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들을 놓친 손
2026년 5월 12일 밤,
제주시 한림읍.
37세 여성 장미란씨는
슬리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 뒤인 5월 15일,
동거인이 실종 신고를 했다.
신고 접수 시각과 실제 마지막 목격 시각 사이엔
이미 사흘의 간극이 있었다.
이 사흘은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종 수사에서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골든타임' 24시간의
세 배가 넘는 시간이,
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흘러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조회해
한림항 일대를 수색했다.
초동 대응 자체는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날 밤 9시 16분,
사건을 넘겨받은 담당자는
상부에 보고했다.
"연락이 닿았다."
거짓말이었다.
통신 기록 어디에도
담당자와 장씨가 통화한 흔적은 없었다.
담당자는 사건을 그대로 종결했다.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등록돼 있던 장씨의 정보도 지웠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장미란이라는 이름은
그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됐다.
시스템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갔다.
가족과 지인들은
여전히 장씨를 찾고 있었지만,
국가의 수색 시스템 안에서
그는 이미 '해결된 사건'이었다.
104일 뒤인 8월 24일 오전,
숙소에서 400미터 떨어진 야자수 농장에서
민간·관공서·군 합동으로 400여 명이 투입된
집중 수색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만에,
장미란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걸어서 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104일 동안,
실종자는 서류상으로도
지도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처음엔
단순한 실종 사건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파고들수록
이건 한 경찰관의 개인적 일탈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건 하나의 시스템이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증거였고,
그 무너짐을 데이터로 짚어보면
놀랄 만큼 촘촘하게 서로 연결돼 있었다.
실종 통계의 공백,
인력난,
조직 감시 체계의 부재,
그리고 권한만 커진 채
바카라임은 흐려진 경찰 조직의 구조.
유튜브 쇼츠나 SNS에서는
"한국에서 매년 10만 명이 사라진다"는
자극적인 문구가 종종 돈다.
얼핏 보면 믿기 어려운 숫자다.
중소도시 하나가 통째로
자취를 감추는 규모 아닌가?
그러나 실제로 통계를 뜯어보면
이 숫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신고 건수로는 맞고
미해결 건수로는 완전히 틀렸다.
2024년 기준 아동·장애인·치매환자,
이른바 '실종아동등' 신고는 49,624건이었다.
이 가운데 끝내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121명,
미발견율로 따지면 0.25퍼센트에 불과하다.
발견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년 단축되고 있다.
2017년 81.7시간이었던
평균 발견 소요시간은
2019년 65.8시간,
2021년 51.9시간,
2023년 40.8시간을 거쳐
2025년에는 31.1시간까지 줄었다.
8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경찰이 이 수치를
매년 공표하고,
관리하고,
개선해왔다는 뜻이다.
이건 우연히 좋아진 게 아니다.
실종아동법이라는 법적 근거가 있고,
신고 즉시 위치추적과
CCTV 열람이 가능한 제도가 있고,
그 제도의 성과를 매년 숫자로 검증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개선이다.
그런데 성인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2024년 성인 실종 신고는 71,854건에 달했다.
이 중 매년 평균 1,412명이 숨진 채로 발견된다.
2016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누적으로 따지면
12,708명이 그렇게 생을 마감한 채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사망률로 환산하면
아동보다 무려 25배 높은 수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행방이 묘연한 성인 실종자는
6,923명이나 된다.
이 중 10년 넘게 실종 상태인
장기 실종자만 3,745명이다.
미해제 건수 자체도 계속 늘어나서,
2019년 295건이었던 것이
2023년에는 721건으로 2.4배가 됐다.
가장 결정적인 대비는 따로 있다.
아동은 발견 소요시간을
매년 재고,
줄이고,
공표한다.
성인은 그 통계 자체가 없다.
애초에 재지 않는다.
재지 않는다는 것은 관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통계를 내지 않는 행정은,
개선할 목표조차 세우지 않는 행정이다.
아동의 발견 소요시간이 매년 단축된 건
그 수치를 누군가 매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의 발견 소요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적 근거의 차이도 이 격차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동은 실종아동법에 따라
신고 즉시 위치추적과
CCTV 열람이 가능하다.
반면 성인은 '가출인'으로 분류된다.
범죄 혐의가 특정되지 않는 한
경찰은 곧바로 강제 수색에 나설 수 없다.
성인이 스스로 잠적할 권리와,
성인이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을
구분할 법적 장치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성인 실종자를 위한 별도의 수색·지원 법안이
21대와 22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소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발의된 법안들의 골자는 대체로 비슷했다.
위험판단기준을 도입해서,
단순 가출과 위험 실종을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아동과 유사한 수준의
초동 조치를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이 법안들이 통과됐다면,
장미란 사건은 다른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다.
숫자는 과장됐다.
그러나 이 과장 뒤에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실종은 대부분 금방 해결된다"는 안도감이,
정작 끝내 안 풀리는 6,923명의 존재를 지운다.
통계가 과장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역시 별일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정확히 반대로 읽어야 한다.
신고 건수가 과장된 만큼,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위기는
상대적으로 더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언론은 '한 아이의 실종',
'치매 노인의 행방 불명' 같은
개별 사건 단위 보도에는 적극적이다.
그러나 매년 수만 명이 신고되고 수백,
수천 명이 끝내 발견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는
기획 기사는 손에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별 사건은 클릭이 나온다.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고,
가족의 눈물이 있는 이야기는
독자의 감정을 움직인다.
그러나 연간 실종 통계 같은
구조적 이야기는 추상적이고
잘 읽히지 않는다.
대부분이 조기 발견으로 끝나기에
좀처럼 '큰 사건'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정바카라적 관심도 떨어진다.
실종 문제는 표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 입장에서 성인 실종자 지원법은
지지율을 끌어올릴 만한 이슈가 아니다.
유권자 다수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종 문제는 매년 반복되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사각지대로 남는다.
그리고 이 사각지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제주는 올여름 뼈아프게 증명했다.
이 구조는 실종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통계가 없는 곳에는 정바카라도 없고,
정바카라이 없는 곳에는 예산도 없고,
예산이 없는 곳에는 개선도 없다.
이 악순환의 첫 단추가
바로 "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미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같은 해 8월,
60대 남성 B씨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했다.
담당자는 공교롭게도 같은 경장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똑같이 말했다.
"연락이 닿았다.
다만 위치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성인은 실제로 자발적으로 잠적할 권리가 있고,
경찰이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담당자는 바로 그 허점을 이용했다.
확인할 수 없는 진술 하나로,
수사를 끝낼 수 있는 구조였다.
가족은 장씨 사건 보도를 접하고,
담당자의 처리 방식이 자신들의 경우와
판박이라는 걸 알아챘다.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B씨 가족은 담당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8월 21일,
가족은 다시 신고했다.
바로 다음 날인 8월 22일,
B씨는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실종 신고 후 51일 만이었다.
경찰은 담당 경장을 긴급체포했다.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 위작·행사 혐의였다.
그리고 그가 처리한 사건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8월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답변에 나섰다.
전수조사 대상은 298건이었다.
이 중 대부분이 담당자 혼자 처리한
이른바 '셀프 종결' 사건으로 확인됐다.
장씨, B씨 사건과 무관한 별도 신고 중에서도
같은 패턴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10건 안팎 나왔고,
그중 3건은 여전히 실종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다.
이 3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이 사건이 정말로 '한 사람의 일탈'인지
'조직의 구조적 방치'인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 경장은 실종 허위종결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8월 11일,
이미 성범죄 혐의로 직위해제된 상태였다.
실종 허위종결과는 별개로,
이미 다른 비위 조사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채용 단계의 인성검사,
재직 중의 성과 평가,
감사 시스템까지 여러 겹의 거름망을
이미 통과해온 인물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비위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단순히 "왜 이 사람은 채용됐나"라는
질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입
구의 문제가 아니라,
입직 이후의 관리 문제라는 뜻이다.
한성숙 국무총리까지 직접 나섰다.
전국의 모든 실종신고 처리 과정에
허위종결이 없었는지 면밀히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제주라는 한 지역의 사건이,
순식간에 국정 어젠다로 격상됐다.
298건.
한 사람이 감당한 숫자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야간 근무 중 접수된 신고는
상급자 보고 없이 담당자 혼자서도
종결 처리가 가능한 구조였다.
이중 확인 절차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경찰은 뒤늦게 팀장과 과장의
이중 확인 절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애초에 있어야 했던 절차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사건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만 읽으면,
다음 번의 부 경장을 막을 수 없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한 사람이 298건을
떠맡을 수 밖에 없었는가?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답의 실마리를 준다.
전국 경찰서 실수사관 1인당 사건 접수 건수는
2020년 108.4건에서
2025년 133.8건으로,
5년 새 23퍼센트나 늘었다.
여기엔 제도적 배경이 있다.
2023년 11월 수사준칙이 개정되면서
고소·고발 반려 제도가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명백히 사건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고소·고발을 경찰 단계에서 반려할 수 있었지만,
개정 이후로는 접수된 신고를 사전에 걸러내지 않고
전부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국민의 신고 권리를 두텁게 보호한다는 취지였지만,
그만큼 현장 실무자의 업무량은 그대로 늘었다.
취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울
인력 보강은 뒤따르지 않았다.
그 이후로 1인당 사건 수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2023년 110.4건,
2024년 127.7건,
2025년 133.8건.
전국 18개 시도청 중
절반이 넘는 열 곳이
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1위는 경기남부청으로 154.1건,
2위는 제주청으로 153.9건이었다.
가장 적은 전북청(108.7건)과의 격차는
약 45건에 달했다.
같은 나라,
같은 경찰 조직 안에서도
지역별 격차가 이만큼 벌어져 있다는 뜻이다.
제주.
바로 그 제주다.
업무량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조직에서,
실종 담당자 한 명이 298건을 떠안았고,
그중 몇 건은 발견됐을 때
이미 백골이었다.
이걸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통계만 놓고 보면,
제주는 전국에서 실종 담당자 한 명이
무리한 업무량을 떠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였다.
같은 기간,
수사부서를 떠나는 경찰관도
눈에 띄게 늘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수사부서 퇴직자는 총 1,765명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21년 265명,
2022년 338명,
2023년 304명,
2024년 373명,
2025년 41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고,
2026년만 5월까지
벌써 75명이 제복을 벗었다.
이들은 정년퇴직 세대가 아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40대 수사관들이
스스로 조직을 떠나는 숫자다.
경찰청 스스로도
"2023년 11월 수사준칙 개정에 따라
고소·고발 등 반려 제도가 폐지되며
전건 접수에 의한 사건 수가 증가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로,
업무량 증가와 이탈 사이의 인과관계는
조직 내부에서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다.
일이 많아진다.
사람이 떠난다.
남은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린다.
더 많은 사람이 떠난다.
이 악순환의 마지막 고리에,
장미란씨가 있었다.
"인력을 늘려서 뽑고 있다는데,
왜 항상 부족하다고만 하는가?"
합리적인 의문이다.
숫자로 하나씩 답해본다.
2023년 총 채용 규모는 4,335명,
2025년은 4,712명이었다.
2026년부터는 6,400명으로 확대되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경찰 채용은 꾸준히 늘고 있는 정바카라처럼 보인다.
그런데 2025년 7월 기준 결원은
3,414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2028년 결원은
5,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용을 늘리는 속도보다
결원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뜻이다.
채용 규모는 이미 결원보다 크다.
그런데도 결원이 줄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은 시기가
지금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다.
1989년부터 1992년,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 시기에
연평균 7,656명씩 대거 채용했던 세대가 있다.
이들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무더기로 정년을 맞는다.
30년 경력의 숙련 인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시점과,
지금의 채용 확대 시점이
정확히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건 예측 가능했던
인구 구조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예측에 맞춰
미리 대비한 흔적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계급별로 뜯어보면
문제는 더 뚜렷해진다.
순경 현원은 15,591명,
정원은 38,824명이다.
정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장도 정원보다 9,800명 가까이 부족하다.
반면 관리자급인 경위와 경감의 현원은
오히려 정원의 2배에 이른다.
근속승진 제도가 만들어낸
마름모꼴 구조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자동으로 승진 대상이 되는 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상위 계급의 인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해온 결과다.
현장에서 순찰 돌고,
신고 받고 뛰는 사람은 늘 부족하고,
결재하는 사람은 이미 넘친다.
"정원이 늘었다"는 뉴스와
"지구대가 텅 비어 있다"는 현실은,
서로 다른 계급의 이야기다.
서울에서만 지구대와 파출소 248개소 중
155개소가 정원 미달 상태이고,
강원 지역은 지구대·파출소 정원 대비
40명이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신규 지원자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9년 순경 공채 남자 경쟁률은
30.93대 1이었지만,
2025년 상반기에는
10.1대 1로 삼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명퇴는 역대 최대,
지원 경쟁률은 최저"라는
헤드라인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노량진의 경찰 공채 학원 관계자조차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이 몰리는 학원인데도
전년 대비 수강생이 조금씩 줄고 있다"고 전했을 정도다.
국가 예산으로 키운 엘리트라고 예외는 아니다.
경찰대학 졸업생 가운데 의무복무 6년을 채우지 않고
조기퇴직한 인원이 최근 10년간 225명에 달한다.
이들이 국가에 상환한 경비만 57억 원이 넘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변호사 자격을 활용해
로펌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경찰대 출신의 한 현직 경찰관은
"경찰대를 나왔다고 해서 옛날만큼 조직 내에서
입지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라며,
공무원 전반에 대한 인기가 낮아진 만큼
변호사처럼 보수가 높은 직종으로
쏠리는 흐름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퇴직 경찰의 취업 심사에서
제한·불승인 비율은 2024년 42.3퍼센트에서
2025년 77.1퍼센트로 급증했다.
조직을 지키려는 규제와,
조직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속도가
동시에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들어오려는 사람은 줄고,
들어와도 오래 못 버티고,
버티는 사람은 감당 못 할 업무를 떠안는다.
담당 경장의 298건은,
이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값이었다.
마지막 조각이 남았다.
2021년,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서
경찰의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이
크게 확대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축소된 만큼,
경찰이 최초 수사부터 사건 종결까지
훨씬 넓은 권한을 갖게 됐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를 보면
이 시점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드러난다.
경찰청은 2019년 3등급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2021년,
곧바로 5등급으로 추락했다.
가능한 등급 가운데 최하위다.
2022년 4등급으로 잠시 오르는 듯했지만,
2024년도 평가(2025년 12월 발표)에서
다시 5등급으로 떨어졌다.
검찰청도 같은 해 두 등급이 하락해
동반 5등급을 받았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5등급을 받은 곳은 경찰청, 검찰청,
그리고 외교부 단 세 곳뿐이었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그 2021년,
경찰청은 스스로 이런 목표를 발표했다.
"세계 10위권 청렴경찰 도약,
청렴도 평가 1등급 달성."
정바카라을 발표한 바로 그해,
등급은 오히려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학계에서도 이 흐름을 주목했다.
경찰이 청렴도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하위권을 차지하자,
2021년 경찰청이 강력한 반부패 정바카라을 발표했다는 분석이
감사 관련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즉 이건 언론의 일방적 비판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공인된 패턴이라는 뜻이다.
징계 통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파면·해임 같은 중징계 처분자는
2021년 59건에서 2024년 100건으로,
3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경찰관 전체 징계자 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503명에 달하며,
2025년은 5월까지 벌써 224명이 징계를 받았다.
사유별로 보면 음주운전 등 규율위반이 가장 많고,
성 비위 등 품위손상이 그 뒤를 잇는다.
성비위로 기소된 경찰관만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누적 121명이다.
정직·감봉·견바카라 같은 경징계까지 포함하면
매년 400명 안팎의 경찰관이
규율을 어겨 처벌받고 있다는 뜻이다.
권한은 커졌다.
그러나 그 권한을 감시할 내부 통제는
같은 속도로 따라가지 못했다.
이 시기,
광주에서는 여고생 살해 사건,
이른바 월계동 사건을 수사하던 팀장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다.
제주에서는 실종 담당자가
298건을 셀프 종결했다.
지역도 다르고 사건의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패턴은 놀랍도록 같다.
권력은 쥐고,
바카라임은 흐렸다.
이 문장은 이 원고의 처음 문제의식이자,
지금 다시 확인되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카르텔과 정부 폭력 속에
공식 집계로만 13만 명이 넘는 실종자가 등록돼 있다.
이 숫자마저
정치적 논쟁거리다.
2024년 대선 국면에서 정부가 실종자 규모를
12,377명으로 축소 발표했다가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고,
최근 발표한 "실종자 3분의 1이 생존 확인됐다"는 결과도
유가족들은 "숫자놀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통계를 축소하려는 정부의 유혹은,
한국의 성인 실종 통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불편한 숫자는 관리하기보다
지우는 쪽이 정치적으로 편하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실종 보도가 피해자의
성별, 인종, 계층에 따라 심각하게
편향돼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Missing White Woman Syndrome'이라는 용어가
학계에서까지 통용되는 이유다.
백인, 중산층, 젊은 여성의 실종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반면,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
노숙인의 실종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묻힌다는 비판이다.
한국의 아동-성인 격차와는 다른 축이지만,
"누구의 실종이 통계와 관심을 받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국경을 넘어 반복되는 문제다.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는 지역에서는
가족 단위로 행방이 묘연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결국 실종은 국경과 체제를 가리지 않는
전 세계적 문제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파편적이다.
언론도,
정부도,
슬롯도 좀처럼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숫자는 많지만
그중 극소수만
끝내 발견되지 못한다.
그래서 실종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는 식으로
쉽게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그 극소수가
바로 누군가의 가족이고,
인생의 전부다.
매년 반복되는 수만 건의 신고,
그리고 잊힌 수천 명의 이름.
이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슬롯가 안전망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이 지점으로 수렴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경찰 14만 명이 성인 실종 7만 건을 감당하려면
1인당 2건씩 떠맡아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며,
민간탐정 제도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건수 백석대 교수는
실종의 골든타임을 24시간으로 못 박으며,
미국과 호주처럼 실종 기간,
납치 의심 여부 등을 종합한
위험판단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전문가의 진단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지만,
출발점은 같다.
지금의 시스템이
성인 실종을 감당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건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고,
그 사람을 찾아야 했던 손이다.
그 손이 왜 비어 있었는지,
이제는 물어야 할 때다.