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이라는 말의 반경
열일곱 개 군이다.
연천, 정선, 청양, 순창, 신안, 영양, 남해.
지난해 10월에 뽑힌 일곱 곳이다.
12월에
옥천, 장수, 곡성이 붙었다.
올해 6월에
구례, 보성, 화천, 보은, 진안, 무주, 청송이 더해졌다.
2026년 2월부터
이 군들의 주민 통장에 매달 돈이 들어간다.
1인당 월 15만원.
지역사랑상품권이다.
두 번째로 선정된 일곱 개 군의
첫 지급 규모만 567억원이었다.
7월분 소급액이 포함된 금액이다.
대상은 18만5천여 명.
8월 23일 기준 신청률은 92.7%였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정바카라에 공식적으로 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 먼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광역자치단체 사업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중앙정부 예산이 들어가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하고,
보건복지부 안에 기본소득기획팀이 생겼다.
중앙부처에 기본소득이 명시된 팀이
만들어진 건 처음이다.
담론이 행정이 됐다.
이 정도 규모의 제도가
조용히 시작된 경우는 드물다.
도시에서는 거의 체감되지 않았지만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농어촌 기본소득은
농어촌 지역의 핵심 쟁점이었다.
많은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이 제도에는
아직 아무도 제대로 묻지 않은 것들이 있다.
기본소득에는 정의가 있다.
학계와 국제 기본소득 네트워크가
오래 다듬어온 다섯 가지 요건이다.
보편성.
모두에게 나눠준다.
소득이 많든 적든,
일하든 안 하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모두 똑같이.
무조건성.
근로 여부나 소득 심사 없이 준다.
자격을 가려내는 절차가 없다는 뜻이다.
심사가 없으니 심사 비용도,
심사받는 사람의 낙인도 없다.
개별성.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준다.
가구 단위 급여는 세대주에게 몰리기 때문이다.
정기성.
일정한 주기로 계속 준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정권이 바뀌든 말든 이어진다.
현금성.
현물이나 바우처가 아닌 현금으로 준다.
무엇에 쓸지는 받는 사람이 정한다.
여기에 충분성을 더하기도 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충분성은 요건에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다섯 개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이 중 몇 개를 지키고 있을까?
보편성부터 보자.
전국민이 아니다.
지방분권균형발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군의 주민에게만 준다.
처음 공모 대상이 69개 군이었고,
그중 열 곳이 먼저 뽑혔다.
남은 59곳을 대상으로
두 번째 공모를 했고
일곱 곳이 추가됐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열일곱 곳이다.
현금성도 아니다.
지역사랑상품권이다.
군 밖에서는 쓸 수 없다.
가맹점이 아니면 쓸 수 없다.
무조건성도 온전하지 않다.
청송군은 신청일 기준
30일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청송군을 주된 생활권으로 삼아
주 3일 이상 실거주하는지를 파악한 뒤 지급한다.
남는 것은 개별성과 정기성이다.
그런데 정기성도 흔들린다.
이 사업은 2026년과 2027년,
2년짜리다.
다섯 중 하나 반쯤 남는다.
이름은 기본소득인데
실체는 지역 한정 조건부 상품권이다.
이 지적은 반대 진영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에서 먼저 나왔다.
원칙을 지키자는 쪽에서 보면
이건 기본소득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 제도다.
옹호하는 쪽의 논리도 있다.
완전한 형태로 한 번에 갈 수 없으니
단계적으로 가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가능한 만큼 먼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단계적 접근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다음 단계가 있어야 한다.
신청률 92.7%.
이 숫자는 보통 성공의 근거로 인용된다.
열에 아홉이 넘게 신청했으니
주민 호응이 높다는 것이다.
뒤집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7.3%가 신청하지 않았다.
18만5천 명 기준으로 약 1만3천 명이다.
진짜 기본소득이라면
신청이라는 절차 자체가 없다.
주민등록만 있으면 자동으로 들어간다.
심사가 없으니 신청서도 필요 없다.
그게 기본소득의 원리적 장점이다.
누가 자격이 있는지 가려내고,
서류를 받고,
확인하고,
이의신청을 처리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이 통째로 사라진다.
프리드먼이 음의 소득세를
제안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복지 관료제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신청주의다.
신청주의를 택하는 순간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 1만3천 명은 누구인가?
온라인 신청이 어려운
고령 독거 노인일 수 있다.
농어촌 고령화율은
2000년 14.6%에서
2024년 26.6%로 올랐다.
면 단위는 34.1%다.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마을에서
온라인 신청은 장벽이다.
읍사무소까지 갈 교통편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인구 3천 명 이하 과소화 지역은
2025년 기준 전체 읍면의 52%를 넘었다.
버스가 하루 두세 번 다니는 곳이 흔하다.
마을 방송과 이장의 전달망
밖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마을 회의에 나오지 않고
이웃과 왕래가 없는 사람에게
정보는 닿지 않는다.
주중에 타지에서 일해서
실거주 요건을 못 맞출까 봐
스스로 포기한 사람일 수 있다.
요양원이나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주민등록 말소자는
통계에도 안 잡히고 복지에도 안 잡힌다.
실제로 그 땅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데
행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확실하게 배제된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자고 만든 제도가
다시 사각지대를 만드는 구조다.
이건 설계 실수가 아니다.
신청주의를 택한 순간부터 예정된 결과다.
각 군이 읍면별 신청률을 공개하면
이 문제의 크기가 바로 드러난다.
읍은 높고 면은 낮을 것이다.
면 중에서도 더 외진 곳이 더 낮을 것이다.
아직 어느 군도 공개하지 않았다.
미신청자에게 개별 접촉을 했는지,
찾아가는 신청을 몇 건이나 했는지도
공개된 적이 없다.
정부가 정한 기본지급액은 월 15만원이다.
그런데 실제로 받는 돈은 다르다.
화천, 진안, 무주 주민은 15만원을 받는다.
구례, 보성, 청송 주민은 20만원을 받는다.
군비를 얹었기 때문이다.
영양군도 20만원을 지급했다.
16만원을 주는 곳도 있다.
같은 국가사업인데 사는 군에 따라
최대 5만원이 갈린다.
일 년이면 60만원 차이다.
2년이면 120만원이다.
이 사업의 공식 목적은 지역균형발전이다.
인구소멸 위기 지역의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군비를 얹을 여력이 있는 군의 주민이 더 받는다.
재정이 빠듯한 군의 주민은 덜 받는다.
균형을 맞추자는 사업이 새로운 격차를 만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자체의 자율성을
존중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방자치의 원리에 맞는다.
더 주고 싶은 지자체를 막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국가가 보편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소득의 액수가 거주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건 이미 보편이 아니다.
기초연금은 전국이 같다.
아동수당도 전국이 같다.
그런데도 기본소득만이 다르다.
그리고 이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이 좋은 군은 계속 얹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군은 못 얹는다.
2년 차, 3년 차로 갈수록
차이는 누적된다.
국비 보조율은 40%다.
나머지 60%를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나눠 낸다.
2027년에는 국비가 50%로 올라간다.
대상은 정의상 인구감소지역이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권인 군들이다.
상당수가 10%대다.
자체 세수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대기 어려운 곳들이다.
가장 가난한 지자체가
가장 큰 몫을 부담한다.
그런데도 신청이 몰렸다.
두 번째 공모에서 신청 자격이 있는
인구감소지역 59개 군 중
44곳이 뛰어들었다.
네 곳 중 세 곳이다.
경쟁률은 8.8대 1이었다.
추가경정예산 706억원이
확보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신청이 몰려 선정 일정이
6월로 연기될 정도였다.
지방비 부담을 몰라서가 아니다.
현금성 지원이라는 비판을 몰라서도 아니다.
알면서도 뛰어들었다.
이 군들에게 농어촌 기본소득은
복지 실험이 아니었다.
마지막 카드였다.
인구 3천 명 이하 과소화 지역이
읍면의 절반을 넘었다는 통계는
추상적으로 들린다.
현장에서는 다른 의미다.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다.
유일한 마트가 폐업한다.
버스 노선이 없어진다.
주유소가 사라진다.
병원이 없어져 읍내까지
한 시간을 나가야 한다.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마트가 없어서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떠나서 다음 마트가 문을 닫는다.
이 악순환을 끊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경쟁률 8.8대 1은
정바카라의 인기가 아니라
절박함의 크기를 재는 숫자다.
그리고 이 절박함은
정바카라 평가를 왜곡할 위험도 함께 만든다.
여기서부터가 거의 다뤄지지 않은 영역이다.
두 번째로 선정된 일곱 개 군의
첫 지급만 567억원이었다.
열일곱 개 군 전체로 보면
매달 상당한 금액이 지역화폐로 발행된다.
지역화폐는 저절로 발행되지 않는다.
카드를 만들고,
앱을 운영하고,
가맹점을 관리하고,
결제를 정산하는 사업자가 있다.
대개 민간 대행사다.
그 사업자는 누구인가?
계약은 수의계약인가 경쟁입찰인가.
대행 수수료는 발행액의 몇 퍼센트인가.
한 사업자가 여러 군을 맡고 있는가.
사업자 선정 시점은
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전인가 후인가.
지역화폐 운영대행을 둘러싼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이 계약 구조는 검증 가치가 커진다.
가맹점 쪽도 봐야 한다.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가 있는가?
정산 주기는 며칠인가?
영세 상인에게 정산 지연은
현금흐름 문제로 직결된다.
신용카드 수수료와 비교하면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리고 깡이 있다.
지역화폐의 고질적 문제다.
사용처가 제한되니
현금이 필요한 사람은
액면가보다 싸게 팔아넘긴다.
물건을 팔지 않고 수수료만 떼고
현금으로 바꿔주는 상인도 생긴다.
각 군이 부정유통을 몇 건 적발했고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
미사용 잔액도 있다.
사용 기한이 있다면
기한 내에 못 쓴 돈은 어떻게 되는가?
군으로 환입되는가?
대행사에 남는가?
이 모든 것을 합치면
하나의 역설에 도달한다.
기본소득의 원리적 장점은
행정비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신청을 접수하고,
자격을 심사하고,
실거주를 검증하고,
지역화폐를 발행·정산하고,
가맹점을 관리하고,
부정유통을 단속한다.
지급액 대비 운영비 비율이 얼마인지 계산하면
이 제도의 성격이 숫자로 나온다.
기초연금 같은 기존 현금 복지의
운영비 비율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심사를 없애서 비용을 줄이겠다던 제도가,
심사를 다 하면서 지역화폐 대행 비용까지 얹었다면,
그건 기본소득의 장점을
하나도 취하지 않은 설계다.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금으로 걷어서 주는 것이라면
통화량이 늘지 않는다.
A에게서 걷어 B에게 주는 것이니
총수요가 순증하지 않는다.
다만 고소득층은 받은 돈을 저축하고
저소득층은 거의 다 쓴다.
그래서 수요가 생필품 쪽으로 쏠린다.
물가 수준보다 상대가격 구조가 바뀐다.
진짜 갈림길은 총수요가 아니라
공급 탄력성이다.
공급이 늘어날 수 있으면
수요가 늘어도 가격이 아니라
생산량이 반응한다.
공급이 고정돼 있으면
가격이 오른다.
케냐에서 실증된 적이 있다.
지역 총생산의 15%에 해당하는
현금을 뿌린 대규모 실험이 있었다.
이코노메트리카에 실린
이 연구에서 승수효과는 2.5배로 나왔다.
뿌린 돈의 두 배 반이
지역 경제에서 돌았다는 뜻이다.
물가 상승은 0.1% 수준이었다.
거의 오르지 않았다.
유휴 생산능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놀던 가게와 공장이 돌아가면서
물량이 따라붙었다.
그러면 농어촌 기본소득은 어느 쪽인가.
조건만 놓고 보면 위험한 쪽이다.
인구 1만5천 명의 군에 주민 90% 이상이
매달 15만원에서 20만원을 받는다.
그 돈은 군 밖에서 쓸 수 없다.
가맹점은 소수다.
면 단위에는 마트가
한두 곳뿐인 곳도 있다.
수요는 갑자기 늘었고,
공급자는 소수이고,
소비자는 다른 데로 갈 수도 없다.
교과서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조건이다.
반대 가설도 성립한다.
이 지역들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상점이 문을 닫던 곳이다.
놀고 있던 공급능력이 남아 있었다면
케냐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어느 쪽인지는 측정하면 알 수 있다.
문제는 측정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는 시도 단위까지만 공표한다.
군 단위 소비자물가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곡성의 라면값이 올랐는지 내렸는지를
알려주는 공식 통계가 없다.
그래서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시범군과 인접한 비시범군을 짝지어
같은 품목의 가격을 재는 것이다.
곡성과 담양,
순창과 임실,
구례와 광양.
쌀 10킬로그램,
계란 30구,
삼겹살 100그램,
라면 다섯 개들이,
백반 한 그릇,
이발 요금,
경유 1리터.
가맹점과 비가맹점의 가격이 다른지도 봐야 한다.
현금으로 사면 깎아주는지도 봐야 한다.
깎아준다면 지역화폐 가격이
명목상 더 비싸다는 뜻이다.
간접 신호는 이미 나왔다.
월 20만원을 지급한 영양군에서는
소비가 군 중심지인 영양읍에 쏠렸다.
일부 면 지역은 지역경제 활성화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돈은 골고루 나갔는데
소비는 한곳으로 모였다.
그러면 그 한곳의 가격 압력은 더 커진다.
동시에 면 지역 상권은
기대했던 효과를 못 본다.
돈이 면에서 읍으로 흘러나간 셈이다.
지역 안에서 돈이 돌게 하려고 지역화폐를 썼는데,
그 안에서 또 한 번 쏠림이 일어난 것이다.
물가보다 근본적인 경로는 지대다.
기본소득 비판 중 이론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논증이 여기 있다.
공산품이나 서비스는 수요가 늘면
생산이 따라 늘어서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토지와 건물은 공급이 고정돼 있다.
새로 만들 수가 없다.
모두가 매달 정해진 돈을 받는다는 걸 임대인이 알면,
그만큼 올릴 유인이 생긴다.
기본소득이 세입자를 거쳐
건물주 주머니로 들어간다.
국가가 임대인에게 보조금을 주는 셈이 된다는
비판이 여기서 나온다.
기본소득 진영 내부에서 토지보유세와
세트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이유가 이것이다.
지대를 세금으로 회수해서
그 돈으로 지급하면 순환이 닫힌다.
헨리 조지 계열의 논리다.
지금 정부 논의에서
이 부분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농촌이라 임대차가 적으니
문제가 안 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범군에 실제로
사람이 들어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빈집 거래,
농지 가격,
상가 임대료가 움직였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시범군의 토지와 주택 거래가 기록돼 있다.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면 된다.
아직 아무도 비교하지 않았다.
이 정바카라에 가장 자주
따라붙는 말이 있다.
공산주의.
정의상 정반대에 가깝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체제다.
기본소득은 소유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
시장경제와 사적 소유를 그대로 둔 채
세금을 걷어 현금으로 나눠준다.
국가가 무엇을 사줄지 정하지 않고
현금을 주는 것 자체가
시장이 작동한다는 전제 위에 있다.
배급제와는 정반대다.
배급제는 국가가 물건을 정해서 나눠준다.
기본소득은 돈을 주고
물건은 각자 고르게 한다.
계보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음의 소득세를 제안했다.
소득이 일정선 아래면
세금을 내는 대신 받는 구조다.
복지 관료제를 통째로 없애고
현금 한 번으로 대체하자는,
작은 정부론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시카고학파의 수장이 낸 안이다.
하이에크는 『법, 입법, 자유』에서
모두에게 보장되는 최소 소득이
자유슬롯와 양립할 수 있다고 썼다.
계획경제를 평생 비판한 사람이다.
닉슨 행정부는
1970년 가족지원계획을 추진했다.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에서 좌초했다.
공화당 대통령이 밀어붙인
보장소득 법안이었다.
만약 상원을 통과했다면 미국은
반세기 전에 이 제도를 가졌을 것이다.
찰스 머리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에서
기존 복지를 전면 폐지하고
성인 전원에게 현금을 주자고 주장했다.
알래스카는 1982년부터 40년 넘게
전 주민에게 매년 배당하고 있다.
석유 수익을 적립한 영구기금에서 나온다.
도입한 사람은 공화당 주지사 제이 해먼드였다.
우파의 논리는 일관된다.
누가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고
감시하는 복지 관료제가 더 국가주의적이다.
공무원이 남의 통장을 들여다보고
자격을 판정하는 것보다,
현금 주고 알아서 쓰게 하는 편이
개인의 자유에 부합한다.
한국에도 이 논리에
딱 맞는 사례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일해서
소득이 생기면 급여가 깎인다.
실효 한계세율이 100%에 가까워지는 구간이 있다.
일할수록 손해가 되는 지점이 생긴다.
복지 함정이라고 부른다.
기본소득에는 이 왜곡이 없다.
벌면 버는 대로 가져간다.
그러니 공산주의라는 딱지는 틀렸다.
다만 딱지가 틀렸다는 것이
제도가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 딱지 밑에 깔린 걱정 중에는
진지하게 다뤄야 할 것들이 있다.
전 국민이 매달 국가에서 돈을 받으면
지급액을 정하는 정치권력이 유례없는
지렛대를 갖게 된다는 우려.
선거 때마다 금액이 오르는 경쟁이 붙으면
재정이 볼모가 된다는 우려.
일하지 않아도 소득이 나오는 구조가
근로 규범을 침식한다는 우려.
그리고 현금이 아니라
사용처가 제한되고
거래가 추적되는 지역화폐로 준다면,
그건 오히려 국가의 소비 통제에 가깝다는 지적.
이 마지막 지적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본소득 원리주의자들이 지금의
농어촌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논거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반발은 이렇다.
결국 내 세금 걷어서
나한테 돌려주는 것 아니냐.
공공경제학에 같은 개념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처닝이라고 부른다.
조세와 급여의 순환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간 돈을
다시 급여로 돌려주는 과정에서,
상당수에게는 순증이 없고
행정비용만 발생하는 현상이다.
직관으로 짚은 것이
학계에서 논쟁되는 지점과
정확히 겹친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면
연간 184조원이 든다.
5,100만 명에 360만원을 곱한 금액이다.
정부 총지출의 4분의 1을 넘는다.
이걸 소득세로 걷는다고 하자.
4인 가구는 연 1,440만원을 받는다.
이 가구가 추가로 내는 세금이
1,440만원보다 많으면 순부담자,
적으면 순수혜자다.
설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중상위층 어딘가에
손익분기점이 걸린다.
받는 30만원은 통장에 찍혀서 눈에 보인다.
나가는 40만원은 원천징수라 보이지 않는다.
생색이라는 지적은
이 가시성의 비대칭을 겨냥한 것이다.
세금 걷을 여력도 넉넉하지 않다.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GDP 대비 30% 초반이다.
OECD 평균인 34% 안팎보다 낮다.
아직 여력이 있다는 근거로 쓰이는 숫자다.
그런데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분의 1 안팎이다.
184조를 소득세로 만들려면
지금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부터
과세 대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더 어렵다.
역진적이라 명분도 약하다.
토지보유세와 탄소세,
데이터세 같은 대안은 세수 규모가
184조에 한참 못 미친다.
기본소득 반대론에서
가장 실무적인 논거가 여기 있다.
재원 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은 적이 없다는 것.
반론도 있다.
가장 강한 반론은 보험 논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낸 보험료보다
적게 돌려받는다.
그런데도 가입한다.
사고가 났을 때 망하지 않는다는 게
상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옹호론도 같은 구조다.
지금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순손실이다.
하지만 실직하거나 아프거나 사업을 접었을 때
소득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값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놓고 보면
대부분이 순수혜 구간을 한 번은 지나간다.
여론은 이 두 논리 사이에서 갈렸다.
2020년 조사에서 기본소득 찬성은 61.8%였다.
찬성한 사람 중 82%는
증세가 필요해도 찬성한다고 답했다.
계층에 따라 갈렸다.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 집단의 찬성은 70.8%,
700만원 이상은 53.2%였다.
이념에 따라서도 갈렸다.
진보 성향은 70.9%가 찬성했고
보수 성향은 반대가 52.0%로 찬성보다 높았다.
다만 보수 성향에서도 48%가 찬성했다.
진영으로 갈리는 사안이지만
완전히 갈리지는 않는다.
2023년 조사에서는
반대 이유가 드러났다.
포퓰리즘 같다는 응답이 69.8%,
세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는 응답이 66.7%였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다는 응답이 63.2%,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이 62.4%였다.
세금이 폭증할 것이라는 응답은 71.6%였고,
이 우려는 젊을수록 컸다.
20대가 76.0%,
30대 75.6%,
40대 70.4%,
50대 64.4%였다.
기본소득이 장기적으로
유지 불가능한 제도라는 응답도
20대에서 55.6%로 가장 높았다.
가장 오래 받을 세대가 가장 회의적이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68.8%가
기본소득이 시행돼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답했다.
남은 일을 그만둘 거라고 걱정하면서,
자신은 계속 일하겠다고 답한다.
이 응답 구조가 근로유인 논쟁의 실제 모양이다.
앞의 조사에서 확인된
반대 논거 하나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이 공정한가는
대중적 정서가 아니다.
정치철학의 정식 논쟁이다.
그리고 이 논쟁의 결론을 알아야
지금 정부가 검토하는 모델을 이해할 수 있다.
출발점은 판 파레이스가 1995년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에서 제시한 사고실험이다.
종일 서핑만 하며 어떤 노동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가?
판 파레이스의 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무조건성이 요건인 이상
예외를 두는 순간
자격 심사가 부활하고,
심사가 부활하면
제도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입장에는
사상사적 계보가 있다.
폴 라파르그는 1880년 『게으를 권리』에서
노동을 신성시하는 관념 자체를
자본의 산물로 규정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32년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썼고,
케인스는 1930년에 100년 뒤
주 15시간 노동을 예측했다.
반박은 존 롤스에게서 왔다.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슬롯 협력이 호혜성을 전제한다는 점을 근거로,
종일 서핑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며
공적 재원에 대한 몫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썼다.
스튜어트 화이트는 1997년 논문에서
이를 착취 논변으로 발전시켰다.
노동하는 자의 조세로
노동하지 않기를 선택한 자를
부양하는 구조는
전자에 대한 착취라는 것이다.
반대편 구호로 자주 인용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이 출처다.
다만 정치 구호로 정착한 경로는 다르다.
레닌이 1917년 『국가와 혁명』에서 인용했고,
1936년 소비에트 헌법 제12조에 명문화됐다.
기본소득을 공산주의로 규정하는 논거가
실제로는 소비에트 헌법에 들어 있던 조항이다.
이 논쟁의 좌표가 통념과
다르게 배치돼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이
정바카라 설계로 직결됐다는 사실이다.
앤서니 앳킨슨이 1996년
참여소득을 제안한 목적이
호혜성 반론의 회피였다.
무조건 지급이 호혜성 원칙에 걸린다면,
슬롯적 기여 활동을 요건으로 부과해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금
우선 검토하는 모델이 이것이다.
한국의 정바카라 설계는
이미 무조건성 논변을 포기한 상태다.
근로 유인 논쟁을 우회하려는
현실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물이
기본소득의 정의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은
앞서 확인한 대로다.
호혜성 반론에도 한계는 있다.
노동의 범주를 임금노동으로
한정할 때만 성립한다는 점이다.
가사노동,
돌봄,
지역 공동체 노동은
수행되고 있으나
소득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 논쟁에는 230년 된 원형이 있다.
1795년 영국 버크셔의 스핀햄랜드에서 시작된 제도다.
빵값에 연동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교구가 보조했다.
소득이 일정선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을 메워줬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음의 소득세에 가까운 구조였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고용주가 임금을 낮춰버렸다.
어차피 교구가 메워주니
굳이 제값을 줄 이유가 없었다.
보조금이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주에게 흘러들어갔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이걸 실패 사례로 정식화했다.
이후 스핀햄랜드는 기본소득 반대론의
단골 레퍼런스가 됐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후 경제사학계에서 폴라니의 해석이 과장됐다는
수정주의 연구가 나왔다.
마크 블로그가 대표적이다.
임금 하락과 스핀햄랜드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당시 농업 구조의 변화와
인구 증가가 더 큰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쪽도 확정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핀햄랜드가 앞에서 말한
지대 흡수 문제와 같은 구조라는 점이다.
소득 보조가 소득을 늘리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몫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것.
그때는 고용주였고, 지금은 임대인이다.
반대편 계보도 있다.
토마스 페인은 1797년
『토지분배의 정의』를 썼다.
논리는 이랬다.
토지는 본래 인류 공동의 것이었다.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대가로,
소유자는 공동체에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그 재원으로 21세가 되는 모든 이에게 목돈을,
50세 이상 모두에게 연금을 지급하라.
이건 복지가 아니다.
재산권 논리다.
시혜가 아니라
원래 내 몫의 배당이라는 것.
왜 세금 뜯어서 남 주냐는 반론에 대한
가장 강한 응답이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이 논리는
한국에 이미 존재한다.
신안군의 햇빛연금이 그것이다.
바람과 햇빛은 공유자산이니
그 수익을 주민이 배당받는다는 구조다.
정선의 강원랜드 배당도
폐광지역이라는 조건에서 나온 이익공유다.
알래스카의 석유 배당도 같은 계보다.
공유부에서 나온 수익을 주주에게 나눈다.
이건 재산을 몰수하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재산권을 확장하는 논리다.
지구 반대편에 거울이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두 시간 거리에 마리카라는 도시가 있다.
인구 21만 명.
2006년 앞바다에서 원유가 발견되면서
브라질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가 됐다.
이 도시는 시민기본소득을 운영한다.
지급 수단은 무부카라는 지역 디지털화폐다.
도시를 흐르는 강 이름이자
그 지역 원주민의 이름에서 따왔다.
실물 화폐는 없고
카드와 앱으로만 쓴다.
무부카는 시가 소유한 은행에서 관리한다.
방코 무부카라고 부른다.
이 은행은 주민과 소상공인에게
무이자 소액대출도 한다.
무부카는 마리카 안에서만 쓸 수 있다.
돈이 리우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서 돌게 하려는 설계다.
가맹점은 약 3천 곳이다.
미용실, 식료품점, 약국에
무부카를 받는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지급액은 130 무부카로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에 300으로 두 배 넘게 올랐고,
이후 200으로 내렸다가 230이 됐다.
무부카는 브라질 헤알과 1대 1로 교환된다.
수급자는 약 9만3천 명이다.
시민의 절반 이상이다.
수급 자격에는
3년 이상 거주 요건이 있다.
2017년 12월에는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석유 로열티를 적립해 제도가
영구히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석유가 마르는 날에도
이 제도가 살아남게 하려는 설계다.
부속 정바카라도 많다.
공립학교 학생 장학금과 저축계좌,
사립대 학비 지원,
시내 무료 대중교통,
원주민 추가 급여,
비공식 부문 노동자 대상 현금 지원.
뉴욕의 제인가족연구소와
브라질 플루미넨세연방대학이
공동으로 효과를 평가하고 있다.
2024년 연구에서는
무부카를 받는 가구의 소득이
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성공담이다.
그런데 연구진이 각주에
달아놓은 문장이 있다.
시 조례상으로 시민기본소득은
3년 이상 거주한 시민 전체의
권리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조례는 등록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되
저소득 가구를 우선한다고,
그리고 시의 예산 사정에 따른다고 함께 규정했다.
그래서 실제 운영되는 제도는 표적화된 급여이며,
기본소득보다는 보장소득에 가깝다.
연구진 스스로 그렇게 썼다.
원칙은 보편으로 걸고,
실제 설계는 선별로 한다.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똑같다.
마리카는 10년 넘게 이 제도를 운영했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어떤 문제를 겪는지,
어디서 새는지,
재원이 언제 흔들리는지를
이미 겪었다.
한국이 앞으로 겪을 일이
거기에 다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없는 것이
마리카에는 있다.
국부펀드다.
제도를 영구히 굴릴 재원을
따로 쌓아두었다.
농어촌 기본소득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매년 예산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기본소득 실험은 생각보다 많다.
결과도 엇갈린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실업자 2천 명에게 월 560유로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국가 차원의 첫 기본소득 실험이었다.
고용 효과는 미미했다.
취업률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대신 수급자의 정신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유의하게 개선됐다.
핀란드는 이 실험 후
전면 도입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스톡턴 실험이 있었다.
저소득 가구에 월 500달러를 지급했는데
오히려 정규직 취업률이 올랐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뛰는 대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여유가
생겼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오픈리서치가 진행한 대규모 실험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3년간 월 1천 달러를 지급했는데,
2024년에 공개된 결과에서
노동시간이 소폭 줄고
소득도 감소했다.
기대했던 교육이나
창업 투자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시민단체가 모금해
소수에게 3년간 월 1,200유로를 지급했다.
2024년 결과에서 노동시간 감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웨일스는 보호종료 청년,
그러니까 시설에서 나온 청년들에게
2년간 매달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는
파일럿을 운영했다.
대상을 특정 취약 집단으로 좁힌 형태다.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에서는
2011년부터 2년간 농촌 마을 단위로
무조건 현금을 지급하는 실험이 있었다.
농촌 대상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설계다.
몽골은 광물 수익을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배당한 적이 있다.
알래스카, 신안과 같은 자원 배당 계보다.
이란은 2010년 유류보조금을 개혁하면서
사실상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했다.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준기본소득이다.
여러 연구에서 노동 공급이 줄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이란 사례는 인플레이션 논쟁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이란은 이후 고물가를 겪었지만,
그 원인이 현금 지급인지 보조금 폐지인지
국제 제재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 쟁점이 됐다.
스위스는 2016년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부결시켰다.
반대가 77%였다.
정리하면 이렇다.
노동 공급이 급감한다는 증거는
대부분의 실험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신건강과 삶의 질은 대체로 개선됐다.
반면 기대했던 교육·창업 투자 효과는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전면 도입한 나라는 아직 없다.
세계적 추세라는 말도,
어디서도 안 하는 일이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또 하나 중요한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실험이 수천 명 규모에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3년 뒤 끊긴다는 걸 아는 사람의 행동과,
평생 받는다는 걸 아는 사람의 행동은 다르다.
기한이 정해진 실험으로는
기한 없는 제도의 효과를 알 수 없다.
농어촌 기본소득도 정확히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청송군은 실거주를 확인한다.
신청일 기준 30일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청송군을 주된 생활권으로 삼아
주 3일 이상 실제로 사는지를
파악한 뒤 지급한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전기와 수도 사용량을 볼 수 있다.
카드 사용 내역을 볼 수 있다.
통신 기록을 볼 수도 있다.
이웃에게 물어볼 수 있다.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다.
어느 방법이든 개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법적 쟁점이 따라붙는다.
개인정보를 처리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조례만으로 충분한가,
법률의 위임이 필요한가.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지급액을 환수할 때
행정절차법이 요구하는
사전통지와 의견제출 기회는 보장되는가.
거주 형태를 조건으로 급여를 주는 것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약하지는 않는가.
기본소득의 핵심은 무조건성이다.
아무 조건 없이 준다는 것.
그 조건 없음이 심사 비용과
낙인을 없앤다.
그런데 조건 없이 주는 제도를 유지하려고
위장전입을 막다 보면,
행정은 주민이 어디서
몇 밤을 자는지 확인해야 한다.
무조건성을 지키려다 상시 감시가 생긴다.
여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주중에 도시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
화물차를 몰고 전국을 도는 사람.
조업 나가는 어민.
병원에 장기 입원한 노인.
자녀 집에 몇 달씩 가 있는 부모.
이들은 그 군에 살고,
그 군에 주민등록이 있고,
그 군에 세금을 낸다.
그런데 주 3일 요건에 걸릴 수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은
예외가 아니라 흔한 경우다.
농사만으로 생계가 안 되니 겸업을 한다.
그 겸업이 이 요건에 걸린다.
각 군이 현장조사를 몇 건 했고
부적격 판정을 몇 건 내렸고
얼마를 환수했는지는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이의신청이 몇 건 들어왔고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마찬가지다.
그 숫자가 이 제도의 성격을 말해줄 것이다.
또 다른 배제가 있다.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설계하면
외국인등록 주민은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영주권자가 여기 해당한다.
농촌에서 이들의 비중은 작지 않다.
계절근로자 없이 수확이 안 되는 지역이 많다.
결혼이민자는 사실상 영구 거주자다.
20년을 산 사람도 있다.
이들은 그 지역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지방세를 낸다.
그런데 옆집은 받고 본인은 못 받는다.
보편성을 원칙으로 내건 제도가
지역 주민의 일부를 원천 배제한다.
이걸 정바카라적 판단으로 결정한 것인지,
주민등록 기준을 쓰다 보니
자동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지역화폐라 역외 유출 우려도 없다.
이들이 받은 돈은 그 군에서 쓰인다.
배제할 실질적 이유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개별성 요건이 왜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구 단위 급여는 세대주에게 몰린다.
농촌 고령 여성 중에는 평생
자기 명의의 소득이 없던 사람이 많다.
농사 수입은 남편 통장으로 들어갔다.
농지도 남편 명의였다.
농사일의 절반 이상을 했지만
그 노동은 소득으로 계산되지 않았다.
월 15만원이
본인 명의 카드로 들어온다는 건
그래서 사건이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 이름으로 들어오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지급은 개인별 카드인가,
세대주에게 일괄인가.
미성년 자녀 몫은
누구 명의로 가는가.
4인 가구면 자녀 두 명분이 60만원인데
부모가 관리한다면 개별성은
어디까지 지켜진 것인가.
치매나 거동 불편으로
대리 수령이 이뤄지는 경우
그 돈은 누가 쓰는가.
카드는 본인 명의인데
남편이 들고 다니는 경우는 없는가.
이런 것들은 조례와 지침을 보면
절반은 답이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물어봐야 알 수 있다.
한국보건슬롯연구원의 기본소득 연구에는
성별분업 관련 논의가 포함돼 있다.
기본소득이 가구 내 권력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으로는 오래 다뤄진 주제다.
현장에서 확인된 적은 거의 없다.
인구가 늘었다.
영양군은 지난해 10월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올해 5월까지 인구가
820명 늘어 1만6,005명이 됐다.
지방소멸을 막았다는 기대가 나왔다.
한 달 뒤 6월 말 기준 인구는
1만5,972명이었다.
1만6천 명 선이 다시 무너졌다.
두 달 사이의 등락이다.
이걸로 실패를 단정할 수는 없다.
농촌 인구는 계절 변동이 있고,
33명은 통계적으로 큰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늘어난 820명은 누구였나?
실제로 이사 온 사람인가,
주소만 옮긴 사람인가.
그리고 왜 줄기 시작했나.
전문가들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실거주 검증을 통한 이른바
먹튀 방지 대바카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월별 전입과 전출을 신청 마감일,
지급 개시일과 나란히 놓고 봐야 한다.
신청 마감 직전에 전입이 몰렸는지,
지급이 확정된 뒤 몇 달째에
전출이 늘었는지를 보면
패턴이 드러난다.
인접한 비시범 군을 대조군으로 세워야 한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야 한다.
농촌 인구는 원래 봄에 늘고 겨울에 준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분석이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2년짜리 제도가 인구를 늘릴 수 있는가.
늘렸다면 그건 정착인가 체류인가.
2년 뒤 끊겼을 때 그 사람들은 남아 있을까.
인구를 성과 지표로 쓰는 순간,
성과는 2년 안에 증발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이상한 상태에 있다.
서울에서는 정반대 모델이 돌아가고 있다.
서울 디딤돌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와
가구소득의 차액 절반을 지급한다.
소득이 적을수록 많이 받는 하후상박 구조다.
선별이고,
차등이고,
현금이고,
가구 단위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보편이고,
정액이고,
지역화폐이고,
개인 단위다.
모든 축이 반대다.
계보도 다르다.
디딤돌소득은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 계열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계열이다.
정치적 후원자도 다르다.
설계의 엄밀함도 다르다.
디딤돌소득은 5,111가구를
지원집단 1,584가구와 비교집단 3,527가구로 나눠
6개월 단위로 추적한다.
무작위 배정 실험이다.
슬롯과학에서 인과관계를
가장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설계다.
1차 중간조사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높은 탈수급률,
지원가구의 근로소득 증가,
비교가구 대비 필수재 소비 증가와
정신건강 개선이 보고됐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역 단위 배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무작위 대조 실험과
이중차분법, 지리적 회귀불연속, 합성통제법을
평가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삶의 질과 지역슬롯 자본,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아우르는
지표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역 단위 설계에는 장점이 있다.
상권과 물가,
이주 같은 일반균형 효과를 볼 수 있다.
개인을 무작위로 뽑는 실험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마을 전체에 돈이 들어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역 단위로만 관찰된다.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지역 선정이 무작위가 아니다.
공모와 심사로 뽑았다.
신청한 44곳은 신청하지 않은 15곳과 이미 다르다.
뽑힌 17곳은 떨어진 곳들과 또 다르다.
신청하려면 지방비를 감당할 각오와
행정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 군은 원래 뭔가를
더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선택편의라고 부른다.
앞에서 말한 8.8대 1의 절박함이
여기서 문제가 된다.
절박한 곳이 더 열심히 신청했고,
더 열심히 준비한 곳이 뽑혔다면,
나중에 나올 성과 지표가 기본소득의 효과인지
원래 의욕적이었던 지자체의 효과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7년치 데이터가 쌓였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2019년 4월부터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 25만원,
연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해왔다.
도내에 3년 이상 계속 또는
합산 10년 이상 거주한 청년이 대상이다.
소득이나 취업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경기연구원이 올해 5월 내놓은 분석에서는
수령 청년의 정신건강과 운동 빈도,
식생활이 개선됐고,
노동시간은 오히려
주당 평균 1.3시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지원이 노동 의욕을 꺾을 것이라는
도입 초기의 우려와 반대되는 결과다.
다만 이 연구를 수행한 경기연구원은
정바카라을 시행하는 경기도의 산하 기관이다.
같은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성남시는 관련 조례가 폐지됐고,
고양시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신청 대상에서 빠졌다.
의정부시도 재정 부족을 이유로
중단된 적이 있다.
7년을 이어온 광역 사업도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는
하나씩 빠져나가고 있다.
이 대목은 농어촌 기본소득의
2028년을 미리 보여준다.
그리고 데이터의 출처 문제가 남는다.
디딤돌소득 연구는 서울시가 발주했다.
농어촌 기본소득 성과평가 체계 연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주했다.
각 군의 자체 분석은
사업 시행 주체 본인이 한다.
경기연구원은 경기도 산하다.
이 주제의 데이터는 거의 전부
이해당사자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결과를 읽을 때는
누가 발주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기본소득기획팀을 만든 명분은
AI로 인한 구조적 실업이다.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니
소득 보장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으로
아동과 노인은 어느 정도 커버되는 반면
청장년층이 사각지대라는 판단에서
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논리는 이해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AI 때문에
일자리가 몇 개나 줄었다는 통계가 있는가.
AI 대체가 실재한다면
특정 직군에서 먼저 나타나야 한다.
콜센터와 고객상담,
번역, 단순 사무와 회계 보조,
그래픽과 일러스트,
초급 코딩, 편집 보조.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직업 소분류별 취업자 수를
생성형 AI 확산 이전과 비교하면 확인할 수 있다.
감소가 없다면 명분과 근거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이다.
감소가 있다면 그것대로 훨씬 큰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확인되지 않은 채
정바카라의 근거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검토하는 모델은
무조건 지급이 아니다.
슬롯적 기여 활동을
전제로 한 참여소득이다.
기여를 조건으로 다는 순간 무조건성은 깨진다.
노동유인 논란을 피하려는 선택이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건 기본소득이 아니라
근로연계복지에 가깝다.
이름은 기본소득기획팀인데
설계는 기본소득이 아닌 상황이 된다.
가장 중요한 숫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사업은 2026년과 2027년,
2년이다.
2028년에 끝난다.
정부는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2027년 예산안에서 대상지를 35곳으로 늘리고
국비 보조율을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했다.
관련 예산은 1조1,658억원 규모다.
확대와 지속은 다른 문제다.
새로 열여덟 곳을 넣는 것과,
기존 열일곱 곳에 계속 주는 것은
별개의 예산 결정이다.
확대 예산이 잡혔다는 것이
기존 지역의 연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받다가 끊기는 것은
처음부터 받지 않은 것보다 나쁠 수 있다.
기본소득을 보고 전입한 사람은 다시 나간다.
수요를 보고 재고를 늘리고 사람을
쓴 상인은 매출 절벽을 맞는다.
월 15만원을 생활비에 편입시킨 고령 가구는
실질소득이 그만큼 줄어든다.
2년 동안 만들어진 지역화폐 상권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인구 1만5천 명 군의 상권은
그 충격을 흡수할 만큼 두껍지 않다.
자체 재원으로 이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이 군들의 재정자립도는 10%대다.
국비 없이 전액을 부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도 60%를 대느라 다른 사업을
미루고 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평가가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여기서 시점이 문제가 된다.
성과평가 결과가 2027년 말에 나오면,
그 결과를 2028년 예산에 반영할 시간이 없다.
예산은 그 전에 편성된다.
평가가 결정에 닿지 못하는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비슷한 지점을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니
성과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 있지만,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모니터링과
성과 평가가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면
정바카라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왔다.
인구 유입만 볼 게 아니라
지역슬롯 활동 조직의 증가나
주민들의 공동체 참여 확대 같은
변화를 폭넓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공동체 참여 확대는
2년 안에 측정하기 어려운 지표다.
측정하기 쉬운 것은 인구고,
인구는 2년 뒤에 되돌아갈 수 있다.
지금 열일곱 개 군에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2028년 이후 계획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열일곱 곳에 똑같이 보내면,
답변의 편차 자체가 이 제도의 현재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대부분은 정부 방침에 따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무응답도 답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보편이라고 했지만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열일곱 곳의 주민에게만 준다.
무조건이라고 했지만
주 3일 실거주를 확인한다.
현금이라고 했지만
군 안에서만 쓰는 상품권을 준다.
개별이라고 했지만
실제 지급 방식은 확인된 바 없다.
정기라고 했지만
2년 뒤에 끝난다.
신청하지 않으면 받지 못하고,
사는 군에 따라 액수가 다르고,
외국인 주민은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름은 기본소득이다.
물러서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스위스는 2016년 국민투표에서 77%가 반대했다.
핀란드는 2년 실험하고 전면 도입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가능한 만큼만 하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한 번에 완전한 형태로
갈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문제는 물러서면서
이름은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이름과 실체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정치적 상징이 된다.
찬성하는 쪽은 세계적 추세라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다.
전면 도입한 나라는 없다.
반대하는 쪽은 공산주의라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다.
프리드먼과 하이에크와
닉슨의 계보에 있는 제도다.
둘 다 이 제도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름의 문제는
실무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이라고 부르면
기본소득의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보편성이 깨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농어촌 지역화폐 지원사업이라고 불렀다면
훨씬 단단한 정바카라이었을 수 있다.
지방소멸 대응 사업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설계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좋은 정바카라도
실패한 기본소득이 된다.
이 제도의 성패를 가를 숫자들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곡성군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
가구 패널조사를 하기로 했다.
분기별 지급 추이와 가맹점 증가율,
업종별 사용 비중을 분석한다.
다른 군들도 비슷한 계획을 갖고 있다.
같은 연구원이 조사한
2026년 10대 농정 이슈에서,
현장 농업인 1,378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었다.
위험 관리 체계를 정교화해
농가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10점 만점에 7.62점이었다.
지난해 1위였던 식량안보 체계 강화는
7.48점으로 3위로 밀렸다.
농민들이 먼저 원한 것은 소득의 안정이었다.
기본소득은 그 답 중 하나다.
유일한 답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측정이다.
곡성의 물가가 담양보다 더 올랐는가?
순창의 임대료가 임실보다 더 움직였는가?
신청하지 못한 7.3%는 어느 마을에 몰려 있는가?
현장조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몇 명이고
그들은 왜 그 군에 살면서도 요건을 못 맞췄는가?
지역화폐 발행을 대행하는 사업자는 누구이고
발행액의 몇 퍼센트를 가져가는가?
미사용 잔액은 얼마이고
그 돈은 누구에게 남는가?
심사도 없앤다던 제도가 신청 접수와
실거주 검증과 가맹점 관리에 쓰는 행정비용은
지급액의 몇 퍼센트인가?
월 15만원을 받은 뒤
일용 노동을 나가는 날이 줄었는가 늘었는가?
인력사무소 단가는 인접 군과 다른가?
평생 자기 이름으로 된 소득이 없던 사람에게
그 카드는 누구 손에 들려 있는가?
전부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자료는 대부분 이미 존재한다.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열일곱 개 군에서 3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매달 돈을 받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이 돈은
이념이 아니다.
기름값이고,
병원비고,
손주 용돈이고,
겨울에 보일러를
몇 시간 더 돌릴 수 있는 여유다.
읍내 나가는 버스비이고,
오랜만에 사는 고기 한 근이다.
평생 자기 이름으로 된 소득이 없던
농촌의 고령 여성에게,
본인 명의 카드로 들어오는 15만원이
어떤 의미인지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동시에 그 돈은
2027년 12월에 끝난다.
받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2년 뒤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누가 언제 말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