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전남 무안군 해제면.
무안황토갯벌랜드 안에는
‘무안군 해상안전체험관’이라는 시설이 있다.
지상 2층, 연면적 1,091㎡ 규모.
1층에는 VR 영상관,
침수차량 탈출체험장,
바닷가생활안전체험장,
해양생존체험장(구명보트 체험),
심폐소생술 실습장이 있다.
2층에는 인명보호장비 교육장과
선박사고체험장이 있어
선실 탈출체험과 슬라이드 탈출체험까지
직접 몸으로 익히게 돼 있다.
이 시설이 만들어진 계기는 분명하다.
무안군은 2020년 8월 체험관 개관 당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상재난과 안전사고 발생 시
국민의 대처능력을 높이고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추진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476명.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숫자다.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인솔 교사 14명,
여행 인솔자 1명,
일반 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선원을 포함한 승무원까지.
이 가운데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자 299명,
끝내 수습되지 못한 미수습자 5명.
생존자는 172명.
생존율 36.1퍼센트.
단원고 학생만 놓고 보면
325명 중 250명이 숨졌고,
75명만 살아남았다.
생존 학생들은 참사 637일 만인
2016년 2월 12일에서야
텅 빈 교실에서 졸업식을 치렀다.
사고 당일 오전,
일부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정부는 탑승자 수조차
477명, 462명, 475명으로
반복해서 정정하다가
나흘이 지난 4월 18일에야
476명으로 확정했다.
2014년의 비극을 기억해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겠다는 것.
아주 올바른 방향이다.
참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세월호의 교훈을 담아
무안에 지어진 이 안전체험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참사 현장이 있다.
무안국제공항이다.
179명.
2024년 12월 29일 이곳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다.
탑승자 181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는 승무원 2명뿐이었다.
생존율은 1.1퍼센트.
세월호와 같은 지역,
다른 시간.
숫자로만 보면
두 사고의 생존율은 36.1퍼센트와
1.1퍼센트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질문이 시작된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안전체험관까지 지은 나라가,
정작 10년 뒤 같은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국가의 기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어떤 사건에 특별법을 만들 것인지,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둘 것인지,
조사위원을 몇 명으로,
어느 기관 추천으로 구성할 것인지,
피해자에게 어떤 배상과 지원을 할 것인지,
기념관과 추모시설을 어디에 얼마의 예산으로 지을 것인지.
모두 법과 예산을 동반하는
구체적인 행정행위다.
결국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공적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얼마나 신속하게 투입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기준으로 세월호와 12·29 참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뚜렷한 대비가 드러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슬롯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 말은 실제로
여러 개의 제도로 옮겨졌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650만 명이 서명했고,
2014년 11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12년 동안
세 개의 국가 조사기구가 차례로 만들어졌다.
2015년 1월 출범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상임위원 5명과 비상임위원 12명,
여야가 각 5명씩,
유가족 3명,
변호사협회와 대법원이
각 2명씩 추천한 총 17명으로 구성됐다.
17명 가운데 14명이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 전문가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의 활동기간 기산점을
시행령도, 예산도, 조사관도 없던
2015년 1월 1일로 잡아
2016년 6월 30일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이석태 위원장은 국회에서 “
전체 조사가 30퍼센트 진행됐다”고 밝혔다.
조사관들은 사비를 털어 2016년 9월,
세 번째 청문회를 강행했지만
바카라임이 있는 정부기관 공무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이후 조사관들은 활동기간 산정을 놓고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22일부터 4월 10일까지,
세월호 선체는 침몰 3년 만에 인양돼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이후 출범한 선체조사위원회는
약 13개월을 조사하고도
6명의 위원이 침몰 원인을 두고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개의 보고서로 갈라졌다.
내인설을 지지한 위원 4명은
나쁜 복원성과 부실한 화물 고박,
무리한 증개축이 겹쳐
급선회 과정에서
배가 기울어 침몰했다고 봤다.
열린안을 지지한 위원 2명은
내인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체 손상이 있다며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별도로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은 2021년 11월 26일,
선체 인양 후 조사한 국가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복원성 불량과 조타장치 고장,
화물 쏠림에 의한 침몰,
즉 내인설을 공식 재결로 확정했다.
청해진해운은 이 재결에 불복했다.
2018년 12월 출범한 슬롯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전원위원 9명 체제로 3년 6개월을 조사하고도
2022년 9월,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활동을 마쳤다.
문호승 위원장은 침몰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점을
피해자와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세 개의 국가 조사기구,
7년 9개월의 조사 기간,
수백 명의 조사관과 수백억 원의 예산.
그럼에도 세월호가 정확히 왜 침몰했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침몰 원인은 끝내 확정하지 못했지만,
선원들의 형사바카라임만큼은
비교적 신속하게 가려졌다.
검찰은 2014년 5월 15일,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을
살인, 살인미수,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선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기치사 등을 인정해
징역 36년을 선고하며
살인죄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고를 기각하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선박 침몰 같은 대형 인명사고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확정된 최초의 판례였다.
나머지 선원들도 징역 1년 6개월부터
12년까지의 형이 확정됐고,
청해진해운 대표이사 김한식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배상과 보상 절차도
비교적 이른 시점에 틀이 잡혔다.
정부는 2015년 3월,
희생자 1인당 위자료 1억 원을 결정했고,
같은 해 6월에는 국비 5천만 원과
국민성금 2억 5천만 원을 더한
위로지원금 3억 원을
별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모두 합산하면 단원고 학생 희생자는
1인당 평균 약 7억 2천만 원,
단원고 교사는 1인당
약 10억 6천만 원 수준의 배상과
지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배·보상금 수령 대신
소송을 택한 유가족들에게도
국가와 청해진해운의 손해배상 바카라임이 인정됐다.
2019년 1심에서는 생존자 본인에게
1인당 위자료 8천만 원이 인정됐고,
2024년 2월 2심에서는
후유장애가 확인된 생존자들에게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추가 배상이 인정됐다.
형사바카라임은 확정됐고,
배상 기준도 마련됐다.
그러나 정작 “왜 침몰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세 개의 국가 조사기구를 거치고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바카라임자를 처벌하는 것과
원인을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세월호는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그 미완의 진상규명과 별개로
‘기억의 시설’만큼은 계속 짓고 있다.
목포신항 인근 고하도 공유수면에는
세월호 선체를 영구 보존하는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이 조성 중이다.
부지 면적 약 7만 6,150㎡,
세월호 선체를 보관할 하우징 시설만 9,535㎡ 규모다.
총사업비는 2026년 3월 기준 2,838억 원.
전년 대비 약 700억 원이 추가로 증액됐다.
기억관과 별도의 안전·치유 체험시설이
세월호 선체를 사이에 두고
55미터 브릿지로 연결될 예정이며,
2026년 중순 턴키 방식으로 발주해 연말 착공,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월호 선체는 2028년,
특수 운송장비로 약 1.9킬로미터를 이동해
영구 거치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선체에 남은
340개 손상부위에 대한
3D 스캔과 보수·보강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선다.
당초 연면적 9,962㎡,
사업비 약 495억 원으로 설계됐다가
설계 변경과 물가 상승을 거쳐
사업비가 509억 원까지 늘었고,
이후 다시 466억 원 규모,
연면적 7,377㎡로 조정됐다.
국제설계공모까지 거친 이 사업은
예산과 설계를 둘러싼 진통 끝에
2025년 2월 13일에야 착공했고,
2026년 말에서 2027년 하반기,
즉 참사 13주기 무렵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상은 다 밝히지 못했지만
기억할 건물은 짓고 있다.
이 모순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반대다.
참사를 겪은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는 수천억 원의 예산과 수년의 시간을
세월호에 계속 쏟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세월호가 받은 ‘기억의 밀도’다.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12·29 여객기 참사.
탑승자 181명 중 승객 175명 전원과 승무원 4명이 사망했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269명 사망),
1997년 대한항공 801편(229명 사망)에 이어
국내 국적 항공기 사고 중 역대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가 됐다.
2002년 경남 김해에서
129명이 숨진 중국국제항공 129편 사고 이후
22년 8개월 14일 만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항공사고이기도 하다.
희생자의 상당수는 호남권 주민이었다.
전북까지 포함하면 호남권 사망자 비율이
91.06퍼센트에 달했다.
무안공항이 위치한 곳도,
그 주 이용객도 애초에
광주·전남 주민이었던 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숫자다.
사고는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3분경,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2216편이
착륙 도중 버드스트라이크로 추정되는 유압계통 문제로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한 채
동체 착륙을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기체는 그대로 활주로를 이탈해,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이 설치된
철근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한 뒤 폭발했다.
사고 직후 무안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피해수습과 유가족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사고 원인 조사가 시작됐다.
쟁점은 하나로 모아졌다.
활주로 끝,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2025년 3월 한국전산구조공학회에 의뢰한
용역 조사 결과는 명확했다.
이 둔덕이 없었다면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정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항공기가 둔덕에 충돌한 속도는
초당 71.83미터,
약 258.6킬로미터에 달했다.
이 충격으로 기체 앞부분이 완파되고,
엔진 부위 충돌로 연쇄 폭발이 이어졌으며,
동체 후미가 분리되는 등
구조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감사원은 이 둔덕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까지 파고들었다.
공사비를 아끼려
원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다 보니
3~5미터의 낙차가 생겼고,
이를 보강한 구조물이 오히려
항공사고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JTBC의 단독 추적보도는
1999년 최초 설계도부터
2020년 개보수 설계도까지 입수해
1999년 설계에는 없던 19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2020년 개량 공사 때 추가됐고,
여기에 콘크리트 상판까지
얹은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다만 사조위의 충돌 시뮬레이션 최종보고서는
2020년 추가된 상판 자체는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판이 없던 개선 이전의 둔덕 구조가
승객에게 더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결론냈다.
즉 문제의 본질은 2020년의 보수 공사가 아니라,
애초에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안에 단단한 구조물을 세운
1999년의 설계 그 자체에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이 둔덕 시설물이 피해를 키운 ‘인재’라며
국토부에 시정을 권고했다.
안전을 위해 만든 구조물이
안전을 파괴하는 흉기가 됐다는 결론.
조사 과정에서 사고기의 블랙박스,
즉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가
조종사의 메이데이 선언 시점,
충돌 약 4분 전부터
기록이 끊겨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조사의 공정성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장만희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국토부 관련 인사들을
조사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이후 국회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소속을
국토교통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바꾸는
법률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사고 원인 조사를 맡아야 할 기관이,
정작 사고 원인이 된 시설을
관리하던 부처 소속이었다는
근본적인 이해충돌 문제가
비로소 정리된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원인 규명에 도달하기까지
사고 발생으로부터 약 1년 3개월이 걸렸다.
세월호와 12·29 참사를 나란히 놓았을 때
가장 참담한 지점은 여기다.
2026년,
사고 현장을 정리하고
1년 이상 지난 뒤에도
희생자의 유해가 추가로 발견됐다.
결국 국무조정실이 정부합동 점검에 나섰다.
2026년 3월 23일부터 4월 24일까지,
한 달여에 걸친 조사 끝에
2026년 4월 30일 발표된 결과는
단순한 실수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사고 초기 관련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고,
소방과 경찰의 지휘·감독이 미흡해
유해 수습이 부실했다고 인정했다.
더 나아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관련 규정과 매뉴얼을 위반해
희생자 유해가 포함된 잔해물을
장기간 방치했다고 밝혔다.
조사 목적 자체가
“1년 이상 장기 방치된 경위와 바카라임”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이 사안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준다.
179명을 잃은 국가적 참사에서
희생자의 일부가 1년 넘게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드러난 이후
2026년 4월 13일부터
사고 현장과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정밀 재수색이 다시 시작됐다.
재수색 초기인 4월 27일까지
11차례에 걸친 잔해 재조사에서
유해추정물체 107점,
28명분에 해당하는 규모와
유류품 794묶음,
휴대폰 6점이 뒤늦게 수습됐다.
그런데 그 뒤로도
수습은 끝나지 않았다.
8월 12일까지 군·경찰·소방 등 관계기관에서
하루 평균 200~300명이 계속 투입됐고,
누적 수습량은 유해 추정물 1,620점,
유류품 851점으로 불어났다.
4월 말 107점에서 8월 중순 1,620점으로.
넉 달 사이 15배 가까이 늘어난 이 숫자는,
애초의 수습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거꾸로 증명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8월 말 현재,
이 재수색의 진척도는
약 77퍼센트에 머물러 있다.
재수색이 마무리돼야 비로소
사고 원인 조사와 안전시설 설치,
로컬라이저 개선 공사 같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숫자 앞에서는 어떤 설명도 무겁다.
국가의 행정력이 과거의 역사를 향해서는 세심하게 작동하면서,
가장 가까운 오늘의 참사 앞에서는
왜 이렇게 허술했는가?
이 지점에서는 사실과 감정을 구분해야 한다.
정부가 12·29 참사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지우려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확인되는 자료와 맞지 않는다.
2026년 5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옛 전남도청 방문 일정을 마친 뒤
같은 날 오후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유해수습 현장을 직접 점검했다.
청와대는 당시 방문 목적을
희생자의 유해를 끝까지 수습하고,
슬롯적 참사 피해자를 국가가 바카라임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8월 13일에는 국무총리가 직접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유가족 50여 명과 면담했다.
그동안 정부 대응이
유가족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던 점을 공식 사과했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고조사와 투명한 정보공개,
피해자 지원과 희생자 추모사업을 약속했다.
제도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소속 이관 외에도,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아래 일곱 개 항목에 걸친
시정 및 처리 요구를 담은결과보고서를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했다.
무안공항 방위각시설,
즉 둔덕의 설계와 시공, 관리 문제,
조류충돌 위험성에 대한 예방과 대응체계,
항공기 엔진과 기체 결함, 정비 관련 문제,
사고조사와 수사 과정의 정보공개 필요성,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항공안전 관리제도 전반의 개선,
그리고 경찰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수사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처음부터 제대로 했느냐는 질문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유해가 1년 이상 방치됐다는
정부 자체 조사결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과 총리가 뒤늦게 다시 현장을 찾고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초기 대응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국정조사특위 종료 여부를 둘러싼 이견으로
12·29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두 개로 분열됐다.
기존 협의회는 참사의 결정적 원인이
콘크리트 둔덕에 있다고 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가족 73명은
국가와 한국공항공사, 제주항공, 보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30개 법무법인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서류심사와 발표심사를 거친 뒤
유족 투표를 통해 소송대리인을 최종 선정했다.
2026년 8월 6일,
소송대리인단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
사고 현장 CCTV 영상과
유해·유품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서를 제출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은 정황이
무안공항 CCTV 영상에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은
과거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대리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고,
현재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28명의 유가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다.
73명 외 다른 유가족들은
별도로 미국 로펌을 선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가족들이 올해 안에
소송 제기를 서두르는 이유는
국제 항공운송 중 발생한 승객 사망에 대한
항공사의 손해배상 바카라임을 규정한
몬트리올협약의 제소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한 곳의 로펌이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12·29까지
세 개의 국가적 참사 소송을
모두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가족이 밟아야 하는 절차가
얼마나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돼 왔는지를 보여준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협의회와
소송을 준비하는 유가족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사실 자체도,
국가가 제때 하나의 창구로
진상규명과 배상을 함께
끌고 가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이름조차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무안공항 참사’.
‘제주항공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2·29 여객기 참사’.
초기 국토교통부의 언론 모니터링 자료에도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제주항공 대참사’,
‘무안공항 참사’ 등의 표현이
뒤섞여 등장했다.
현재 정부는 공식적으로
‘12·29 여객기 참사’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2026년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도
‘12·29 여객기 참사 희생자 유해 부실 수습 경위 점검 결과’,
‘12·29 여객기 참사 현장방문 및 유가족 면담’이었다.
명칭만으로 정부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다.
‘무안’이라는 지명을 빼는 것이
공항 시설의 바카라임을 감추려는 의도라고
단정할 근거도 현재로서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름은 중요하다.
세월호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즉시 떠올린다.
이태원이라는 지명 역시 마찬가지다.
사건의 공식 명칭은 결국
후대에 남을 기억의 주소다.
왜 특정 명칭을 선택했는지,
유가족과 충분히 협의했는지,
장소와 운항사,
날짜 가운데 어떤 요소를
남길 것인지를 묻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진상조사도, 유해 수습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6년 8월 기준
무안공항의 공식 폐쇄 기한은
11차례나 연장을 거쳐
2026년 9월 25일 0시까지로 잡혀 있다.
재수색이 끝난 뒤에야
사고 원인 조사와 안전시설 설치,
로컬라이저 개선 공사 등을 거쳐
재개항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
절차만 따져도 5~6개월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재개항을 서둘러 달라는 목소리는
2025년 말부터 이미
조직적으로 반복돼 왔다.
2025년 11월 26일,
무안국제공항 활성화추진위원회와
정상화협의체, 무안군 슬롯단체, 여행업계는
국토부의 2025년 동계 항공편 일정에서
무안공항이 제외된 데 공동성명으로 반발했다.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활성화위와 슬롯단체가
무안읍 상상창작소에서
“7차례 폐쇄 연장,
재개항 로드맵 미제시”에
유감을 표명했다.
2026년 7월 12일,
무안국제공항활성화추진위원회 박일상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초기인 지금이
재개항을 요구할 적기”라며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요구를 촉구했다.
8월 3일에는 무안군의회가
재개항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같은 달 5일에는 전남·광주특별시의회 도로교통위원회도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8월 15일,
무안군의회 명의로
공항 건물 외벽에
감사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재명 대통령님의 무안국제공항 조속한 재개항 지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 현수막에는 대통령의 이름이
‘이제명’으로 잘못 적혀 있었다.
유가족협의회는 즉각
“179명의 희생과 지역의 안전을 대하는
무안군의회의 무성의와 무바카라임이
그대로 드러난 축소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현수막은 결국 철거됐다.
임윤택 무안군의회 의장은
“게시 전에 확인해야 했는데
큰 실수를 했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고가도로 아래에는
‘무안군발전협의회’ 명의의
또 다른 현수막이 새롭게 걸렸다.
“서남권의 염원을 담은 무안국제공항 신속 재개항 지시, 이재명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오타는 없었지만,
문구의 취지는 앞서 유가족의 반발로 철거된
군의회 현수막과 사실상 동일했다.
군의회가 유가족 반발로
한 차례 철회한 메시지를,
이번에는 다른 이름의 지역 단체가
다시 걸어 올린 셈이다.
그리고 8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무안공항이 거의 2년 가까이 폐쇄된 상태라며,
유해 수색과 사고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재개항이 지나치게 늦어져
지역경제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복구공사와 사고조사의 병행 검토를 지시했다.
무안공항은 참사 이전인 2023년 한 해에만
253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국내 15개 공항 가운데서도
적자 규모가 큰 축에 속해 있었다.
지역경제의 어려움은 실재한다.
그 어려움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세월호는 침몰 원인조차
10년 넘게 확정하지 못한 채
세 차례 조사위원회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12·29 참사는
아직 유해도 다 찾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경제”라는 이름으로 서두르라는 압박이
벌써 조직적으로, 반복적으로
공적 공간에 내걸리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지은
해상안전체험관 이정표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도로변에,
“빨리 열어달라”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는 이 장면이
지금 무안이 마주한
가장 정직한 초상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월호를 그만 기억하자”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안전체험관을 만드는 것도,
세 번의 국가 조사기구를 통해
끝까지 진실을 찾으려 한 것도,
목포신항에 2,838억 원을 들여
기억관을 짓고 있는 것도,
안산에 500억 원 안팎을 들여
생명안전공원을 짓고 있는 것도
모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12·29 참사 앞에서도
같은 집요함을 보이고 있는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안전체험관을 만들었다면,
그 교훈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또 다른 대형 참사 앞에서
검증해야 하지 않는가.
과거를 기념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바카라임자가 이미 세상에 없거나,
바카라임 구조가 현재의 행정부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념관을 세우고,
추모사를 읽고,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참사는 다르다.
바카라임을 밝히면 살아 있는 누군가가 바카라임져야 한다.
정부기관의 잘못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규정을 잘못 만들었거나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수도 있다.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할 수도 있고,
공무원과 기관 바카라임자를 문바카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가의 진짜 기억 능력은
100년 뒤 추모사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사건이 아직 불편한 현재일 때
얼마나 끝까지 파고드느냐에서 드러난다.
12·29 참사는 아직
역사바카라에 들어간 과거가 아니다.
사고 원인과 바카라임을 둘러싼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재개항을 서두르라는 압박은
바로 이 순간에도
현수막이 되어 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훗날 대한민국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했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세월호 이후 무안에 만들어진 해상안전체험관에서,
아이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음 사람의 삶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설이 있는 같은 무안에서
2024년 12월 29일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넘게 지난 뒤에도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4월 107점에서 8월 1,620점으로,
넉 달 사이 15배 가까이 늘어난 그 숫자가
이 참사의 초기 대응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말해준다.
정부가 다시 조사했고,
잘못을 인정했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다시 현장을 찾았고,
수백 명이 다시 땅과 잔해를 뒤져
희생자의 흔적을 찾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는 빨리 다시 열어달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기억’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보인다.
기억은 추모식에서 묵념하는 것만이 아니다.
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특별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끝까지 찾는 것.
끝까지 조사하는 것.
바카라임을 끝까지 밝히는 것.
불편하더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
그리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제 제도를 바꾸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하는 기억이다.
세월호는 침몰 원인조차 10년 넘게 밝히지 못한 채
세 번의 조사위원회를 떠나보냈다.
그럼에도 선장에게는 무기징역을,
유가족에게는 배상과 기억관을 남겼다.
12·29 참사는 아직 1년 반도 지나지 않았다.
선박 대신 항공기였고,
바다 대신 활주로였을 뿐,
국가가 반복해온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세월호가 걸었던 그 10년의 길을
12·29 앞에서도 똑같이 걷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다르게 걸을 것인가?
그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만큼,
12·29도 끝까지 기억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누구의 죽음 앞에서도
같은 얼굴을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