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제도는 다른 문제다
매년 여름이면 서울광장 앞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그 맞은편에서 반대 집회가 열린다.
이 풍경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질문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논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개인의 성적 지향이 아니라,
그 지향을 근거로 슬롯 전체의
룰을 바꾸자는 요구다.
개인의 사생활과 결혼·군대·법이라는
슬롯의 근간 제도는 층위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는
이 둘이 자꾸 하나로 뭉뚱그려진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모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룰을 바꾸기 전에,
우리 슬롯가 정말
합의에 도달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성소수자가 한국에 몇 명이나 되는지,
정부 차원의 공식 실태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 항목이 오류 없이 입력 가능해졌지만,
국가데이터처는 이를 "적극적 자료수집이 아니라
조사 누락 방지용 기술 조정"이라고 규정했다.
성소수자 통계를 만들려는
목적의 조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의당은 이를
"혼인평등소송 등 지속적인
가시화 노력의 결과"라며 환영했지만,
이 응답 결과가 실제 통계로 발표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은 역사적 진전으로,
정부는 기술적 조정으로 설명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은
해외 민간조사를 근거로 150만에서
3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인용해왔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는 한국인의 3%가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답했다고 집계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는
2023년 조사에서 6%라는 수치를 내놨다.
같은 나라를 조사했는데
결과가 두 배 차이가 나는 이유는
표본 설계와 질문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수치들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추정치"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 추정치는 기사와 정바카라 제안서에서
반복 인용되며 검증된 통계처럼 유통되고 있다.
근거가 흔들리는 숫자 위에
결혼 제도 개정이나 차별금지법 같은
무거운 정바카라 요구가 쌓이고 있는 셈이다.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뜻이다.
모르는 규모를 근거로 제도를 바꾸자는 건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다.
한국갤럽이 2001년부터 홀수해마다 추적해온
동성결혼 법제화 찬반 조사를
시계열로 짚어보면 흐름이 뚜렷하다.
2001년 찬성 17%,
2013년 25%,
2019년 35%,
2021년 38~40%,
2023년 40%.
20년 넘게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려온 셈이다.
찬반 격차도 2019년 20%포인트 이상에서
2023년 11%포인트까지 좁혀지며,
절반을 넘길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2025년 10월 조사에서 흐름이 꺾였다.
찬성 34%,
반대 58%.
찬반 격차는 24%포인트로,
2년 사이 두 배 넘게 벌어졌다.
주목할 부분은 이 반전을 이끈 집단이다.
가장 개방적이라고 여겨졌던 20·30대와
진보 성향층에서 찬성 응답이 꺾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찬성 17%,
반대 79%로 완고했고,
민주당 지지층·진보층조차
찬성 45%, 반대 49%로 팽팽해졌다.
이 결과를 "극우 정치의 부상"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여론조사 문항의 성격을 놓치고 있다.
막연히 "관용적이어야 한다"고 답하는 것과,
"결혼이라는 구체적 제도 안에 들일 것인가"를 묻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다.
법제화 논의가 국회 문턱까지 가까워질수록,
응답자들은 더 신중하게 답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데이터에 더 부합한다.
같은 갤럽 조사에서는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도 물었다.
"후천적 요인"이라는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응답은 23%였다.
"양쪽 모두 영향"이라는 응답이 15%였다.
성소수자 인권 담론은 대개
"타고난 것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전개돼 왔다.
그런데 정작 시민 다수는
그 전제 자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 간극은 그동안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응답 역시
2023년 51%에서 2025년 48%로 소폭 하락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43%였다.
세 문항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관용적 정서는 유지되지만,
그걸 뒷받침하던 전제와
공감의 강도는 조금씩 물러서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2025년 7월 발표한 조사는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62%가
"우리 슬롯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답했다.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받아들이지 않는 쪽으로
바뀐다는 응답은 8%에 그쳤다.
그런데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는 인식과,
그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은
별개라는 뜻이다.
같은 조사에서는
또 하나의 균열이 확인된다.
비혈연 관계,
즉 온라인 게임동료나 지인에 대해서는
비교적 수용적이지만,
혈연관계인 자녀나 형제가
성소수자일 경우로 가면
수용도가 뚜렷이 낮아진다.
남의 일일 때는 괜찮고,
내 일이 되면 괜찮지 않다는 얘기다.
이 이중적 태도를
곧바로 위선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는 사람들이 추상적 관용과
구체적 제도 변화를 본능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
슬롯통합실태조사도 있다.
2021년 조사에서
"성소수자를 이웃이나 온라인 게임동료,
친한 친구 등 어떤 관계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54.1%였다.
같은 문항에서
외국인 이민자·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12.9%, 장애인은 3.1%였다.
소수자 집단 중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 응답이
유독 높다는 뜻이다.
이 수치를 '혐오'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오히려 이 숫자는 한국 슬롯가
아직 이 사안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봐야 한다.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만 앞서 나가면,
그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갈등의 형태로 축적된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2025년 HIV/AIDS 신고 현황 연보'에 따르면,
2024년 신규 HIV 감염인은 927명이었다.
이 중 성 접촉을
감염 경로로 응답한 사람 가운데
동성 간 성 접촉이 328명,
62.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3년 자료에서도
감염 경로 응답자 566명 중
성 접촉이 564명(99.6%)이었고,
이 중 동성 간 성 접촉이 306명,
54.3%였다.
이 비중은 최근 수년간
절반을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수치 자체는 명확한 공적 통계이며,
축소하거나 외면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 통계를 다룰 때는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
HIV와 성매개감염병 전체는 다른 범주다.
클라미디아, 임질, 매독 등
다른 성매개감염병은
국내 전체 통계로 보면
이성 간 성 접촉을 통한 감염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성애자 인구 자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HIV라는 특정 질환에 한해서만
동성 간 성 접촉의 비중이
두드러진다는 게 정확한 서술이다.
둘째,
방역 당국과 국제 보건기구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원인은
성적 지향 자체가 아니라
특정 성행위 방식의 전파 위험이다.
항문성교는 질성교보다 점막 손상 위험이 커서
1회 접촉당 전파 확률이 통계적으로 높다.
이는 이성 간 항문성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위험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라서 걸린다"는 명제는
통계의 과잉 일반화다.
반면 "특정 성행위 방식에 따른
전파 위험이 역학적으로 확인되는데,
이에 대한 공중보건 대응과
예방 교육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통계에 부합하면서도 특정 집단 전체를
매도하지 않는 접근이다.
정바카라의 언어로 옮긴다면,
이 통계가 요구하는 건
낙인이 아니라 표적화된
예방 보건 정바카라이다.
군형법 92조의6 폐지론의
핵심 논리는 이렇다.
강제성이 있는 행위는
강간죄로 처벌하면 되는데,
합의된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건
과도하다는 것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이 조항으로 기소된 건수가 15건에 불과하고,
같은 기간 군 성범죄 전체 1874건에 비해
미미하다는 통계도 폐지론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지운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위계 조직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장기간 공동생활이 이뤄진다.
민간 슬롯의 '자발적 합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했을 때,
그것이 진정한 합의인지 사실상의 강요인지
사후에 명확히 가르기는 매우 어렵다.
92조6은 바로
그 회색지대를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는 게 존치론의 핵심이다.
기소 건수가 적다는 사실을 곧바로
"필요 없는 법"이라는 결론으로
연결하는 것도 성급하다.
형법의 예방적 기능은
기소 건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처벌 규정의 존재 자체가
시도 자체를 억제하는
심리적 장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사라지면,
남는 건 "합의였다"는 가해자 측 주장과
그것을 반박해야 하는 피해자의 부담뿐이라는
우려가 존치론의 근거다.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재판관 5대4의 근소한 표차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절반에 가까운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냈다는 사실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다수 의견은 이 조항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법원 내부에 균열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2022년 판례를 변경해,
이 조항의 보호법익에 군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되므로
사적 공간에서의 자발적 합의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2023년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판례 변경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두 기관의 판단이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사례도 있다.
강원도의 한 모텔에서 만난
두 현역 군인이 기소된 사건은,
1심 선고유예,
항소 기각,
2022년 대법원 파기환송,
2023년 서울고법 무죄 확정이라는
5년의 소송전 끝에 무죄로 종결됐다.
이 균열은
"법을 아예 폐지하자"는 결론보다는
"조항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읽는 게 합리적이다.
군대는 인권 논의의 실험장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방력이 유지돼야 하는 조직이고,
그 안의 규율은 민간의 잣대로
쉽게 재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일곱 번 발의되고
일곱 번 폐기된 역사를,
일부 시민단체는
'차별과 혐오 세력의 승리'로 서사화한다.
연대기를 따라가 보면
좀 더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정을 약속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법안을 확정했다.
2007년 법무부가 정부 수립 후
최초로 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성적지향, 학력,
가족형태,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등
7개 항목이 삭제됐다.
그렇게 축소된 법안조차
2008년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011년 두 차례,
2012년, 2013년 두 차례
발의와 폐기가 이어졌다.
2013년 4월에는
발의된 법안이 아예 철회됐다.
그 뒤로 2020년까지 7년 동안
어떤 국회의원도 이 법안을
다시 발의하지 않았다.
이 침묵을 시민단체는
좌절의 시간이라 부르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슬롯적 반발이 워낙 컸기 때문에
정치권 스스로 이 문제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판단한 시간이었다는 해석이다.
2020년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이상민, 박주민, 권인숙 의원 등이
잇따라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2021년에는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서명이 성사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해 국회 법사위 공청회는
국민의힘 의원 없이
민주당 의원들만 참석한
반쪽짜리 공청회로 진행됐다.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공청회 일정에 대한
항의였다는 배경도 함께 봐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차별하지 말자"는 선언적 조항이 아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기업의 채용 재량권과
실제로 충돌하는 지점을 만든다.
2007년 최초 법무부안에서
성적지향을 포함한 7개 항목이
가장 먼저 삭제된 것도,
이 조항들이 얼마나 예민한 쟁점인지를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결과였다.
18년 동안 일곱 번 상정되고
일곱 번 폐기됐다는 사실을
'혐오 세력의 승리'로
단순화하는 건 성급한 해석이다.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면
반작용이 더 크게 돌아온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다.
2025년 산업노동학회가 발표한
성소수자 노동 실태조사를 보면,
구직·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69%,
온라인 게임 내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응답이 73.3%에 달했다.
이 수치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이나 부당한 인사평가가 있다면
개별적으로 시정돼야 할 문제다.
다만 이 통계가 곧바로
"그러니 결혼 제도와 차별금지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행하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온라인 게임 내 차별 문제는
기존의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체계 안에서도
상당 부분 다룰 수 있는 사안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새로운 법 체계 전체를 도입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단정하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입소스의 국제 비교 조사를 보면,
한국인 70%가 "트랜스젠더는
슬롯적으로 상당한 차별을 받는다"고 답했다.
글로벌 평균 67%보다 높은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 70%가
"취업·주거·상업시설 이용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이 결과는 앞서 살펴본
이중적 여론 구조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한국 시민 다수는
"일상적 차별은 안 된다"는 원칙에
이미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그 원칙과,
"결혼 제도를 바꾸자"거나
"군대 규정을 없애자"는
요구 사이에 놓인 간극이다.
전자에 대한 동의를
후자에 대한 동의로 확장해서
해석하는 것이 지금 담론의 문제다.
한국청소년정바카라연구원이 실시한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도 있다.
조사 대상 청소년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평균 연령은 13.8세였다.
대부분 청소년 초기에
이런 인지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절반 이상은 자신의 정체성에
편안함과 자긍심을 느끼고,
정체성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확인된 건강 관련 수치도 있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7.4%,
에이즈 검사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9.6%였다.
음주율과 흡연율은
일반 중고생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10대 초반부터 형성되는 정체성 문제를
성인 슬롯의 제도 논쟁과 곧바로 연결 짓는 담론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의 성정체성 논의와,
성인 대상 결혼·병역 제도 논의는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 사건은
이 논쟁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2017년 임관해
전차 조종수로 복무하던 그는
2019년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2020년 1월 군은 신체 변화를
심신장애 3급으로 판정해 강제 전역시켰다.
그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겠다며 소송을 냈지만,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21년 3월
청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7개월 뒤
대전지법은 강제전역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고,
국방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순직 인정에는
다시 시간이 걸렸다.
2022년 4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순직 인정을 요청했지만,
육군은 그해 12월
이를 거부하고 '일반사망'으로 처리했다.
국방부가 최종적으로
순직을 인정한 건 2024년 4월,
사망 3년 1개월 만이었다.
이 사건이 안타까운 개인의 비극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사건이
"그러니 군의 신체 기준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군은 병사의 신체적 조건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법원이 지적한 건 이 사안에서의 절차적 위법성,
즉 강제전역이라는 처분 방식의 문제였지,
신체 기준 자체를 전면 폐기하라는 취지는 아니었다.
절차의 문제와 기준 자체의
정당성 문제는 층위가 다르다.
한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제도 전체를 되돌리는
근거로 쓰는 방식에 대해서는,
언론이 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2006년부터 시작된 입법운동이
실제 법제화까지 이르는 데 13년이 걸렸다.
중국과의 양안 관계라는
특수한 정치 지형,
여러 차례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형성된
다원적 정체성이라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 위에서 이뤄진 변화였다.
타이베이 시먼딩에는
이를 기념하는 무지개 길이 조성돼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됐지만,
그 상징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20년 가까운 슬롯적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주 생략된다.
태국 역시 2013년부터 시작된 운동이
단계적으로 제도를 넓혀가며
법제화에 이르렀다.
두 나라 모두 갑작스럽게 바뀐 게 아니라,
10년 넘는 슬롯적 논쟁과
합의 과정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담론에서는 이 과정이 자주 생략된 채,
"대만도 태국도 벌써 했는데
한국만 뒤처졌다"는 결과만 강조된다.
이런 프레임은 은근히 한국을
'뒤처진 나라'로 규정하며
압박하는 수사에 가깝다.
이 비교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과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만도 13년,
태국도 10년 넘게 논쟁했다.
한국이 그 논쟁의 시간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결과만 따라가려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세계적으로 봐도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는 30개국 안팎으로,
유엔 회원국 전체의 6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 대다수 국가는
아직 법제화하지 않았거나,
동성애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곳도 있다.
'세계적 흐름'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엔
실제 지형은 훨씬 복잡하다.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논쟁에 또 다른 참고점을 준다.
일본은 동성혼을 법제화하지 않았다.
2021년 삿포로지방법원은
"성적 지향은 사람의 의사로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며 동성 커플이
혼인의 법적 효과를 전혀 받지 못하는 건
차별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동성혼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동성혼 자체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법제화 대신 일본이 택한 방식은
지자체 단위의 '파트너십 제도'다.
2015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증명서 형태로,
공영주택 입주나 병원 수술 동의서 작성 같은
제한된 영역에서만 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해준다.
2022년 기준 239개 지자체가 도입해
일본 인구의 60%가량이
이 제도가 있는 지역에 거주하게 됐지만,
이는 결혼이라는 국가 단위 법적 제도와는
분명히 다른 층위의 조치다.
이바라키현처럼 보수 성향 지방의회가
강하게 반대한 지역에서는,
의회 의결이 필요 없는
'요강 제정' 방식으로 우회해
도입한 사례도 있다.
법과 조례 사이,
국가와 지자체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간 셈이다.
이스라엘도 흥미로운 사례다.
이스라엘 최고법원은
동성혼을 법제화하지는 않았지만,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혼인한
동성 커플의 혼인 관계는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법 개정이라는 정면 돌파 대신,
개별 판례를 통해 실질적 권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결혼이라는 완결된 제도 대신,
'생활동반자법'처럼 혼인·혈연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관계를 부분적으로 보호하는
대안 입법이 수년째 논의되고 있다.
일본과 이스라엘의 경로가 보여주는 건,
법제화냐 완전한 배제냐라는
이분법 말고도 슬롯가 택할 수 있는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성급한 전면 개정과 무조건적 반대 사이에,
단계적이고 제한적인 절충안을 논의할 여지가
아직 한국에는 충분히 남아 있다.
차별금지법이 1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는
조직적인 반대 운동의 역할도
있었다는 사실을 짚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결성된
에스더기도운동본부는 북한 선교,
이슬람권 선교와 함께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요 사업으로 내걸어온 개신교 단체다.
이 단체는 차별금지법을
10년 넘게 국회에 계류시킨 데
스스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해왔다.
방식은 대규모 기도회와
국회의원 대상 문자·서한 캠페인이다.
2025년 9월에도
성평등가족부 확대 개편과 생활동반자법,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국민대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거룩한방파제'라는 연대체는
법안 저지를 위한 지역 국회의원 면담 전략까지
구체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신앙의 자유와 양심·학문·언론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지역구 의원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조직적 반대를 무조건
'비이성적 혐오'로 치부하는 것도,
반대로 이것이 없었다면
법이 진작 통과됐을 거라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다만 분명한 건,
차별금지법 18년의 역사는
시민슬롯 내부의 자연스러운
여론 형성 과정만이 아니라,
조직된 두 힘 그러니까
법제화를 요구하는 인권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종교 기반 시민단체가
팽팽하게 맞서온 결과라는 점이다.
어느 한쪽의 서사만으로
이 법의 정체를 설명하는 건
절반의 진실이다.
이 사안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는
정당별로 뚜렷하게 갈린다.
2025년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동성결혼 법제화 반대는
79%에 달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찬성 45%,
반대 49%로 팽팽하게 나뉘어,
당론으로 밀어붙이기엔
내부 여론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조차
이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군형법 92조6 폐지나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핵심 쟁점에서,
집권 여당이 명확한 당론으로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사안이 진보 정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이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슬롯의 근간 제도를 바꾸는 문제가,
정작 그 제도 변경을 요구하는
정치 세력 내부에서조차
확고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요구가 '슬롯 전체의 합의'라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개인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모욕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건 별개의 문제이며,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
결혼 제도·병역 제도·차별금지법 같은
슬롯의 근간 규칙을 바꾸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룰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랜 시간 슬롯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합의해온 최소한의 질서다.
그 룰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무너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성급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충분하고 정직한 슬롯적 합의다.
숫자를 다시 정리해보자.
찬성 34%,
반대 58%.
검증되지 않은 인구 추정치.
18년째 통과되지 못한 법.
절반에 가까운 재판관이 이견을 낸 합헌 결정.
우리는 정말 그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도달하지도 않은 합의를
도달한 것처럼 포장해온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