 코스다.
이 길이 완성되면 변산마실길의 총 길이는 약 200km에 이를 예정이었다.
2026년 현재 부안군 공식 안내는 여전히 8코스 66km다.
200km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계획의 3분의 1이 만들어졌고 3분의 2는 사라졌다.
사라진 쪽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거기 있었다.
이 계획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착공된 구간이 있었는지,
중단 시점과 사유가 무엇인지,
집행된 예산이 얼마인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사업이 축소되거나 변경됐다면 그 결정을 기록한 문서가 존재할 것이다.
그 문서를 확인한 보도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길을 안내하는 체계가 기관마다 다르다.
부안군은 변산마실길을 8코스로 안내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추천여행지는 4구간으로 소개한다.
1구간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항,
2구간 격포항에서 모항,
3구간 모항에서 곰소염전,
4구간 곰소염전에서 줄포다.
일부 매체는 6코스로 표기한다.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무장애 관광정보의 3코스 설명에는
12코스를 이용해 격포 주변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4구간과 6코스와 8코스와 12코스가 동시에 통용되고 있다.
조성 당시 보도에는 하나의 구간이 대략 두세 개의 코스로 나뉜다는 설명이 있다.
4구간 체계와 8코스 체계가 상하 관계였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그렇다면 12코스라는 표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4구간을 8코스로 재편한 시점과 근거는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체계가 넷이면 통계도 넷이 된다.
어느 체계를 기준으로 집계했는지 명시하지 않은 수치는 다른 수치와 비교할 수 없다.
전 구간 연결이라는 표현도 검토가 필요하다.
1코스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해안 야산길과 바닷길 중 하나를 선택해 걷는 구조다.
조성 당시 보도는 밀물 때 바닷물이 차올라 이 길을 이용할 수 없게 되므로
출발 전 반드시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시작점에서는 물이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걷다 보면 길이 잠겨 더 나아갈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 함께 붙었다.
연결이라는 단어와 이 안내문은 같은 길을 설명하고 있다.
2012년 변산마실길은 전국 5대 명품길로 선정됐다.
이 표현은 이후 14년간 부안군의 모든 홍보 자료에 등장한다.
확인되지 않는 사항이 여럿이다.
선정 주체가 어디였는지,
심사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선정에 따른 사후 관리 의무가 부과됐는지,
14년간 재평가가 이뤄진 적이 있는지.
공개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교 지표는 존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2021년 걷기여행 실태조사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걷기여행길은 제주올레 16.6%, 해파랑길 8.3%, 갈맷길 5.1% 순이었다.
변산마실길은 순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서 걷기여행길을 고를 때 중요하게 보는 기준으로 자연경관의 매력성이 91.5%,
볼거리의 다양성이 88.8%, 코스의 관리상태가 88.3%, 길의 안전성이 88.1%로 나타났다.
관리상태와 안전성이 매력성에 거의 맞먹는 선택 기준이라는 조사 결과는 그 자체로 시사적이다.
명품이라는 명명은 경관에 부여될 수 있으나 관리에는 부여되지 않는다.
조성 방식은 공식 서사에 명시돼 있다.
예전에는 사용됐지만 현재 방치된 길을 되찾아 변산마실길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숲에서 간벌해 버려진 나무를 가져와 푯말을 만들고 길을 보수하는 재료로 썼다는 설명이 함께 붙는다.
그 결과 걷기여행자들이 손꼽는 아름다운 길이 됐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저비용 친환경 조성이다.
동시에 노폭과 선형과 연속성을 새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그대로 인용할 가치가 있다.
방치된 길을 되찾았다는 것은 길을 새로 내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실에 부합하는 서술이며,
동시에 이 사업의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확인되는 좁은 폭과 끊긴 구간은 시공의 결함이 아니라 설계의 부재에 가깝다.
길의 원래 용도는 군사시설이었다.
부안군 공식 소개는 2코스와 3코스를 해안 초소길로 조성된 길로 설명한다.
초소를 잇는 순찰로는 단독 통행을 전제로 낸 길이다.
두 사람이 마주 지나는 상황을 전제로 설계된 보행로가 아니다.
전국적 맥락이 있다.
국방부는 2018년 유휴 군사시설 정비 계획에 따라
해·강안 철바카라 284km와 방치된 해안 초소 483곳을 포함한 대규모 철거를 추진했다.
전남 지역에서만 476개소가 대상이었다.
대간첩 작전 대비로 해안선을 따라 설치됐던 경계시설이 차례로 걷혔고,
민간인 접근이 통제되던 순찰로가 산바카라로로 이름을 바꿨다.
철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도 동해안 일부 구간에서 10km 규모의 철바카라 철거가 새로 시작됐다.
부안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이름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과 길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같지는 않다.
변산 해안 구간을 담당했던 부대가 어디였는지,
해당 구간 철거가 언제 이뤄졌는지,
철거 이후 토지의 소유권과 관리 바카라임이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산바카라로와 꽃밭을 조성한 법적 근거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의 변산마실길은 전 구간이 선형이다.
시점과 종점이 다르고 걸어간 만큼 돌아와야 한다.
2코스가 사례가 된다.
공식 소요시간 1시간 15분은 편도 기준이다.
종점에서 시점으로 복귀할 수단이 없다면 실제로는 10.6km,
2시간 30분의 왕복 코스가 된다.
복귀 수단은 제한적이다.
새만금전시관과 내소사를 오가는 마실버스는 주말과 휴일에만 운행한다.
평일에는 농어촌버스에 의존해야 한다.
조성 당시 보도는 코스의 시작과 끝 지점이 버스가 다니는 큰 길과 이어져 있어
각자의 체력을 고려해 걸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선이 닿는다는 것과 실제로 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결과는 현장에서 확인된다.
개화기 2코스 입구 구간에서는 진입하는 인파와 되돌아 나오는 인파가 뒤엉킨다.
종점까지 걷는 사람보다 적당한 지점에서 돌아서는 사람이 많고,
돌아서는 사람은 입구 구간을 두 번 지난다.
부하가 입구 한 곳에 집중되는 구조다.
노폭이 좁은 순찰로에서 양방향 통행이 한 지점에 몰리면 교행 자체가 문제가 된다.
해안 사면과 절벽을 낀 구간에서 한쪽이 비켜서야 하는 상황은 안전 문제로 전환된다.
여기에 물때에 따라 통행이 제한되는 구간이 겹친다.
이 구간의 안전사고 이력과 구조 출동 건수는 공개된 바 없다.
여기서 제1부의 내용이 다시 유효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설계가 원래 계획에 있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연결형 코스가 그것이다.
그 계획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름의 중첩
변산마실길은 독립된 길이 아니다.
2024년 9월 23일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 개통식이 열렸다.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과 접경지역을 잇는 약 4500km의 초장거리 걷기여행길이다.
일부 자료는 총연장을 4544km로 표기한다.
2009년 조성을 시작해 2016년 해파랑길, 2020년 남파랑길, 2022년 서해랑길에 이어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 길이 개통되면서 15년 만에 완성됐다.
이 가운데 서해랑길은 전남 해남 땅끝탑에서 인천 강화도까지 이어지는 총 109개 구간,
1800km의 길이다.
2022년 개통됐으며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
이용객이 가장 많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코스다.
부안 해안은 그 1800km 안에 있다.
전북 지역 관광 안내 사이트는 천리길·서해랑길투어라는 메뉴 아래 부안군 마실길 코스를 그대로 배치한다. 같은 구간이 변산마실길로도, 서해랑길로도, 전북천리길로도 안내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검증이 필요한 지점이 생긴다.
동일한 해안 구간이 세 개의 사업 명칭 아래 각각 계상되고 있다면,
총연장 통계에 중복이 존재한다.
4500km와 1800km와 66km가 서로 배타적인 숫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관리 주체도 중첩된다.
코리아둘레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며,
해파랑길 제안에서 출발해 코리아둘레길을 개척하고 관리해온
문체부 산하 비영리법인 사단법인 한국의길과문화가 실무를 맡아왔다.
현장은 코리아둘레길 지킴이가 관리한다.
여기에 전북특별자치도의 천리길 사업과 부안군의 마실길 사업이 겹친다.
같은 5.3km를 누가 정비하고 누가 안내판을 세우며 누가 예산을 집행하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각 사업이 같은 구간에 대해 별도로 예산을 편성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코리아둘레길 개통식에서 문체부 1차관은
이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제2의 순례길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교 대상이 명시된 셈이므로 그 대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길과 포르투갈 길, 북부 길 등 다섯 개 주요 코스로 구성되며
가장 긴 프랑스 길은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다.
걷는 데 40일가량 걸린다.
이 길은 무료 개방형이다.
입장 게이트가 없고 탐방료도 없다.
그럼에도 통계가 존재한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국은 매년 완주자 통계를 발표한다.
2023년 한 해 순례길을 완주한 사람은 44만 6,035명으로 집계됐다.
집계가 가능한 이유는 제도에 있다.
순례자는 크레덴시알이라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는다.
발급 비용은 2유로다.
순례길을 걸으며 알베르게와 성당과 관공서에서 스탬프를 받고,
종착지에서 완주를 증명해 증명서를 받는다.
발급과 증명 과정이 그대로 통계가 된다.
무료 개방형 도보길이라는 조건은 집계 불가의 사유가 아니다.
코리아둘레길 4500km에 연간 몇 명이 걷는지,
완주자가 몇 명인지에 대한 집계 체계가 산티아고와 같은 형태로 구축돼 있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하루 20~25km를 걸을 경우 완주에 6~8개월이 걸리는 길이다.
2코스에는 두 종류의 꽃이 있다.
붉노랑상사화는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핀다.
샤스타데이지는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핀다.
부안군은 2023년 샤스타데이지 개화기를 5월 13일부터 6월 6일까지로 안내했다.
군락 위치도 공개돼 있다.
샤스타데이지는 2코스 시점부를 중심으로 1코스 시점부와 4코스 언포 일원에 분포한다.
여기서 표현 하나를 짚을 필요가 있다.
부안군과 지역 언론은 이 군락지를 두고
일관되게 조성되어 있다고 쓴다.
자생이 아니라 식재라는 뜻이다.
샤스타데이지는 국내 자생종이 아니다.
원예 목적으로 도입돼 재배되는 품종이다.
담당 부서도 관광 부서가 아닌 부안군 환경과다.
2026년 개화기 보도자료에서 환경과 과장이 주차 안내와
꽃밭 훼손 방지를 당부하는 코멘트를 냈다.
부안군 공식 안내는 변산마실길의 계절별 볼거리로
유채와 샤스타데이지, 상사화, 꽃무릇을 나란히 열거한다.
이 가운데 국내 자생종은 상사화 하나다.
꽃무릇 역시 자생종이 아니며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의 대규모 군락도 식재에서 비롯됐다.
네 종류의 꽃 가운데 셋이 심은 꽃이다.
지자체의 외래 원예종 식재는 이미 검증을 거친 사안이다.
국립생태원은 2018년 11월 핑크뮬리를 관심 외래식물로 분류해 조사에 착수했고,
2019년 12월 위해성평가위원회를 통해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판정했다.
2급은 당장의 위해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향후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생물다양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단계를 뜻한다.
환경부는 이후 매년 전국 지자체에 식재 자제를 권고해왔다.
숫자는 권고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전국 지자체의 핑크뮬리 조성 면적은 2만 4,950㎡였다.
전년 2만 1,987㎡보다 13.47% 늘었다.
같은 2급인 큰금계국은 2021년 2만 8,872㎡에서 2023년 3만 3,196㎡로 증가했다.
증가한 이유는 명확하다.
2급에는 식재를 강제로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
법적 규제가 가능한 생태계교란 생물은 현재 1속 36종이며 그 바깥은 권고의 영역이다.
권고와 규제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면적 증가로 나타난 셈이다.
국립생태원이 덧붙인 단서가 이 사안의 핵심이다.
자생종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무분별한 식재를 자제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단서가 왜 이 지역에 적용되는지는 자생지 분포를 보면 드러난다.
부안 지역의 붉노랑상사화 자생지는 다섯 곳으로 기록돼 있다.
새재 구시계곡, 가마소계곡, 사자동 봉래계곡, 내소사 뒤 계곡,
그리고 변산마실길 송포에서 고사포에 이르는 구간이다.
앞의 네 곳은 계곡이다.
마지막 한 곳만 해안 관광로 위에 있다.
정리하면 2코스의 구조는 이렇다.
군 순찰로였던 자리에,
부안의 다섯 자생지 중 유일하게 관광로에 노출된 붉노랑상사화 군락이 있고,
그 시점부에 외래 원예종이 조성돼 있다.
국내 학술 조사에서는 원예 목적으로 심은 샤스타데이지가
식재 구역을 벗어난 화단과 나지에서도 발견돼 확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다만 샤스타데이지가 생태계 위해성 평가를 받았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된 것은 1속 36종이며 여기에 샤스타데이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평가 대상이라면 핑크뮬리의 전례가 그대로 적용된다.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사실 자체가 다른 질문이 된다.
붉노랑상사화 자생 군락의 개체수와 연도별 변동에 대한 조사 자료 역시 공개된 바 없다.
열매를 맺지 않고 비늘줄기로만 번식하는 종이므로 훼손이 발생할 경우 회복 속도가 느리다.
개체수 기초 자료가 없으면 훼손 여부 자체를 판정할 수 없다.
같은 군 안에 다른 사례가 있다.
변산반도 서쪽 약 15km 지점의 위도에는 위도상사화가 있다.
세계에서 그 섬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이며,
전북대 연구진이 학계에 보고해 고유한 학명을 얻었다.
상아빛에 가까운 흰색으로 연노랑의 붉노랑상사화와 구별된다.
8월 둘째 주 이후 꽃대가 올라와 8월 20일경부터 말경까지 절정을 이룬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 꽃을 몸부리대라 불렀다.
꽃대를 바닷물에 담가 독소를 제거해 이용해온 생활문화가 함께 전해진다.
2026년 9월 5일과 6일 위도해수욕장 군락지 일원에서 제11회 위도상사화 축제가 열렸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주최하고 주민이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는 축제다.
부안군 농업기술센터의 자문을 받아 2020년부터 군락지의 성장 과정을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관리해왔다는 기록도 있다.
한쪽은 자생 군락을 축제의 중심에 두었다.
다른 쪽은 자생 군락 옆에 외래 원예종을 심었다.
같은 군에서 같은 속의 식물에 대해 두 가지 방식이 동시에 운용되고 있다.
다만 위도 사례에도 확인이 필요한 대목은 남는다.
2019년 한 언론 보도는 위도면 관계자를 인용해 꽃의 작황이 좋지 않아
전년에 이어 그해도 축제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제6회 축제가 개최된 기록이 별도로 존재한다.
두 기록은 일치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019년에 6회였던 축제가 2023년에 8회였고 2026년에 11회다.
회차의 간격이 연도와 맞지 않는다.
결번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 연도와 사유는 공개된 바 없다.
군락지를 재정비했다는 기록의 구체적 내용도 마찬가지다.
자생 군락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어느 범위까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1988년 6월 우리나라 열아홉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전체 면적 153.934㎢ 중 육상이 약 89%,
해상이 약 11%를 차지한다.
산악부인 내변산과 해안부인 외변산을 함께 품은 국내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이다.
외변산은 변산해수욕장과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이 있는 해안 지대가 주를 이룬다.
고사포 야영장은 국립공원 예약시스템을 통해 운영된다.
국립공원공단이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변산마실길 2코스는 송포항에서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 성천항에 이른다.
조성 당시 보도는 마실길에 대해 국립공원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길을 만든 것이 장점이라고 서술했다.
그렇다면 확인되어야 할 것이 있다.
2코스 중 공원구역에 포함되는 구간은 어디까지인가.
공원구역 안에서 이뤄진 식재에 대해 공원관리청과의 협의나 허가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어떤 판단으로 승인됐는가.
공원구역은 자연보존지구와 자연환경지구 등 용도지구로 다시 나뉜다.
어느 지구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의 강도가 달라진다.
2코스 각 지점의 지구 구분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어느 답이 나오든 다음 질문은 남는다.
자생 군락과 외래 원예종을 나란히 둔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으며,
그 판단을 기록한 문서는 존재하는가.
이 일대에는 지위가 하나 더 겹친다.
채석강과 적벽강, 솔섬 등을 포함한 전북서해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권역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보전과 활용의 균형을 인증 요건으로 삼으며 주기적인 재인증 심사를 받는다.
자생지 인접 구역의 외래종 식재가 이 심사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
심사 항목에 서식지 관리가 포함되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같은 5.3km 위에 최소 네 개의 지위가 겹쳐 있다.
국립공원 구역,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권역, 코리아둘레길 서해랑길 구간,
그리고 부안군 관광사업 구역이다.
여기에 자생식물 군락지라는 생태적 지위가 더해진다.
각각의 관리 주체가 서로의 행위를 검토했는지를 확인한 기록은 없다.
법이 부재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존재하는 제도를 이 구간에 대조한 주체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 사안에서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통계의 부재다.
변산마실길의 이용자 통계는 공개된 바 없다.
걷기길은 무료 개방형이라 입장 집계 지점이 없다는 것이 통상의 설명이다.
그 결과 66km 구간에 연간 몇 명이 다녀가는지,
코스별로 얼마나 쏠리는지,
개화기에 얼마나 몰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안군 보도자료에는 방문객이 꾸준히 증가한다는 표현과 발 디딜 틈이 없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숫자는 한 번도 제시되지 않았다.
한편 부안군 변산면 소개 자료에는 해마다 1,0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문장이 있다.
산정 근거와 방식은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
숫자가 없거나,
있으면 근거가 없다.
통계의 이중구조도 존재한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주요관광지점 입장객통계는 지자체가
문화체육관광부에 행정보고하는 보고통계이며,
지자체가 자체 발표하는 관광객 수와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입장객 통계는 익년도 5월 확정치가 공표되기 전까지 모두 잠정치다.
같은 지역의 관광객 수가 어느 자료를 인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료 개방형이라 집계가 어렵다는 설명은 검증이 가능하다.
같은 조건에서 집계를 수행하는 사례가 국내에 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는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에서 광치기해변까지 15.6km의 1코스를 개통했고,
5년 2개월 뒤인 2012년 11월 21코스 개장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잇는 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이후 부속 코스가 더해져 현재 27개 코스, 437km 규모다.
운영 주체는 사단법인 제주올레다.
지자체 부서가 아니라 전담 법인이다.
집계 체계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여행자는 올레 패스포트를 소지하고 코스마다 설치된 스탬프를 찍는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QR 스탬프를 기록하는 방식도 병행된다.
일정 거리를 채우면 완주증이 발급된다.
발급 기록이 그대로 통계가 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수치가 산출된다.
2026년 상반기 제주올레 100km 완주증을 발급받은 외국인은 1,773명으로
2025년 같은 기간 715명보다 약 1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내국인 완주자는 1,382명이었다.
외국인 완주자가 내국인을 추월한 것이다.
월별 탐방객 수도 집계된다.
2026년 7월 탐방객은 2만 9,828명,
8월은 3만 5,734명으로 두 달 모두 전년 동기보다 증가했다.
이 정도 해상도의 데이터가 있으면 정바카라 판단이 가능해진다.
외국인 완주자가 내국인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제주올레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글로벌 걷기여행자 인솔 프로그램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워킹메이트를 전 코스로 확대해 외국인 여행자의 걷기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집계가 있으면 대응이 나온다.
안전 관리도 마찬가지다.
제주올레 콜센터는 제주특별자치도 생태관광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운영되는 탐방 지원 창구다.
나홀로 탐방객의 안전 확인, 코스와 교통 정보, 코스 통제와 변경에 따른 우회 코스 안내를 담당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27개 코스의 GPS 트랙을 실시간 제공하고 코스 이탈 알림과
스탬프 위치 알림을 제공하며 화장실과 공식 안내소, 구급함 위치를 표시한다.
제주올레 역시 무료 개방형 걷기길이다.
입장 게이트가 없고 탐방료도 없다.
제7부의 반론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무료 개방이라는 조건만으로는 집계 부재가 설명되지 않는다.
산티아고는 순례자 여권으로, 제주올레는 패스포트와 완주증으로 집계한다.
두 사례 모두 게이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차이는 조건이 아니라 체계다.
논의의 균형을 위해 사업 주체 측 조건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방치된 길을 재활용한 조성 방식은 신규 토목을 수반하지 않는다.
간벌재를 푯말과 보수 재료로 사용한 것도 저비용 친환경 접근에 해당한다.
대규모 시설을 신축하는 관광개발과 비교하면 물리적 개입이 현저히 적다.
이 점에서 조성 방식 자체는 보존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선택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외래 원예종에 대한 규제 공백은 제도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생태계 위해성 2급에 식재를 금지할 근거가 없는 이상,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권고를 이행할 유인은 크지 않다.
전국 지자체의 조성 면적이 계속 증가한 것이 그 방증이며,
부안군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코스 체계의 혼선도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각기 다른 안내를 유지해온 결과다.
4구간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이고
12코스라는 표기가 등장하는 것은 한국관광공사 자료다.
사업 명칭의 중첩 역시 국가 사업이 지자체 사업 위에 얹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결과이며,
개별 지자체가 설계한 것이 아니다.
인구 감소와 재정 여건도 고려돼야 한다.
전담 조직을 두고 집계 체계를 운영하는 데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제주올레는 사단법인이 전담하고 있으며 제주도는 조례로 이를 뒷받침한다.
같은 수준의 체계를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즉 현재의 상태는 특정 지자체의 태만보다
제도 설계의 공백과 성과 측정 인프라의 부재가 누적된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그 공백이 설명 바카라임까지 면제하지는 않는다.
200km 계획의 소멸에 대한 미설명,
식재 이력과 협의 여부의 미공개,
근거 없는 관광객 수치의 유통은 제도 공백과 무관하게
개별 행정 주체의 선택에 속한다.
그리고 집계 체계의 부재는 무료 개방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체계 설계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제주올레와 산티아고 사례에서 확인된다.
지금까지의 검토에서 도출되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걷기여행길의 표준 집계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
산티아고의 순례자 여권과 제주올레의 패스포트는 게이트 없이도 집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통신 기지국 기반 방문자 데이터와 카드 소비 데이터를 병용하는 방식은
이미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구축돼 있다.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에 공통 적용하면 길 사이의 비교도 가능해진다.
둘째, 코스 체계가 일원화돼야 한다.
4구간과 6코스와 8코스와 12코스가 동시에 통용되는 상태에서는 어떤 통계도 축적되지 않는다.
셋째, 사업 명칭의 중첩 구간에 대한 예산과 관리 바카라임이 정리돼야 한다.
동일 구간이 코리아둘레길과 광역 사업과 기초 사업에 각각 계상돼 있다면
총연장 통계와 예산 집행 내역 모두 재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자생지 인접 구역의 식재에 대한 사전 검토 절차가 필요하다.
국립생태원이 이미 자생종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서의 식재 자제를 권고한 이상,
그 판단을 누가 어느 단계에서 수행할 것인지가 정해져야 한다.
다섯째, 생태계 위해성 평가의 대상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
지자체가 대규모로 식재하는 외래 원예종 가운데 평가를 거치지 않은 종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돼야 한다.
여섯째, 국립공원 구역과 지질공원 권역이 겹치는 지자체 사업에 대해
관리 주체 간 협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네 개의 지위가 겹친 구간에서 누구도
상대의 행위를 검토하지 않는 상태가 현재의 결과다.
일곱째, 미완의 계획에 대한 공개가 필요하다.
200km 계획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고 왜 중단됐으며
얼마가 집행됐는지는 행정 문서로 확인 가능한 사안이다.
여덟째, 명품길 선정의 사후 관리 체계가 재검토돼야 한다.
14년 전의 선정이 현재의 관리 상태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 글이 확인한 사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변산마실길의 원래 계획은 약 200km였고 그중 순환연결형 코스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재는 66km다.
중단 시점과 사유,
집행 예산은 공개된 바 없다.
이 길은 새로 낸 길이 아니라 방치된 길을 되찾은 것이다.
2코스와 3코스는 해안 초소를 잇던 순찰로다.
노폭은 두 사람의 교행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같은 길을 두고 4구간과 6코스와 8코스와 12코스라는 네 가지 체계가 동시에 통용된다.
재편의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구간이 변산마실길과 서해랑길과 전북천리길로 각각 안내된다.
예산과 관리 바카라임의 분담은 확인되지 않는다.
부안의 붉노랑상사화 자생지 다섯 곳 중 네 곳은 계곡이고 한 곳만 해안 관광로 위에 있다.
그 한 곳의 시점부에 외래 원예종이 조성돼 있다.
전국 지자체의 위해성 2급 외래종 조성 면적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증가했다.
2024년 9월 기준 핑크뮬리는 전년 대비 13.47% 늘었다.
샤스타데이지가 위해성 평가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코스가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되는지,
식재에 대해 공원관리청과 협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길의 이용자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연 1,000만 명이라는 수치가 유통된다.
한편 산티아고는 2023년 완주자 44만 6,035명을 집계했고,
제주올레는 2026년 상반기 외국인 완주자 1,773명과 8월 탐방객 3만 5,734명을 집계했다.
두 곳 모두 무료 개방형이며 입장 게이트가 없다.
방치된 길을 되찾았다는 설명은 사실일 것이다.
되찾은 것은 길이었다. 그 길에 이름을 붙이고 꽃을 심고 명품이라 부르는 데 14년이 걸렸다.
그동안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만들지 않았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길에 이름을 붙이는 데는 예산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길을 만드는 데는 든다.
세는 데도 든다.
지난 14년간 어느 쪽에 쓰였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